극심한 변동성을 자랑하는, 이른바 금융 시장 혼란기다. 11월 미국 대선, 이어지는 중동 전쟁, 인공지능 ‘거품론’,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인한 불투명성으로 인해 경기 변동성 큰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투자 방향을 쉽게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당장 투자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달러 가치 향방에 대한 의견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엇갈리고 있다. 시장에선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세할 경우 달러 강세가, 해리스 부통령이 우세할 경우 달러 약세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세 강화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데, 높은 관세는 전 세계 무역을 위축시켜 미국 외 국가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릴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이에 달러 가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인사나 대선 후보의 말 한마디에 휘청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혼란기에 보수적인 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며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금성 자산을 기본으로, 장기적인 시각에서 경기를 살펴보며 여러 차례 회차를 나눠 다양한 상품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혼란기일수록 ‘천천히, 안전하게’ 현금성 자산을 늘리면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금리 인하기엔 미국 채권 등 안전자산 중심의 투자를 하는 것도 추천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투자 자세는 신중한 ‘분산 투자’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정성진 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투자 시점의 분산은 현재 투자 대기자금을 일시에 가입하는 방법보다 몇 차례 나누는 적립식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추천한다”며 “‘대박’을 기대하는 투자 방법은 아니지만 변동성이 큰 장세에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내 자산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갈 곳 잃은 현금을 가장 부담 없이 넣어둘 수 있는 곳은 단기파킹형 금융상품이다. 투자자가 당장 마땅한 투자처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대기성 자금을 우선 이곳에 넣어두고 시장을 관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기성 자금을 넣어둘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경로는 초단기 금융 상품인 MMF(머니마켓펀드)다. MMF에서 보관하는 고객의 자금은 은행과 증권사 주로 국공채, 기업어음(CP) 등 금리가 높은 단기 금융 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게 된다. 통상 은행 예금보다 수익률이 높다. MMF는 기간이나 금액에 제한 없이 수시로 돈을 넣고 뺄 수도 있는 현금성 자산이기도 하다. 또 하루만 예치해도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5000만원 한도의 원금 보장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시장 상황이 변화됨에 따라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 투자자는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투자자는 자신의 투자 성향을 고려해 국채, 지방채 등 보다 안전한 채권에 투자하는 MMF에 투자하거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을 적절히 MMF에 예치할 필요가 있다.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CMA도 대표적인 단기 투자 상품이다. 증권사는 투자자의 예탁금을 받아 국공채나 단기 회사채 등 상품을 운용해 수익을 낸다. 수시 입출금이 가능하며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CMA는 증권사의 입출금 통장이라고도 불린다. 통상 은행의 입출금 통장보다 수익률이 높다.
다만 증권사의 CMA 역시 MMF처럼 5000만원 예금자 보호 한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높은 증권사를 찾아 가입해야 원금 손실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투자를 위한 대기성 자금을 넣기 좋은 또 하나의 수단은 은행에서 판매하는 MMDA(수시입출금식저축성예금)다. MMDA는 수시입출급식 예금으로 잔액에 따라 복리의 금리를 차등 지급한다. 더 많은 자금을 예치할수록 높은 금리를 받아 갈 수 있는 상품이다. 이 때문에 혼란기에 다량의 여유자금을 관리할 방법을 고민하는 투자자가 고려해 볼 수 있는 상품이다. 5000만원 한도로 예금자보호도 가능하다.
전통적인 단기 파킹형 금융 상품 외에도 공모펀드지만 만기가 3개월 내외인 초단기채 펀드에 투자할 수도 있다. 초단기채 펀드는 일반 펀드와 다르게 MMF처럼 익영업일(T+1) 출금도 가능하다. 계약 기간 만료 전에 환매할 경우 수수료가 붙는 일반 펀드와 달리 초단기채 펀드는 환매 수수료가 없어 유동성도 높다.
만기가 상대적으로 긴 다른 채권형 펀드와 달리 만기가 짧아 금리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혼란기에 매력적인 상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장기채는 만기가 길어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미강 하나은행 도곡PB센터지점 골드PB 부장은 “전통적으로 MMF 또는 CMA가 짧은 환매주기와 짧은 만기로 인한 수익의 안정성 덕분에 파킹용 상품으로 많이 활용됐다”며 “그러나 단기물의 고금리를 바탕으로 MMF 대비 높은 수익률과 향후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자본차익, 익일환매주기로 인한 높은 환금성 등 초단기채 펀드의 강점이 전통적 파킹용 상품 대비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장의 최대 화두인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현금성 자산을 늘리면서 10년 이상의 미국채 투자상품도 눈여겨볼 것을 추천했다. 미국 국채는 최소 투자 수량이 100달러로 다른 해외 채권보다 적어 소액 투자도 가능하다. 미국채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표 안전자산인 만큼 투자 안정성도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동성도 높아 비교적 자유롭게 원하는 시점에 사고팔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지금처럼 혼란 금리 인하기엔 금리 변동에 대한 가격 변동성이 극대화되면서 큰 가격 상승 폭을 투자자가 기대할 수도 있다. 금리가 고점일 때 미국 채권을 사두면 금리 인하 시기에 매매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반상미 신한패밀리오피스 반포센터 PB팀장은 “미국 장기 국채 투자는 예상치 못한 미국 경기 침체로 인해 연준에서 급격히 기준금리 인하를 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다”라며 “주식 시장과 달리 우량채권 장기물의 가격은 상승할 수 있고 중도 매도도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헤지 수단이 된다. 전체 투자자산의 20% 내외로 투자할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박해희 우리은행 투체어스 W 청담 PB지점장은 “미국 대선 전까지는 시장 변동성을 경계해야 한다”며 “미국 경기 둔화가 완만하게 진행될 경우 금리의 하반기 추가 하락이 제한되거나 재반등할 가능성도 있으니 추가 진입 시기를 모색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채권 역시 원금 손실이 가능한 상품이라는 점을 투자자는 기억해야 한다. 채권은 투자자가 정부, 금융회사, 주식회사 등에 자금을 빌려주면서 받은 증권이므로 발행인의 부도, 파산 등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의 경우 발행 회사의 신용등급 등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장기채를 거래소가 아닌 증권사가 직접 중개하는 장외 채권으로 매수할 경우 해당 금융사가 중도 매도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채권을 만기 전에 매매하면 시장 금리에 따라 채권 가격이 달라질 수 있고, 금리 상황에 따라 시장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가격 하락으로 중도 매매 시 투자 손실을 볼 수 있다.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투자자의 경우 이런 시기엔 정기예금을 통해 자산을 지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보증금, 자녀 학자금이나 결혼자금 등 ‘잃어버리면 안 되는’ 자금은 그 금액 전체를 수익률이 적더라도 정기예금에 가입해두는 것이 안전한 투자 방법이라는 의미다. 그 외에도 비상금을 제외한 나머지 사용처 없는 자산은 투자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기인 ‘2~3년’ 간 몇 차례에 나눠 투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