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시경제에 진입하고 있습니다(We are entering a war economy).”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3일 EU이사회 의장국 수락연설에 꺼낸 이야기다. 글로벌 경제가 블록(Block)화되고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격화되고 있다. 디커플링은 세계 경제에서 한영역의 성장이 다른 영역의 성장에 덜 의존하는 현상으로 정의되며 수출입보다 내수경제에 비중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중 갈등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높이고 있어 기업들로서도 마냥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탈중국 수요를 얻기 위한 국가와 기업들의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수혜 예상되던 한국 반도체 반사효과 미미
문제는 중국은 중국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연결을 풀고 공산당의 신념에 더 부합하는 ‘권위주의’ 국가 중심의 새로운 진영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4월 달러 기준 수입액은 전년 대비 7.9% 감소해 7개 월 연속 하락했다. 지역별로 보면 갈등의 상대국인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감소가 3.1% 수준에 그친 반면 한국으로부터 수입 감소는 26.0%에 달했다. 특히 한국의 성장 동력인 집성회로(반도체)와 자동차·부품 등의 가격과 수입 물량이 모두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 호황을 누렸던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비상이 걸린 셈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의 최근 중국 내 영업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현지법인을 통한 매출 비중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SK하이닉스, 현대차, LG전자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현지 매출도 급격히 위축되면서 중국 사업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삼성전자 1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소재지 기준) 내 법인에서 발생한 매출액은 5조 5652억원으로 전체 매출액(63조7453억원)의 8.73%를 차지 했다. 삼성전자가 지역별 법인의 영업 현 황을 기재한 2014년 4분기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분기 단위로 중국 비중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것도 지난해 3분기 (9.64%) 이후 두 번째다.
SK하이닉스는 역시 중국 매출 비중이 확연히 줄어들고 미국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매출 비중은 2019년 46.57%로 절반에 육박했지만 지난해에는 27.36%까지 줄었다. 반대로 미국 매출 비중은 2019년 30.16%로 중국 비중보다 적었지만 2020년 39.77%로 중국(38.30%)을 앞섰고 지난해에는 53.70%로 절반을 넘겼다.
현대차 역시 중국 합작법인 베이징현대 (BHMC)는 1분기 매출이 1조1522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전체 현대차 매출(37조7787억원)의 3%에 불과했다. BHMC는 현대차가 연간 114만 대 넘는 차를 판매한 2016년 1분기만 해도 매출 4조3787억원을 거두며 같은 기간 회사 전체 매출의 19.5%를 책임졌었다. 기아 또한 중국 법인 장쑤위에다기아(KCN)가 올 1분기에 3857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체 기아 매출(23조6907억원)의 1.6%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중국 내 부진을 보이는 한국 기업들의 탈중국 반사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미중 통상 갈등 이후 미국 반도체 수입 시장에서 중국산 비중은 3분의 1토막 났는데 한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소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2018년 미중 통상 갈등 이후 미국 반도체 수입 시장을 대상으로 주요국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중국의 점유율 하락(-18.5%포인트)을 기회로 대만(+9.7%포인트), 베트남(+7.3%포인트)이 점유율을 빠르게 늘리며 반도체 생산기지로서 입지를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점유율도 상승했지만 상승 폭(+1.8%p)은 상대적으로 소폭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대만과 베트남은 미국의 반도체 최대 수입품목(33.4%)인 ‘컴퓨터 등의 부품에서 중국의 입지 약화를 기회로 점유율을 늘리며 반사이익을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 등의 부품’에서 미국의 대중 수입액은 2018∼2022년 96.7억달러 감소(-58%)했는데 같은 기간 대만 수입액은 75.6억달러가(+327%) 증가했다. 베트남 수입액은 35.1억달러 (+40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수입액은 25.8억달러 (+52%) 증가하며 중국의 공백을 신속하게 대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2018~2022년 ‘컴퓨터 등의 부품’은 중국의 미국 수입 시장 점유율 하락에 15.0%포인트 기여한 반면 대만, 베트남, 한국의 미국 수입 시장 점유율 상승에 각각 6.8%포인트, 3.5%포인트, 1.0%포인트 기여해 해당 품목이 미국 반도체 수입구조 재편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제성장률 8% 베트남 ETF 주목
공급망 재편과 경제성장률이 높은 베트남 관련 투자상품이 주목을 받고 있다. 베트남은 전 세계적 저성장 추세 속에서도 지난해 8%의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올해는 약 7%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에 상장된 베트남 ETF로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베트남VN30선물블룸버그레버리지(H)와 ▲ACE 베트남VN30(합성)이 있다. 한화자산운용의 ▲ARIRANG 신흥국MSCI(합성 H) 역시 베트남 관련 종목을 일부 포함한다. ‘ACE 베트남VN30 ETF’는 특히 연초 이후 12.95% 상승하며 우수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ACE 베트남VN30선물블룸버그레버리지(H)도 12.5% 상승하며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멕시코를 제외하고 인도, 인도네시아 등 주요 신흥국 ETF 상품들의 수익률을 넘어서는 수치다.
