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 주요 서방국가들의 대중 압박이 점입가경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중국 전기차에 대해 각각 100%, 48%의 관세를 예고했고 중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돌파구 마련에 안간힘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양 진영의 평행선이 장기화되면서 또 다시 무역갈등으로 인한 거시경제 위기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대중 압박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앞서 5월 미국 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현재 25%에서 100%로 대폭 인상했다. 철강·알루미늄과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관세는 25%로, 반도체와 태양 전지 관세는 50%로 각각 올리며 대중규제에 앞장섰다. 중국이 보복성 조치에 나설 경우 미·중 통상 갈등이 격화할 것으로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미국 대선이 11월로 다가온 가운데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관세 정책이 더욱 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당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인한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무역대표부(USTR)에 이 같은 관세 인상을 지시했다. 관세 인상 대상은 중국산 수입품 180억달러 규모로 한국 돈으로 약 24조6510억원에 달한다.
우선 미국 정부는 올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100%로 올린다.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과잉 생산 리스크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보조금과 비시장적 관행 속에서 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70% 증가해 다른 곳에서의 생산 투자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의 중국 전기차 100%의 관세율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부터 미국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 이 조처로 미국 노동자들을 보호해 미국에서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만들 수 있게 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문제는 전기차뿐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대중압박을 강화하며 역효과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 관세를 올해 안에 7.5%에서 25%로, 리튬이온 비전기차 배터리 관세를 2026년 7.5%에서 25%로 인상한다. 배터리 부품 관세는 연내 7.5%에서 25%로 올릴 예정이다. 사실상 전기화 장비 및 부품에 대대적 관세 상향이 이뤄진다.
핵심 광물로 꼽히는 천연 흑연과 영구 자석엔 현재 0%인 관세율을 2026년 25%로 조정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중국의 핵심 광물 채굴과 정제 능력 집중은 미국 공급망을 취약하게 만들고 국가 안보 및 청정에너지 목표를 위험에 빠트린다”면서 관세 인상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또 연내 특정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를 현재 0~7.5%에서 25%로 인상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4월 USTR에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25%로 인상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나아가 2025년까지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현재 25%에서 50%로 인상한다. 태양 전지에 대한 관세는 모듈의 조립 여부와 상관없이 25%에서 50%로 올해 일괄적으로 인상한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고강도 대중 관세 정책이 발표된 가운데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며 미·중 관계는 더욱 악화일로로 갈 수 있다는 전망 역시 제기된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 입장에서 대중 고율 관세가 현실화하면 기존 배터리 등 전기화 부품 및 소재뿐 아니라 전방위적 압박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16일(현지시간) 공개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재집권 시 중국에 60% 이상의 ‘관세 폭탄’을 퍼부을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모든 나라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수입품에도 관세 10%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발언은 재임 시절인 2018년 중국과 서로 고율 관세를 주고받으며 무역 전쟁으로까지 비화했던 정책을 더 강화하려는 구상을 내비친 것. 집권 2기 트럼프노믹스(트럼프의 경제정책)는 ‘미국 우선주의’를 더욱 노골화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전 세계 경제와 무역 질서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트럼프는) 60~100%에 달하는 새 관세로 중국을 겨냥하는 것에 더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제품에도 전면적으로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며 “타국이 미국산 제품을 충분히 사지 않는다는 익숙한 불평을 장황하게 늘어놨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 관세 일률 부과’ 방침 이유에 대해 “그들(상대국들)이 우리에게 10% 이상 관세를 부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책임을 돌렸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동맹에도 거침없이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미국의 무역 적자가 2000억달러(약 276조원)가 넘는 점에 대해 “EU가 미국 자동차와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을 꺼리는 게 주된 원인”이라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내년 대중 고율 관세에 따라 중국이 받게 될 타격은 트럼프가 처음 미·중 무역전쟁을 쏘아올렸을 때보다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 고율 관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8년 하반기부터 실물경제 지표에 일제히 빨간불이 켜진 바 있다. 결국 그해 경제성장률은 1990년(3.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6.6%를 기록했다. 당시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미·중 무역전쟁이 심해지면 중국 경제성장률이 5%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이미 중국 경제성장률이 5%대로 내려앉았고, 이마저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보다 내부 상황도 훨씬 악화했다. 한때 중국 최대 성장 동력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했던 부동산이 고꾸라졌다. 소비 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그나마 수출이 4월 이후 3개월 연속 증가폭을 늘리며 전체 경제를 힘겹게 견인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대중 고율 관세 위험이 덮쳐온 것이다.
