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일본 경제가 드디어 침체기를 벗어나는 것일까. 4월 이후 오름세를 탄 일본 대표 증시지수인 닛케이225가 예사롭지 않다. 6월 들어서도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33년 만에 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기염을 토하고 있다. 닛케이225가 상승한다는 것은 일본 기업들의 주가가 오른다는 것이고, 이는 침체됐던 일본 경제가 반등의 기회를 찾아내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박상준 와세다대학교 국제학술원 교수는 이와 관련해 “최근 일본 증시의 상승은 일본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라며 “일본 주요 기업들은 그동안 부실사업을 털어내고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체질 개선 작업에 나서왔다”고 말했다. 워런 버핏의 투자로 관심을 모았던 일본 종합상사의 경우 지난해 글로벌 공급망 이슈 등의 수혜로 역대 사상 최고의 실적을 냈다.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는 여느 때보다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큰데, 한때 맹주였지만 지금은 존재감도 없는 반도체 분야에서까지 다시 옛 영광을 찾으려 민관이 힘을 합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최근 분위기와 달리 일본이 경제의 궁극적 부활을 위해 넘어야 할 고질적인 문제들이 여전하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들을 극복해내지 못하면 회복세를 보이는 경제가 다시 발목 잡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 부활의 발목을 잡을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고령화다. 고령화가 사회의 탄력성과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문제는 여전하다. 일본의 인구는 2010년 1억2805만 7000명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세다. 일본은 인구 10명당 3명이 노인일 정도로 고령화가 심하다.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1.3으로, 가임 여성의 평균 출생아 수는 1명을 넘지만 저출산 문제는 여전하다. 당연히 생산가능인구도 하향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찌감치 해외 노동자들에게 문을 열었지만 인력 부족 현상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AI 등 미래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첨단과학기술분야의 인재는 벌써부터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디지털 행정화를 위해 야심차게 추진 중인 마이넘버카드 사업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주민증 격인 마이넘버카드에 타인의 건강보험 정보가 입력된 사례가 나타났는데, 일본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코딩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고 꼬집었다. 디지털화에 필수인 코딩을 제대로 구현해낼 인재가 없어서 나타난 사달이라는 것이다.
불편하지만 해소되지 않는 일본의 아날로그식 행정 절차 또한 이의 연장선상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 인사는 “이사를 위해 전입과 전출 신고를 각각 해야 하는지 몰랐다”면서 “이사 간 곳에서 전입 신고만 하면 자동으로 전출 신고가 되는 우리를 생각하면 안된다”라고 전했다. 도쿄에서도 구마다 관련 서류 양식이 다르다.
지난해 일본서 귀국한 또 다른 인사는 “행정 서류가 각 지자체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직접 접하고 보니 당황스러웠다”면서 “지방 분권이 확실히 보장되는 것의 역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불편한 행정 시스템을 간편하게 개편하고자 하는 것이 마이넘버카드 사업의 골자지만 디지털 인재 부족으로 쉽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작업이 느린 것 역시 고령화와 무관치 않다. 노인들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디지털화만 가속화하면 관련 기기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30년 이후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 할 때 종종 이야기되는 것이 낮은 생산성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과 기업 등에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 임금 인상 움직임이 있는데, 생산성과 관련해 해석해볼 여지가 있다. 일본 역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조류를 피해가지 못해 물가가 오르고 있어 임금 인상이 필요한 상황. 기시다 정부는 이에 적극적인 임금 상승 유도를 하고 있고, 기업들도 이례적으로 적극 동참하고 있다. 임금 인상은 기업들의 수익 압박 요인이 되지만, 소비를 자극하고 혁신이 중요한 시기에 일할 동기 부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신호로 여겨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30년 만의 임금 상승과 관련해 “투자 의욕 상승 등 긍정적인 조짐이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을 강화하고 확대하기 위해 대응 속도를 더욱 올리겠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전입 신고 사례는 행정 비효율의 전형이다. 디지털화만 됐어도 쉽게 처리될 수 있지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다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절차도 복잡하다는 것이 경험한 이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일하지 못하니 당연히 생산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너무 오래 걸려 불만을 제기하려 해도, 담당 공무원들을 보면 정말 바빠 보여 그냥 처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는 한 경험자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내부 역동성 또한 일본 경제 부활과 관련해 종종 부족한 점으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이 문제는 일본 내부 투자와 소비를 저해시키는 요인과 연계 되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닛케이 평균의 상승을 두고 이 같은 기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여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일본 경제의 반등이 글로벌 강대국들 간의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수혜란 거시적 측면의 변화 요소이기 때문에 그 파장이 길게 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당장 일본 내에서는 반도체산업 부활을 기치로 일본 주요 기업들이 한데 뭉치는 등 관련 움직임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때 반도체산업의 선두주자였지만 한국과 대만 등에 주도권을 내준 후 일본 반도체산업은 빈사 상태다. 하지만 지정학적 갈등으로 TSMC, 삼성 등이 일본 내에 공장을 지으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선두주자들을 상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도전 의사를 내비치는 자체가 큰 변화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렇다 할지라도 개인들이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소비 빗장을 바로 풀지는 않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경제위기와 오랜 디플레이션 상황에 각자의 안정적인 상황 관리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최근 증시 반등과 더불어 일본 개인투자자들이 다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현지 보도도 나오고 있지만 극적인 상황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전자제품 왕국이었던 일본이 세계 시장에서 밀린 것은 기술이나 서비스에서 국제표준을 따르지 않고 자체적인 기준을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일본 실패를 논할 때 익숙한 주제다. 실제 이로 인해 일본 전자제품은 고립무원의 상황을 맞았고, 결국 삼성전자 등 후발주자들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를 두고 일본의 갈라파고스화라는 말이 생겼다.
1980년대 말 액정패널, DVD 플레이어, 내비게이션 등이 대표적으로 몰락한 일본의 전자제품들이다. 일본 제조업의 갈라파고스화 현상은 디지털 시대의 전환기에도 계속됐다. 1999년 일본 통신회사 NTT도코모는 휴대전화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모드를 내놨는데,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추는 등 스마트폰을 대중화시킨 아이폰과 유사한 사업 모델을 갖췄다. 하지만 도코모는 사용에 있어서 자사 도메인을 통한 등록을 필수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독자성을 강조했고, 이에 반해 아이폰은 개방형을 택했다. 결과는 주지하다시피 아이폰이 관련 시장을 장악했다. 그렇다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 산업에 전 세계가 올인하고 있는 지금 일본은 달라졌을까. 걱정스럽게도 갈라파고스화의 그림자가 여전히 아른거린다.
‘하이브리드’를 고집하며 전기차 시대에 뒤처진 토요타가 대표적이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의 강자인 토요타는 전기차로 바뀌는 급속한 흐름 속에서도 하이브리드 차종에만 주력하다가 전기차 시장에서는 후발주자가 돼버렸다. 토요타는 이를 2027년 전고체 배터리 탑재 전기차 양산을 통해 뒤집으려 하지만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 등 기존 배터리 제조 강자들도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적극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내부의 갈라파고스화에 대한 지적도여전하다. 폐쇄적 성향이 짙은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나오는 지적인데, 일본인들은 자국의 상품이나 기준을 더 높이 평가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맥을 못 추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인 모노즈쿠리가 일본 경제 부활의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있다. 끈기와 고집, 전통 고수 등으로 대변되는 모노즈쿠리는 일본 제조업을 세계적인 반열로 끌어올린 원동력이지만,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특유의 꼼꼼함으로 과도하게 높은 품질 기준을 고수하는 것도 비용이 증가되는 등 생산성 향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