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와 한산한 평일의 모텔 숙박비는 크게 10배가 차이 난다. 항공권 역시 같은 노선이라도 기름값이나 성수기 여부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편이다. 이렇게 제품 및 서비스의 가격을 유동적으로 변경하는 가격 차별화 전략을 일컬어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이라 부른다. 국내에서는 ‘탄력가격제’ ‘가변가격제’ ‘가격변동제’ 등 다양한 용어로 번역되어 사용된다. 횟집에서 희소한 물고기의 가격에 정가(Fixed price) 대신 시가(Market price) 개념을 적용하는 것에 착안해 시가 마케팅 전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전략은 실시간 수요와 공급, 경쟁 상황, 소비자 행동 등의 다양한 가변 요인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한다. 최근들어 이러한 다이내믹 프라이싱 전략을 위해 기업들이 AI를 속속 도입하는 등 수익성을 최적화하고 소비자에게 맞춤형 가격을 제공하는 데 차용하는 분야가 늘어나고 있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과거 항공, 호텔, 전자상거래 등의 특정 업계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으나, IT 기술의 발달과 소비자 인식의 개선에 따라 다양한 영역으로 그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예를 들어, 항공사와 호텔은 예약 시점에 따라 가격이 변동하는 구조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모델은 이제 온라인 쇼핑몰, 스포츠 경기 티켓, 음식 배달 서비스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온라인 영역을 넘어 오프라인 업종에서도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알게 모르게 국내에서도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적용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프로야구단 NC다이노스는 야구장 티켓에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하여 경기마다 입장권 가격을 유동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2022년에는 6개였던 입장권 종류가 2023년에는 85개로 세분화되었으며, 외야 블록의 경우 최저 1800원에서 최고 1만원까지 가격이 변동된다.
또한, 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는 업계 최초로 본사가확보한 고객 빅데이터를 가맹점주와 공유해 각 매장 특성에 맞춘 자율적인 할인 마케팅이 가능하도록 운영 시스템을 개편했다. 이를 통해 각 점포는 매장별 분석 데이터를 참고하여 핵심 고객군을 선정하고, 자율적으로 할인쿠폰을 발송하여 수익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편의점업계에서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통해 소비자 혜택을 주는 동시에 재고를 줄이는 데 활용하고 있다. 편의점 GS25는 자사 앱 ‘우리동네GS’에 ‘마감할인’ 기능을 새롭게 추가하여 하루 네 번 소비기한이 임박한 도시락이나 김밥 등을 최대 45%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는 앱에서 할인 상품을 구매하고, QR코드를 제시하여 매장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상품을 수령할 수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편의점뿐 아니라 베이커리, 마트 등에서도 다이내믹 프라이싱 전략은 소비자에게 가격 혜택을 제공하는 동시에, 매장에서의 재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이러한 할인 서비스는 소비자의 구매 빈도를 높이고, 매출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쇼핑몰 쿠팡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하고 있다. 쿠팡은 주요 온라인 쇼핑몰의 가격을 모니터링하여, 경쟁사가 더 싸게 판매하는 상품을 발견하면 자동으로 가격을 낮춘다. 이는 생수, 우유, 화장지 등 생필품 카테고리에서 특히 활발히 이루어지며, 소비자에게 항상 최저가를 제공하는 전략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A브랜드의 두루마리 화장지 가격이 타사보다 비싸게 책정된 경우 모니터링을 통해 최저가 이하로 조정하는 식이다. AI가 실시간으로 경쟁사 가격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논란도 함께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하이브가 BTS 멤버 슈가의 미국 콘서트 티켓에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한 사례는 일부 소비자에게 비난을 받았다. 일부 티켓 가격이 정가의 5배에 달하는 200만원대로 판매되면서 가격 인상 꼼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하이브 측은 “국내 도입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기 있는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의 티켓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은 소비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으며, 기업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NC다이노스는 2022년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한 후 주중 8000원이었던 외야석 가격이 5만7500원으로, 4만5000원이었던 스카이박스 가격이 72만8000원으로 폭등하는 등 구단의 비합리적인 가격 책정과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에 야구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외에 글로벌 테마파크 레고랜드를 운영하는 멀린엔터테인먼트는 성수기와 비성수기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받는 탄력요금제를 도입하려했으나, 국내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적용이 소비자의 인식과 기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테마파크와 같은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곳에서는 가격 변동에 대한 민감도가 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에서 우버식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최근 패스트푸드 체인점 웬디스가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하려다 소비자들의 반발로 계획을 철회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호텔 숙박료, 항공 요금, 콘서트 티켓 가격, 전기와 가스 요금, 자동차 보험료 등이 성수기에는 오르고 비수기에는 내려가는 것은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초기 형태였다. 이후 아마존과 차량 공유업체 우버가 이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우버는 2017년 영국 런던 테러 사건 발생 당시 실시간으로 요금을 올렸다가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글로벌 온라인 쇼핑앱인 아마존은 실시간으로 수많은 자료를 분석해 수요 변화와 경쟁 업체 가격을 파악하고 평균 10분에 한 번씩 제품 가격을 변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미국 규제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아마존이 실시간 가격 변동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10억달러(약 1조 3400억원)의 추가 수익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아마존은 이후 다이내믹 프라이싱 프로그램 알고리즘 사용을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몇몇 제품 가격 추적 사이트는 아마존의 제품 가격이 여전히 수시로 바뀌고 있다고 폭로하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아마존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주요 도시가 폐쇄된 상황에서 주요 생필품 가격을 400%까지 올렸다. 마스크 가격은 1000%까지 오르기도 했으며, 이는 소비자들의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외에 아마존은 신규 회원 유치를 위해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에게 충성 고객보다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다가 불매 운동을 겪기도 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해 미국 패스트푸드 업체인 웬디스의 커크 태너 CEO가 디지털 메뉴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그는 웬디스 매장에 AI 기술을 접목한 전자 메뉴판 도입을 위해 3000만달러(약 400억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미국 언론은 웬디스가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통해 가격 인상 수순에 나섰다고 보도했고, 소비자들은 이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웬디스는 기술 도입을 철회했다.
다만,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러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에서는 식당, 극장, 택시 이용뿐 아니라 다양한 일상 영역에서도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적용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 일부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샌드위치 가격이 시간과 수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10~15% 변동하고 체육관, 골프장 같은 일상생활 영역에까지 침투했다.
최근 소비자들이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혜택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업계에서 이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레스토랑협회(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가 발간한 ‘2023년 요식업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의 79%가 인플레이션 영향을 고려할 때 다이내믹 프라이싱 도입을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특히 외식업계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 빅데이터와 AI의 발달로 소비자의 행동 패턴과 구매 성향을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유연한 가격 책정과 개인화된 맞춤 가격 제시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 변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맞춤화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어 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김남경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다이내믹 프라이싱 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가격을 탄력적으로 책정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에 대해 명확히 소통해야 한다”라며 “가격 인상 정보는 물론 인하 시기와 기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소비자와 신뢰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특히 가격이 납득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변동될 경우 소비자의 반발과 신뢰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격 상하한 설정과 같은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는 것이 김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가격 변동이 무작위적이거나 불공평하다고 인식될 경우 소비자는 이를 기만행위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명성과 공정성 원칙에 기반한 가격 책정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명확히 안내함으로써 소비자를 납득시키는 것이 중요한 작동원리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유용한 전략”이라면서도 “성공적인 도입과 정착을 위해서는 소비자와의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한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6호 (2024년 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