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완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소장은 미중 갈등으로 지정학적 위상이 높아진 인도에 대해 “우리의 접근은 여전히 단기적이고 일회성 수준”이라면서 “전 세계 메이저 국가들이 인도와 협력을 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쉬운 쪽은 우리”라고 밝혔다.
김찬완 소장은 매경럭스멘과의 인터뷰에서 한-인도 관계에 대해 이렇게 진단한 뒤 “현재의 인도는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 높아진 몸값을 바탕으로 전략적 자율성 속에 철저하게 국익 우선의 행동을 하고있다”며 “우리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지만, 글로벌 관계 속에서 정작 미국이 원하는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인도”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대안으로서의 인도의 가치가 계속 부각되면서 글로벌 투자의 중심에 서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의 대인도 접근법은 지난 2010년 이후 별로 달라진 게 없다”면서 “전략이 없으니 우리 기업들의 인도 진출도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한국과 인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설정과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을 통해 양국 관계의 전환점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우리 기업의 현지 진출과 관련해 “28개 주로 이뤄진 인도는 각 주마다 언어와 종족 그리고 문화가 모두 달라 기업이 어디에 둥지를 트느냐에 따라 접근 전략이 완전히 달라진다”면서 “준비 없이 들어간 기업의 대부분은 힘든 시간을 보내거나 결국 짐을 싸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인도가 여전히 기회의 땅인 것은 맞지만 이를 잡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면서 “현대차의 성공만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Q 글로벌 인도 바람에 우리 기업들의 인도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데요. 인도의 각 주마다 언어가 다르다는 말이 이채롭습니다.
A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를 ‘INDIA’란 단일 시장으로 보는데, 사실 28개의 인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후 인도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췄지만, 각 주마다 언어와 종족이 다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단순한 말도 통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각기 다른 나라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인도라고 부르는 개념은 사실 상상 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도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 개념인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Q 인도에 진출하려면 각 지역적 특성을 먼저 살펴야 할 것 같은데, 기업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습니다.
A 우리 기업들이 인도 진출을 위해 이런 문화적 특성을 세세하게 알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그럴 여력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현재 인도의 당면 과제인 일자리 문제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현재 인도의 가장 큰 고민은 잉여 노동력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14억 명이 넘는 인구의 먹고 살 거리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느냐의 문제인데, 이를 둘러싼 지역 간 경쟁도 치열합니다. 자체 역량이 모자라니 투자 유치에 노력을 기울이고 이를 위해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는데 그 차이가 꽤 큽니다.
세제 혜택도 다릅니다. 그래서 인도에 진출을 원하는 기업들은 각 주들의 이 같은 정책들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 유치에 경쟁적인 주 정부 사이에서 투자 주체인 우리 기업이 실리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 현지에서 아예 각 주들의 담당자들을 모아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우리가 투자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가 이 정도인데 당신들이 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시하라는 식의 경쟁구도를 만드는 것이죠. 그 사이에서 현지의 문화적 정보는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Q 그런데 인도 정부가 원하는 투자 대상은 반도체, 방산, 바이오 등 첨단 산업 위주 아닌가요? 관련 중소기업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A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주정부가 원하는 일자리의 질(?)입니다. 인도의 가장 큰 장점으로 풍부한 노동력이 거론되는데, 문제는 기술 위주의 첨단 산업의 경우 인도가 원하는 만큼의 일자리를 제공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정부들 가운데에는 노동집약적 산업 유치를 원하는 곳들이 꽤 있습니다. 주정부 단위의 노동 인력들은 교육수준이 낮고 특별한 기술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고도화되는 인도 경제 속에서 점차 소외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일자리 정책은 사회 안정과도 직결돼 있기 때문에 주정부에서 계속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력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 관련 중소기업들이 들여다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노동집약적 산업 같은 경우 아세안 선호도가 높은데요.
A 그렇긴 하지만 임금 수준은 인도가 아세안에 비해 경쟁력이 있습니다. 생산성도 종종 아세안 선호 이유로 거론되긴 하지만, 인도 내 어떤 주를 택하느냐에 따라 노동력의 질도 달라집니다.
