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I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주가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미국 대선 등 정치 이슈는 물론 다른 반도체 기업의 실적 발표 결과에 따라 등락 폭이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7월 19일 엔비디아의 주가는 전날보다 2.61% 하락한 117.93달러에 장을 마쳤다. 전날 대만 TSMC의 호실적 발표에 힘입어 2.6% 반등한 주가가 고스란히 제자리에 돌아왔다. 7월 17일에는 6% 이상 급락하는 등 최근 3거래일 연속 하락 마감하며 하락 사이클 돌입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최근 들어 주가가 급락한 엔비디아의 하락 요인으로는 미국의 중국 반도체 부문 무역 제재 강화 검토 소식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만 반도체 사업 비판 인터뷰 소식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일부 상승 폭을 반납하기는 했지만, 엔비디아의 지난 1년간 주가 상승은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의 닷컴 버블 당시 시스코의 주가 상승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이러한 유사성에서 엔비디아의 주가가 당시 시스코와 마찬가지로 실제 성과나 기술력과는 별개로 급등, 급락을 반복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닷컴 버블 당시와 현재 상황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시스코의 경우 닷컴 버블 당시에는 주가가 급등했지만, 기업의 실적과 매출 성장은 그에 미치지 못했고 이후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반면 엔비디아는 최근 몇 년간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매출과 이익이 지속해서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AI와 딥러닝 기술의 발전으로 그들의 그래픽 카드가 주목받으면서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확립하고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는 2017년 이후 매출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주가 상승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AI 및 데이터센터 시장에서의 성장이 주된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일정 부분 기술적 경쟁 우위에 따른 시장의 반응이라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단적으로 PER(주가 수익 비율)을 통해 시스코와 엔비디아의 거품 정도를 비교해 볼 수 있다. 닷컴 버블 당시 대표적 기업들의 PER은 상당히 높아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되었다는 인식이 강했다.
주가 급락 직전 시스코 PER은 205배를 능가했다. 시스코와 더불어 급등했던 오라클의 PER도 168배까지 올랐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PER 역시 73배까지 상승했다. 물론 엔비디아의 PER이 지난해 여름 247배까지 오르긴 했으나, 실적 개선으로 PER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현재는 실적 개선과 주가 하락으로 인해 68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 PER은 37배 수준에 불과해 당시의 절반 수준이다. 물론 지금도 낮은 평가 가치(Valuation)는 아니지만, 닷컴 버블 시절과 비교는 어렵다.
결국 거품이 꺼진 계기는 실적이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혁명에 대한 우려로 시스코 매출과 이익은 급증했다. 그런데 2001~2002년 시스코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적자로 반전되었다.
허재환 연구원은 “Y2K(밀레니엄 버그:2000년 이후 연도를 컴퓨터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결함) 우려로 실적이 앞당겨 나타난 후유증의 결과로 시스코 매출 증가율은 2000~2002년 큰 폭으로 둔화하였다”라며 “닷컴 버블이 붕괴한 이유 중 하나는 가파른 이익을 앞당겨 선반영한 이후 기업이익이 적자로 반전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스코가 겪었던 실적 둔화 조짐이 지금 엔비디아 실적에서는 아직 찾기 어렵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실적 둔화도 지나고 나서 파악할 수 있기 마련이다. 허 연구원은 “엔비디아도 약점이 있다면 경기 순환(cycle)을 피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라며 “엔비디아 매출 증가율을 보면 늘어나는 추세지만 3~4년마다 매출이 한 번씩 급격히 둔화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엔비디아는 지속되는 실적 증가세는 물론 높아진 금리 인하 기대감이 어우러지며 추가 주가 상승세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리 인하는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을 증가시키고, 이는 기술 주식을 포함한 다양한 자산으로의 투자 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AI 기술주는 자율주행 자동차,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이들 기업은 금리 인하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웰스 컨설팅 그룹의 최고 투자책임자(CIO) 짐 워든은 금리 인하로 인해 FOMO 심리가 강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FOMO 심리는 ‘놓치기 싫은 두려움’을 의미하며, 이는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을 급증하게 만든다. 그는 금리가 인하되면 “2022년 10월 미국 증시 바닥 때 증시에서 MMF(머니마켓펀드)와 채권 등으로 빠져나갔던 자금의 상당액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올 것”이라며 FOMO 심리에 불을 지를 수 있는 촉매가 연준의 금리 인하라고 밝혔다. 이어 “많은 자금이 증시로 들어오면 모든 주식이 다 올라갈 수 있다”며 탄탄한 매출 기반과 이익 창출 역량을 갖춘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주뿐만 아니라 이익을 내지 못하는 비우량 기업의 주가까지 일제히 다 상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워든은 “증시 전반이 일제히 오르고 또 오르면 이는 2021년 증시 고점 때나 1999~2000년 닷컴 버블 때처럼 기술적으로 나쁜 징조”라며 금리 인하가 AI 수혜주를 중심으로 거품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AI 시장은 기술 발전과 함께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중요한 시장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시각은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AI 기업들의 매출 회수 속도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엔비디아와 같은 주요 플레이어들이 AI 기술의 성숙 기간에 진입하면서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기술적 수용력 사이에는 큰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몇 달간 엔비디아와 AI 기술주들을 둘러싼 우려도 또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세쿼이아캐피털의 리포트에 따르면 AI 시장은 이미 한계점에 이르러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서는 “AI 반도체 시장에 투입된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시장 규모가 약 6000억달러(831조원)에 이르러야 하지만, 현재 성숙기에 진입했다는 스마트폰 시장도 5000억달러에 불과하다”라며 “AI 시장을 사실상 독점중인 엔비디아의 올해 추정 매출액은 1500억달러로 공백 지점이 너무 크다”라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 내에서도 AI 기술의 성장이 예상보다 더디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들이 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시장 규모가 약 6000억달러에 이르는 것이 필요한 AI 시장이지만, 현재는 이러한 수치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란 회의적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골드만삭스 또한 AI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들의 수익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AI 기술의 발전이 기업들의 실적과 매출에 긍정적으로 반영되지 않으면 시장에 큰 충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기업들의 막대한 AI 지출에 따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주식시장을 둘러싼 거품이 터지기 시작할 것”이라며 “AI 지출이 기업들의 실적과 매출에 긍정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부족한 수치가 나오면 AI를 둘러싼 투자심리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7호 (2024년 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