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에 치러질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미국 내 정치지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와 주요 교역국인 한국에도 큰 파급력을 행사할 중요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은 트럼프노믹스(Trumpnomics)’의 재현 여부다. 아직 바이든 정부와 뚜렷하게 차별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지 않은 카멀라 해리스인 만큼, 당선될 경우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트럼프 후보가 재집권하면 정책 방향성이 크게 달라져 한국 산업과 개별 기업에도 상당한 충격파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경제정책, 이른바 ‘트럼프노믹스’는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한국 경제에 여러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것이란 예상이 많다. 트럼프는 미국 내 제조업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관세 인상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어 한국과 같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측이 중론이다. 박석중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의 보호무역은 중국 규제가 핵심이며 충격 여파는 과거보다 낮을 수 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7%에서 19%로 축소됐다”라면서 “대미국 수출은 14%에서 19%까지로 확대됐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관세부과는 분명 불편한 환경이나 한국은 트럼프 관세부과 정책에서 무역흑자 상위국 중 가장 낮은 영향을 미치는 그룹”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직접투자는 향후 보조금 삭감에 위험에 처할 수 있으나 이는 무역분쟁을 해소할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과 궤를 같이하듯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FTA 미체결국에만 보편 관세가 적용되면 교역에 따른 한국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0.07~0.13%P 상향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해 보편관세가 10% 적용의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0.03~0.07%P 성장률 상향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일단 두 후보 간 차이가 산업 분야에 미칠 가장 큰 차이는 기후 문제에 있다. 해리스 후보의 바이든보다 더 선명한 기후변화 입장은 트럼프의 화석에너지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기후변화가 향후 최대 의제로 부각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쟁점이 되는 Fracking(셰일가스를 추출하기 위한 고압파쇄 채굴법)에 대해 2019년 명시적인 반대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바이든도 프래킹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을 밝힌 바 있다. 상원의원으로서 해리스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그린 뉴딜 정책을 강하게 주장하며 10조달러 규모의 기후계획을 제안한 바도 있다. 바이든보다 더 선명한 기후변화 입장은 트럼프의 화석에너지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기후변화가 향후 최대 의제로 부각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정연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해리스 후보자는 경선 공약을 통해 제안한 각종 기후 및 환경 정책 달성을 위해 약 10조달러 규모의 공공 및 정책자금을 투입하겠다고 주장했다”며 “바이든 행정부에 들어서며 통과된 IRA 법안을 통해 지급되는 친환경 보조금이 약 1조2000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해리스 후보자의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는 경우 바이든 행정부에서 도입된 각종 반화석연료 행정명령이 역전되고, 대표적인 친기후 법안인 인플레이션감축법( IRA)을 무효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따라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을 분야는 친환경에너지, 2차전지, 탄소배출권이다.
한국신용평가가 발간한 ‘2024 미국 대선에 따른 영향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방지법(IRA), 미국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등 바이든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미국 투자를 진행해 온 2차전지, 자동차,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정책변동 시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미국 반도체 및 과학법(CHIPS)’을 즉각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전지 산업은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에 가장 큰 우려를 표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IRA는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세액공제를 통해 국내 기업들에 큰 혜택을 주고 있었는데, 이 법안의 폐지는 한국 2차전지 업체들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호섭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2024년 상반기 기준으로 한국 배터리 3사는 AMC(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로 인해 733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이와 동시에 IRA를 통해 1조 2939억원의 수익을 올렸다”라며 “트럼프의 정책 변화로 인해 이 혜택이 사라질 경우, 중장기적으로 2차전지 업체들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트럼프 후보의 에너지 정책은 전통에너지, 원자력에 우호적이다. 