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금융시장이 각종 돌발 변수로 인해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급락했다가 곧장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등 투자자들의 혼을 쏙 빼놓고 있다. 지난 8월 초 미국발(發) 경기 침체 공포로 시작한 코스피 급등락이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저렴한 엔화로 매수한 해외 자산 재매도), 불안한 중동 정세, 인공지능(AI) 거대 기업 실적 우려에 특히 미국 대선 불확실성에도 영향을 받으면서 멈추지 않는 분위기다. 증시 전문가 대다수는 지금과 같이 변동성이 큰 장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본다. 문제는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 시점을 미국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9월 ‘빅컷(0.5%포인트 이상 기준금리 인하)’을 단행할 때로, 누군가는 11월 미국 대선이 끝날 때로 예상하기도 한다.
가장 큰 변수는 예측이 불가한 미국 대선이다. 후보자인 트럼프와 해리스의 정치적 색채가 워낙 뚜렷하게 구분되다 보니 대선 결과에 따라 수혜 업종이 확연히 갈린다. 이 때문에 7월 트럼프 후보 피격 사건 이후엔 ‘트럼프 트레이드’가 부각되다 7월 말 해리스 부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지명 이후엔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양 후보의 정책 기본 철학을 보면 트럼프는 세율을 낮춰 기업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전통 제조업을 살려 많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한다. 외교적으로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여 실리 중심 외교를 선호한다. 2017년 트럼프 집권 당시 지수 수익률 및 매크로 지표들을 보면 트럼프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주가 상승이 계속됐던 화석 연료 에너지, 원자력 산업, 전통 제조업, 방위 산업, 금융 산업, 민간 헬스케어 산업 등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경우 수혜를 볼 수 있는 산업으로 꼽힌다.
해리스 부통령은 현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대부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과거에 쓴 자서전인 ‘The Truths We Hold: An American Journey’를 보면 ‘정의와 평등’ ‘공동체 속 연대’ ‘경제적 불평등 해소’ 등의 아이디어가 자주 등장한다. 김승혁 키움증권 연구원은 “ 사업가로 성공해서 시장 친화적 DNA 를 지닌 트럼프 후보와는 다른 색채의 인물이며 다자간 연대, 복지 확장 등의 정책을 진행해 온 바이든 대통령과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원 흥국증권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오랜 정치경험을 가진 바이든에 비해 해리스의 경우는 쟁점 사안들에 대해 보다 선명한 입장을 주장해왔던 정치인으로 향후 트럼프와 대결이 공식화 되면 입장 대립이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시장에 충격을 던진 8월 5일 블랙먼데이는 ‘초단기’에 그쳤다. 당일 추락 폭이 컸을 뿐, 3주가 지난 시점에 시장은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블랙스완을 일으킨 원인도 예상과 달랐다. 느닷없이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이 증시 폭락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만일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이 8월 시장 급락의 단초였다면 이번 ‘블랙먼데이’는 ‘진정한 블랙스완’이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시장의 대응이 가능한 영역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폭락장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우려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이슈였다. 가장 최근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에 대한 불안한 시선은 코로나 팬데믹이 다소 진정된 2022년 말께부터 나왔다.