홍콩 크레딧아그리콜의 지샤오지아 홍콩 크레디트아그 리콜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2.0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국의 외부 수요 하락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왕타오 UBS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해 대중 관세 60%를 시행할 경우 이듬해 중국 GDP 성장률은 2.5%포인트 깎일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해 중국 경제는 5.2% 성장했는데 올해 목표치인 5.0% 안팎 성장률의 절반이 날아가는 셈이다.
유럽도 이러한 대중 관세 규제에 동참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중국 정부에서 불공정하게 보조금을 지급받았다며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17.4%∼38.1%포인트 잠정 관세를 추가로 부과할 계획을 중국 업체에 통보했다. EU는 현재 중국산 전기차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이번 추가 잠정 관세 부과 조처가 적용되면 최대 48.1%까지 관세를 부과한다. 대상이 되는 업체는 중국 비야디(BYD)와 지리자동차, 중국 상하이자동차그룹 등이다. 추가 관세 부과 조처는 오는 11월까지 27개 회원국이 승인하면 향후 5년간 시행이 확정된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집행위원회 무역 담당 부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공평한 경쟁의 장을 회복하고, 전 세계적으로 합의된 무역 규칙을 지킨다면 유럽 시장은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자들에게 계속 개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역시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한 새로운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진행방식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조만간 중국이 캐나다에 전기차를 수출하는 것에 타격을 줄관세에 대한 공개 협의 시작이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재무장관은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캐나다는 중국의 과잉생산에 대응하기 위한 다음 조치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면서 대중국 제재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즉각 반발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중국 상무부는 성명을 내어 “EU는 사실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무시하고, 중국의 거듭된 강력한 반대를 무시했으며, 많은 EU는 회원국 정부와 산업계 입장을 무시했다”며 “중국 정부는 중국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확고히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중국도 프랑스산 브랜디 등 일부 유럽산 주류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한 상태다.
중국 내부에서는 우회 수출을 위한 대외 관계 다지기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018년 미·중 무역 전쟁 이후 대미 수출 비중을 줄이고 동남아, 유럽 등으로 향하는 수출을 늘려놓은 바 있다.
실제 미국과 유럽의 견제에도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특히 EU와 인근 지역에 생산 기지를 집중 신설하며 현지화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에 견줘 상대적으로 경제 활력이 떨어진 EU의 속사정도 깔려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지난 8일 유럽 대륙에 인접한 튀르키예와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 규모의 공장을 짓기로 협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중국을 대표하는 전기차 업체다. 비야디에 이어 상하이자동차, 창청자동차, 체리자동차 등 다른 중국 업체들도 튀르키예에 공장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는 이를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잃지 않기 위한 중국 회사들의 전략으로 바라본다. EU가 중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 최대 47.6%의 관세를 부과키로 하자 튀르키예에 생산기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유럽 시장에 우회 수출을 하려는 포석이다. 튀르키예는 지리적으로 유럽시장과 맞닿아 있다. 비야디와 튀르키예의 협약도 공교롭게 EU의 관세 정책 발표 사흘 뒤에 체결됐다.
중국의 이런 전략은 미국 시장을 겨냥해서도 이뤄지고 있다. 유럽의 우회 수출 생산기지가 튀르기예라면 미국 시장의 우회 수출 기지는 멕시코다. 멕시코는 미국·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어 대미 수출 관세가 낮다. 비야디는 지난 5월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100%로 끌어올리기로 한 직후 멕시코 공장 신설을 서두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미국과 다른 EU의 이해관계 사이의 빈틈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독일 등 유럽 완성차 업체의 비중이 큰 터라 유럽은 미국에 견줘 중국의 보복에 취약한 위치에 서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폭스바겐 등 중국 내 독일 완성차의 점유율은 18%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허약한 유럽 경제도 중국 완성차 업체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은 여전히 0%대다.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도 빠르게 줄고 있다. 이 때문에 EU는 중국산 전기차를 견제하면서도 관련 업체들의 역내 투자 및 생산은 환영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현지 투자 및 생산을 강력하게 차단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풍경이다. 비야디는 헝가리에, 체리자동차는 스페인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추동훈 기자 · 송광섭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