Q 우리 역시 인도와 주로 첨단 산업 쪽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것 같습니다.
A 그래서 투 트랙 전략으로 인도 시장에 접근해야 합니다. 연방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하는 반도체, 바이오, 우주항공 등의 첨단 산업과 주정부가 원하는 노동 집약적 제조업을 동시에 겨냥해 정부와 기업이 진출 전략을 짜야 합니다.
Q 일자리 부족이 모디의 총선 압승을 막은 원인으로 거론됩니다.
A 맞습니다. 모디에게 반기를 든 표심 중 상당수가 젊은 층으로 파악되는데 인도가 고속 성장을 하고는 있지만 인도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이들은 모디의 2번의 집권 기간 동안 그가 추구한 성장 기조의 경제 정책에 환호를 보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전혀 나아지는 것이 없는 현실에 조용히 분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BJP의 텃밭이자 정치 1번지인 우타르프라데시 지역조차 모디에게 등을 돌렸겠습니까. 모디의 대표 정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도 애초 세계의 공장 중국이 가졌던 제조업 인프라를 가져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고부가가치를 내는 산업보다 풍부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을 인도 내에서 육성해 국민 전체에게 고른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기대만큼 제조업 인프라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결국 일자리 부족이 모디의 발목을 잡은 것이죠.
Q 모디를 뒷받침했던 힌두 민족주의가 약해졌다고 봐도 될까요.
A 그렇습니다. 힌두트바란 말이 있는데, 풀이하면 ‘힌두성’을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인도는 힌두의 나라고, 인도에 사는 이들은 힌두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모디는 이를 바탕으로 강한 인도를 표방해 그동안 통치해 왔습니다. 이런 기조가 그동안 국민들에게 잘 스며들었는데, 앞서도 말했듯이 일자리 문제 등 민생고 앞에 이번에 힘을 못 쓴 것이죠. 모디는 총선을 앞두고 지난 1월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 분쟁지’인 아요디아에 건립된 대규모 힌두교 사원 축성식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헌법상 원칙인 세속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아요디아는 힌두교 신 ‘람’의 탄생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런 행보는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지만, 정작 숨어 있는 젊은 층의 표심은 읽어내지 못한 것입니다.
Q 연정으로 출발한 모디 정부가 순항할 것 같습니까.
A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연정에 참여한 정당들은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들이 대부분인데, 기본적으로 지역의 발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을 유치하거나 교통망을 개선하거나 하는 것이 의정 활동의 우선 순위인데, 성장을 우선시하는 모디 총리와 정책 방향이 비슷합니다. 특히 핵심 연정 상대 중 일부는 모디 총리보다 더 성장 우선의 경제 정책 기조를 보이는 곳도 있습니다. 다만 모디 총리가 내세우는 강한 힌두 민족주의에는 동의하지 않아, 이 부분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디 총리도 이번 선거에서 단독 정권을 세우지 못해 이전처럼 강한 힌두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로 인한 특별한 충돌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Q 이번 선거 결과로 인해 성장 일변도 정책을 완화할 가능성은 있을까요.
A 모디의 3기 정부는 연정과 야당이라는 뚜렷한 상대가 있기 때문에, 직전 정부 때처럼 일방통행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특히 일자리 문제로 서민과 젊은 층의 이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정권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분배 문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Q 한-인도 간 당면 현안으로 CEPA 개정 문제가 있는데요.
A 개정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인도가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2010년 체결된 CEPA는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특정 품목의 경우 일반 관세보다 세율이 더 높습니다. 인도가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우리와의 무역에서 적자 폭이 크기 때문입니다. CEPA개정을 통해 얻을 게 별로 없다는 것이죠. 실리적 접근을 해야 하는데, CEPA 개정 문제에서 인도가 원하는 일자리 창출과 연계한 협상 전략도 고려해봄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수인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6호 (2024년 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