당시 일본 중앙은행이 그동안 고수해왔던 초저금리 정책의 출구 전략을 모색한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던졌는데, 이로 인해 채 하루도 돼 엔화 환율이 5% 가까이 급락한 일이 있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당시 이를 두고 “일본의 정책 전환으로 엔화 선호가 높아질 경우 달러 자산 매각을 촉발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쓰나미 같은 파장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즉 일본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와 엔화의 금리차를 이용한 엔캐리 트레이드의 장점이 없어져, 이를 운영하는 이들이 투자에서 발을 뺄 수 있고 이로 인해 주식, 채권 등 각종 자산들의 가격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도 당시 분석처럼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촉발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본은행은 지난 7월 31일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금리에서 0.25% 상향 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볼 부분은 어떻게 하루만에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이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시장을 공포에 빠트릴 수 있는가이다. 꾸준히 관련 경고가 있어 왔고, 그 ‘대응의 영역’이 수많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동시에 특정 시점에 물량을 동시다발적으로 던지게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금리인상으로 엔캐리 트레이딩 환경이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상황을 보면서 점진적 청산을 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에 알고리즘 매매가 이번 폭락장의 진짜 숨은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알고리즘 매매는 컴퓨터 자동 매매 시스템으로 특정한 조건 값에 따라 거래가 이뤄진다. 엔캐리 트레이딩처럼 큰 자금으로 글로벌 투자를 집행하는 이들 상당수가 알고리즘 같은 기계적 매매 방식을 선호한다. 감정이 배제된 기계의 조건값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시장 상황에 따른 즉각적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 업계에서는 일본의 금리인상 직후 대규모 물량이 일거에 쏟아져 시장에 충격을 줬다는 것은 이와 관련된 특별한 조건값으로 인해 알고리즘 매매가 연쇄적으로 작동했다고 보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번 블랙스완의 원인이 알고리즘 매매라 할지라도 향후에도 대응은 ‘깜깜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알고리즘 매매 기법은 각 운영기관의 경쟁력과도 관련되기 때문에 바깥에 전혀 그 내용이 알려지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더 세련되고 있다.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프로그래밍이 알고리즘 매매 기술을 더욱 고도화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는 “학습이 가능한 AI 기반 트레이딩 매매가 인간이 감지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서로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학술 연구 결과가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했을 때 수많은 투자 회사의 알고리즘 매매의 전체 그림을 파악해 변동성에 대한 대응법을 강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만큼 시장의 변동성은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단 얘기다.
한편 8월 5일 폭락장의 기폭제로 지목된 엔캐리 트레이드가 또 다시 시장에 대형 변동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히 팽배하다.
현재 추정되는 글로벌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규모는 상당히 편차가 크다. 국제결제은행이 지난 7월 말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외화 표시 엔화 신용공여액(대출 및 예금 형태)은 지난 3월 말 기준 40조엔(약 370조원)이다. 물론 이 돈 모두가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라고 볼 수 없어 수치가 다소 낮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규모를 파악할 때 의미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공식 장부에 나타나지 않는 자금이 훨씬 많다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엔캐리 트레이드 규모를 4조달러(5000조원)로 추정한 바 있고, 일각에서는 파생상품까지 더하면 20조달러(2경 7000조원)까지 될 수 있다고도 예상한다.
8월 5일 폭락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떠돌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중 청산된 양은 60% 정도. 여전히 40%의 자금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8월 5일 폭락장의 또 다른 원인으로 경기 침체 시그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폭락장 직전 미국의 제조업과 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크게 밑돌았는데, 과열된 경기를 식힌 후 연착륙을 시키려는 연방준비제도의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인식속에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을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세계 경제의 초미의 관심사인 미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폭락장 직전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여부는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연준의 의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신호로 여겨졌다. 하지만 예상 외의 부정적 경제 지표의 등장으로 시장은 금리 인하에 환호하기보다는 오히려 ‘경기 침체 우려’에 시선을 더 모으는 모양새다. 과거 경기침체 직전 금리인하가 이뤄진 후 시장이 추락한 사례가 재소환되면서, 금리인하가 또 다른 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이가 마크 스피츠나겔 유니버사 인베스트먼트 최고투자책임자로, 그는 “기준금리 인하가 (역사적으로) 전체적인 시장 방향의 전환을 알리는 ‘시작 총소리’가 된 경우가 자주 있었다”면서 “미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막대한 공공부채나 숨겨진 위험을 간과하고 있고 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기침체 직전 금리인하가 시장의 변동성을 초래한 사례는 2007년 9월의 금리인하가 있다. 당시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미 증시는 하락세에 돌입했고,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칠 때까지 줄곧 내리막을 걸었다. 다우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50% 넘게 폭락했다. 살라토레 루시티 MRB파트너스 주식 전략가는 최근 과거 금리 인하 시기의 주가 흐름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통해 “1990년 7월과 2001년 1월의 금리인하 후에도 주가는 약세를 보였다”면서 “이때도 경기 침체를 앞두고 연준이 통화완화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는 매우 명확하다”면서 “이번 금리인하 여부의 파장도 경기침체에 대한 시장의 인식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경기 침체 우려가 없어야 금리인하의 긍정적 효과가 작동할 것이라는 얘기다.
