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X 못지않게 전국 교통망 구축과 관련해 관심을 모으는 것이 지상 철도의 지하화 구상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지상 철도의 지하화 이슈를 내던졌다.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지상 철도의 지하화 이슈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나왔지만 이번에는 좀 양상이 다르다. 지난 1월 ‘철도 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 개발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추진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말뿐인 추진 의지였다면 지금이번 철도 지하화 구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공약에서 출발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지상 철도 구간의 지하화 공약을 내세웠고, 당선 후에는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그러다 지난 1월 25일 자신이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구체적 계획을 밝히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상철도의 지하화 관련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구상은 여야의 특별한 이견이 없는 상태다.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는 정치권이 지상 철도 지하화 구상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민심을 자극하는 데 이만한 소재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 정책과는 별개로 여야 모두 4월 총선에서 지상 철도의 지하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당이 전통적으로 약세인 경기 수원 장안구를 찾아 철도 지하화 공약을 발표했다. 수원 장안구는 복복선(복선을 이중으로 놓은 4개 선로)인 경부선 철도가 지나면서 도시가 동서로 갈린 지역이다. 이 때문에 지역 외관부터 노후화됐고 개발도 더디다. 국민의힘은 전국 주요 도시의 철도를 지하화하고 철도 지하화로 생겨난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를 통합 개발해 ‘미래형 도시공간’으로 재창조하겠다는 구상을 내세우고 있다. 구체적 지하화 관련 내용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추진 중인 지상 철도 지하화 계획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듯싶다. 집권당으로서 어느 정도 정부와 교감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윤 대통령의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3월 첫 단추인 종합계획 마련에 나선다. 지하화될 노선과 구간을 비롯해 지상 공간의 개발 구상, 철도 네트워크 재구조화 방안 등이 담길 전망이다. 용역을 거쳐 6대 특별시·광역시 등을 중심으로 내년 12월까지 노선을 확정할 계획이다. 재정 문제 등으로 사업성 확보가 어려운 지방을 고려해 수도권과 짝지어 패키지 개발하거나 추가 출자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국토부는 철도 지하화 사업의 성공모델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일부 구간은 선도 사업으로 지정해 신속히 추진한다. 국토부는 올해 12월까지 지방자치단체가 제안한 사업 중 완결성이 높은 구간을 선도 사업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선정된 철도 구간은 종합계획 수립 이전부터 기본 계획을 수립해 최소 1∼2년 준비기간이 단축된다. 총 사업기간은 13년 정도로 잡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정부 측의 이 같은 철도 지하화 구상에 뒤질세라 ‘철도 도심구간 지하화 4대 약속, 4대 실천’을 빠르게 내놓았다.
민주당의 철도 지하화 공약은 정부와 여당의 구상보다 더 파격적이다. 기존의 철도, GTX, 도시철도까지 모두 지하화에 나서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는 정부 여당이 지자체가 제안한 기획안을 검토해 사업을 선별하겠다는 구상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민주당의 구상에 따르면 지하화 대상 노선은 수도권은 물론 부산, 대전, 대구, 호남의 철도와 도시철도 2·3·4·7·8호선으로, 사실상 지역 구분 없이 도심을 지나는 지상 철도를 모두 지하화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토대로 지역을 찾을 때마다 관련 철도의 지하화 공약을 내세우며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정부·여당과 야당 모두 이처럼 철도 지하화 관련 장밋빛 청사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현은 또 다른 문제다. 가장 큰 관건이 예산이다.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나왔지만 실현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지하화 관련 특별법으로 숨통이 어느 정도 트인 상태다. 특별법의 핵심도 예산 확보에 맞춰져 있다. 법안에 따르면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시행에 필요한 비용의 경우 사업시행자가 부담하고, 철도 지하화 사업에 필요한 비용은 철도부지개발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충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사업시행자에게 철도 지하화사업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보조하거나 융자할 수 있다.
