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또 다른 팬데믹이 나타나고 있다. 정신질환 팬데믹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10명 중 1명이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다. 전 세계 2억6400만명에 이르는 수치다. 코로나를 거치며 우울증 환자는 더 늘어났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자살자 수는 2017년 1만2463명에서 2020년 1만3195명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1만3661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도한 경쟁 구도와 그에 따른 열등감·우울감, 경제적 빈곤 등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호소하며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수도 2017년 321만명에서 2022년 437만명으로 5년 새 36%나 증가했다.
한국인의 정신건강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했을 때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자살률의 경우 2003년부터 가장 최근 조사 연도인 2022년까지 20년간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에 반해 삶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지표에선 2022년 기준 38개국 중 34위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 환자 수는 늘고 있지만 치료 인프라는 부족한 상황이다.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정신과 의사 수는 2020년 기준 0.08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0.18명)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멕시코(0.01명), 콜롬비아(0.02명), 터키(0.06명) 3곳뿐이었다. 정신과 의사가 부족한 원인은 정신건강 분야에 대한 지원 부족이 꼽힌다. 정부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1.9%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치(5%)의 절반에 못 미치면서 수가 역시 낮게 설정돼 있다.
자연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마인드(혹은 멘탈) 케어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McKinsey & Company)는 최근 전 세계 마인드 케어 시장의 가치를 1조 8000억달러로 추산했고 미국에서만 매년 5~10%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건강 치료를 받고 있지만 우리는 더 불안하고 우울해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2020년 성인의 20.3%가 지난 12개월 동안 정신건강 치료를 받았고 16.5%는 처방약을 복용했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 미국 인구조사국은 가구 조사를 통해 성인의 34.2%가 불안이나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다고 발표했다.
특히 경제 활동에 나서야 하는 젊은층의 정신질환 발병률이 높은 현실은 마인드 케어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2017년만 해도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60대였는데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정신 건강 악화로 인한 잦은 결근 등이 야기한 노동생산성 하락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연간 손실은 약 1조달러(약 1270조원)로 추정된다.
특히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게 알려질까 걱정하는 환자들에게 비대면 플랫폼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관련 시장 규모는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디지털 마인드 케어 스타트업들은 2022년 55억달러(약 6조7419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전년(23억달러) 대비 139% 증가한 액수다. 블룸버그는 “팬데믹으로 직원들의 정신적 고통이 증가하고, 가상 의료 서비스로 신속한 전환이 일어나면서 직원 멘털 케어 분야에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직원들의 심리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기업이 늘면서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같은 마인드 테크의 서비스는 명상, 수면, 심리상담 분야가 있다. 사람의 마음 상태를 인지하기 위한 상태 인식 및 인지 기술도 있다. 이들 서비스와 기술은 웨어러블, 가상 및 증강현실, 인공지능 및 BCI(Brain Computer Interface)와 같은 기반기술을 사용한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