다행스럽게도 8월 5일 폭락장 이후 3년만에 2%대에 진입한 CPI 지수, 7월 소매판매 증가, 줄어든 신규 실업보험 청구자수 등의 지표 등 경기침체 우려와는 거리가 먼 지표들이 곧바로 나타나 시장 분위기는 일단 진정된 상태다. 하지만 시장 저변에 있는 불안한 시선은 여전하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미 경제가 연착륙보다 나쁜 시나리오로 흐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다.
경기와 관련해서 상업용 부동산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발 금융위기처럼 부동산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인데, 그때처럼 미국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주택담보부증권(MBS)과 이를 기초로 만들어진 부채담보부증권(CDO)의 부실과 유사한 흐름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상업용부동산저당증권(CMBS)과 대출채권담보증권(CLO)에 대한 걱정이다. CMBS는 오피스 등 상업용 부동산 대출(CRE)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발행된 증권을 의미한다. CLO는 이러한 CMBS를 기초로 발행된 증권이다.
이 두 가지가 문제로 거론되는 것은 이들 상품의 근간이 되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하락세가 침체 국면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피스 건물들의 상황이 심각한데, 늘어나는 빈 사무실에 투자 수익률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건물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고 이들 건물의 담보 대출을 기초로 발행된 ‘파생상품’인 CMBS와 CLO도 자유로울 수 없다. 미 상업용 부동산 부실 문제와 관련한 조짐은 이미 한차례 나타났다. 올 1월 말 미국 지역은행인 뉴욕커뮤니티 뱅코프(NYCB)의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는데, 불과 한 달여 만에 80% 넘게 폭락했다. 이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담보 대출 리스크가 불거진 것이 이유였다. 파장은 글로벌로 즉각 전이됐다. 일본 아오조라은행은 미 상업용 부동산 투자 실패로 올 1분기 예상 실적을 흑자에서 적자로 수정 발표하는 수모를 겪었다. 독일, 스위스 등 유럽은행 등은 손실에 대비한 대손 충당금을 늘리는 등 허겁지겁 대응을 한 상태다. 이후 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일단 고비를 넘기며 특별한 이슈 없이 소강 상태에 들어가 있지만, 내부적으로 여전히 곪아 들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징후가 CMBS의 연체율이 계속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상황이 심각한 오피스 시장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모양새다. 부동산 데이터 기업인 트렙(Trepp)에 따르면 7월 오피스 부분 CMBS 연체율은 2013년 11월(8.58%) 이후 약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8.11%를 기록했다. 산업용 단지 등 다른 상업용 부동산 시장 상황도 좋지 않아 전체 CMBS도 계속 오르고 있다. 7월 연체율은 5.43%였다. 연초에 관련 시장이 한 차례 위기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추세적으로 연체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다. 만기가 다가오는 상업부동산의 대출 규모도 어마하다.
트렙은 “2027년까지는 2조 2000억달러(약 2979조 9000억원) 이상의 담보대출만기가 도래할 예정”이라고 분석했다. 문제 해법을 찾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경기가 살아나 건물들의 공실이 메워져야 하지만, 거시 경제는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새로운 일자리 패턴으로 자리잡은 재택근무 선호 현상 강화는 미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왜냐하면 이 같은 일자리 트렌드는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미 상업용 건물들의 공실들을 예전처럼 메울 수 없을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경기가 호전된다 할지라도 주요 상업 건문들이 예전만큼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경제가 침체에 접어들고 해고가 늘어나 사무공간 수요가 더 줄어들 경우 상업용 부동산 가치는 앞으로 더욱 하락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흐름에 우리 자산운용사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 통신은 이지스자산운용, 현대자산운용 등이 뉴욕 상업용 오프스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내고 처분한 사례를 조망하기도 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자산을 처분하지 않고 대출 차환을 통해 버티기에 들어간 이들도 현재 투자 대비 손실이 상당하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시장의 불안 역시 그동안 계속 제기돼 왔다. 하지만 그 대응은 또 다른 문제다. 리먼 브라더스 때처럼 예기치 않은 위험을 미리 파악해 베팅을 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위험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시장 충격을 줄이는 해법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정부 당국의 세세한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해 보이지만, 관련된 소식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김병수 기자 ·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8호 (2024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