국토부장관은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철도부지를 ‘국유재산법’에 따라 출자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시행자는 비용 조달을 위해 ‘철도지하화통합개발 채권’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 여당은 관련 예산을 50조원, 민주당은 80조원으로 잡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추정 액수와 자금 조달 방안의 적절성 여부를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이번에 공약으로 나온 철도 지하화 사업이 국내에서 사실상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경험이 없으니 예측력이 부족할 수 있단 얘기다. 실제 보통 대규모 건설 공사의 경우 사업 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나는 일이 많고, 외부 변수에 의해 공사비가 늘어나는 일도 허다하다.
지난해 서울시가 내놓은 ‘서울시 지상철도 지하화 추진전략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시가 지난 2013년 따져본 서울 내 국철과 도시철도의 지하화 총사업비용은 약 38조원(기준 시점은 2010년)이었는데, 이를 2010~2021년 사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약 18.7%로 적용해보니 45조2000억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계산이긴 하지만 물가 상승률만으로도 벌써 10조원 넘는 비용이 증가했다. 이 액수가 서울시의 국철과 도시철도에 국한해 추산한 것임을 감안할 때 전국의 모든 철도 지하화 관련 총사업비로 확대하면 그 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 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수치에는 최근 살인적인 물가 상승 추세는 빠져 있다. 민주당이 전국의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겠다는 사업 공약을 내놓으면서 추산한 1㎞당 공사비 금액은 4000억 원정도다. 전국적으로 80조원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지하화할 철도 노선의 길이는 서울 전체의 국철과 도시철도를 지하화하는 구간보다 훨씬 길다. 2021년 기준으로 서울시에만 45조원 정도의 지하화 관련 예산이 소요되는데, 전국적 공사비가 80조원에 그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부 여당의 50조원 구상도 부족해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해외 사례를 봐도 공사비는 천문학적이다. 일본의 경우 도큐전철의 철도 노선 도요코선의 1.4㎞(시부야역~다이칸야마역)를 지하화하는 데 쓰인 공사비용은 1조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경부선 구간(서울역~영등포, 10.2㎞)를 지하화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2013년 기준으로 12조원이나 든다. 대만에서 진행된 철도 지하화 사업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우리의 경부선에 해당하는 종관선의 가오슝 철도 지하화 사업인데, 총 14.27㎞ 구간을 지하화하면서, 4조2500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이와 함께 현재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은 재원을 ‘민간 유치’를 통해 하겠다는 구상도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특별법 통과로 지하화 공사비뿐만 아니라 상부 구간 개발에 따른 이익까지 비용대비편익에 포함시킬 수 있어 민간 유치를 보다 쉽게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인데,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민간은 기본적으로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고, 혹 사업에 참여했다 할지라도 이익이 줄어들면 잡음을 내서라도 이익을 챙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민간 투자자들이 철도 지하화 사업에 뛰어들었더라도 여러 변수에 이익이 줄어든다면 공사 진행 과정에서 정부를 향해 세금으로 이를 보전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 말란 법도 없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자잿값 인상으로 재건축 공사비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사업장 곳곳에서 야기되고 있는 것만 봐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실제 공사 착수에 들어갈 때는 정교한 계획과 예산 추산이 반드시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철도나 도로가 지하화되는 토지 상부에 민간이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사용·수익권을 완전하게 줘야 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지하화(비용 마련)의 핵심은 민간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사업·수익권을 주는 것”이라며 “투자 비용을 회수하는 데 50년으로는 택도 없을 수 있다. 이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산도 문제지만 기술적 난제도 걸림돌이다. 2022년 서울시가 내놓은 서울시도시기본계획(안)을 보면 거론된 지하화의 단점 중 ▲지하화 공사 시 기존선 운행 중단 우려 ▲지하 구간은 재난에 취약 ▲도심부 장거리 지하 건설은 공사가 어려움 ▲추후 확장 공사 등 기술적 부분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도요코선 지하화 사례가 종종 검토된다. 지하화 공사는 단 하루에 진행됐는데, 야간 열차운행 차단 시간 동안 실시했다. 공사에 투입된 인원만 1200명으로, 이들은 짧은 시간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궤도 및 전차선 하강·연결, 승강장 높이 조절 등의 작업을 완료했다. 이를 위해 오랜 사전 준비와 기술적 검토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