넓은 시각에서 보면 트럼프 정책의 핵심은 세금 부담을 낮춰 소비를 활성화하고, 제조업을 살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물가가 높아진다면 실질 소비에 타격을 줄 수 있고 금리 인하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에 가격 안정을 위해 에너지 가격 하락을 유도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셰일 오일(Shale Oil) 생산량 증대 및 OPEC+와의 거래 정도가 가능한 시나리오이며, 고효율 저비용 전력 생산 수단인 소형 원자로(SMR)는 이러한 흐름에서 주목 받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 산업 또한 비슷한 관점에서 긍정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생성형 AI 의 발전에 따라 데이터센터 증축 규모가 꾸준히 커지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인 데이터센터 전력에너지 수요는 빠르게 높아질 전망이다. 향후 2년 내 미국 전력 소비량이 10% 이상 늘어나는 상황에서 원자력이 대안으로 부상 중이다. 트럼프는 과거 2017년 취임 첫해에 이미 원전의 현대화 SMR 투자 등을 정부 차원에서 지시한 경험이 있다.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은 바이든 대통령이 시행한 탄소 배출량 감축 정책과 상반되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개발 및 인프라 확충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은 물론 국내 정유사들의 트럼프 지지율에 따라 주가가 움직인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조선산업 역시 트럼프의 화석 연료 개발 정책에 의해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특히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의 가속화는 국내 조선업체들의 LNG선 수주 기회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대규모 LNG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거나 계획 단계에 있는 만큼, 트럼프 재집권 시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편 트럼프는 대외 관계 면에서는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며 안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인 방위비 분담금 역시 꾸준히 요구할 것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후보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에서도 방산주들이 일제히 상승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미국 동맹국들의 방위비 증대가 예상돼 방산주 수출에 호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집권으로 중동지역 지정학적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많은 만큼 최근 늘어나고 있는 글로벌 방산 수요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정세에 한국 방산업체들의 실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혁민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이에 대해 “트럼프가 NATO 회원국들에 방위비 분담 비율을 GDP 대비 3%로 높이려는 압박을 가할 경우, 한국 방산업체들은 동유럽과 중동지역에서의 수출 기회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무기 수출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있어, 이 지역에서의 한국 방산업체들의 경쟁력은 다소 약화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아예 트럼프 행정부 때 관련 산업을 모은 ETF도 나와 있다. 티커명이 아예 트럼프 선거 구호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인 ETF다. ‘포인트브리지 아메리카퍼스트(Point Bridge America First) ETF’는 원자력회사 콘스텔레이션에너지(CEG), CF 인더스트리스홀딩스(CF), 비스트라에너지(VST)등 에너지 관련주들을 담고 있다.
반면 자동차 산업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관세 인상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분야로 꼽힌다. 트럼프는 ‘미국 자동차 산업을 구하자(Save the American Auto Industry)’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중국산 자동차 수입을 방지하고,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관련 규제를 철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기본관세 10%를 부과하고, 중국산 수입품에는 최대 60%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는 현재 미국 내 생산 능력이 전체 판매량의 43%에 불과한 상황이다. 만약 트럼프가 이 같은 관세 정책을 강행할 경우, 양사의 차량 원가가 상승하면서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도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분야다. 트럼프가 중국산 제품에 대해 60%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생산비용 상승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대형사의 대한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정훈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매출의 대부분을 국내 생산 물량으로 충당하고 있어,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특히,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High Bandwidth Memory)이나 AI 서버용 반도체의 경우, 미국 내 수요가 강한 만큼 일부 관세 부담을 구매자에게 전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분석했다.
헬스케어 정책에 대한 두 후보 입장 역시 완전한 차이를 보인다. 트럼프는 메디케어 등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축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해리스 부통령은 예방 의료와 공공 건강 프로그램 확대를 지지할 것이다. ‘노인 대상 처방 약값 인하’ 등을 이끈 IRA 법안이 통과될 때 해리스의 찬성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메디케어 정책 및 처방약 인하에 대해 꾸준히 긍정적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는 헬스케어 산업에 연방정부 개입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시장 친화적 접근을 높여야 한다 주장한다. 오바마 케어 폐지와 메디케이드 수혜자에 대한 자격 요건상향이 그의 임기 내 일어날 수 있는 변화다. 이처럼 정부가 지원하는 헬스케어 관련 복지가 줄어들 경우 민간업체가 진행하는 헬스케어 산업이 수혜를 볼 수 있다.
[박지훈 기자 · 김제림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