김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디지털ETF마케팅본부장은 “베트남은 고급 정보기술(IT) 인력들의 낮은 임금 수준과 외국인에게 우호적인 정부 정책에 힘입어 중국을 대체할 신흥국으로 꼽힌다”라면서 “고성장 경제, 탄탄한 내수 시장, 10년래 가장 낮은 주가수익비율 등을 고려하면 지금이 베트남 투자 적기”라고 밝혔다. 다만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매크로 환경이 불안정해 신흥국 자금 이탈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도 있다. 최근 미국 중소은행 뱅크런 확산과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계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부채한도 증액이 글로벌 매크로 환경과 신흥국 자금 흐름에 영향을 미쳐 높은 변동성이 나타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중국은 그동안 글로벌 제조업 생산기지로 자리잡아 왔지만 그 대체재로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주목하고 있다. 인도는 2021년 명목 GDP 기준 세계 5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선진시장에 비해 아직까지 개발 잠재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승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입장에서 인도는 중국을 견제할 전략적 요충지로서 매우 중요하다”라며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만한 소비 시장·생산기지로서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 호주, 중동의 중심에 위치한 인도는 최근 10여 년 사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중요 전략적 국가로 부상했다. 인도는 자신들의 이러한 레버리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주변 국가인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호주, 유럽 등 과도 다양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도·인도네시아, 중국 대체재로 부상
인도네시아는 다양한 광물자원을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한 축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니켈의 약 22%가 매장되어 있는 세계 최대의 니켈 매장국이자 동시에 최대 생산국이다. 니켈은 배터리 원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에너지 밀도와 용량이 높아져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러-우 전쟁으로 니켈 공급선이 불안정해지면서 인도네시아로 글로벌 기업들이 눈을 돌리게 된 이유다.
배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글로벌 공급망 제약이 심화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탈중국 중심 니어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라며 “중국과 러시아를 배제하는 공급망 재편 흐름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 국가로 자금이 들어올 여지가 커졌다”라고 설명했다.
투자 시장에서는 인도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3개월간 인도 관련 펀드에 약 25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유입됐다.
지난 5월 19일 기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설정액 10억원 이상 27개 인도펀드에 1300억원 가량의 자금이 몰렸다. 3개월간 자금 유입량은 2500억원에 달한다. 최근 한 달간 수익률은 5.47%를 기록했고, 3개월간 수익률은 6.21%다.
인도 투자가 각광을 받으면서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관련 상품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난 4월 상장한 ‘TIGER인도니프티50 상장지수펀드(ETF)’는 1개월 만에 개인 순매수 10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 개인투자자들에게 가장 많이 팔린 국내 상장 인도 투자 ETF로 이름을 올렸다. 상장일 이래 단 하루도 개인 순매도가 나오지 않고 꾸준하게 자금이 유입됐다. ‘TIGER 인도니프티50 ETF’는 인도 대표 지수인 ‘니프티(Nifty) 50지수’에 투자하는 ETF로, 해당 지수는 인도거래소(NSE) 상장 종목 중 유동비율 시가총액 기준 상위 50종목을 담고 있다.
이 상품은 국내 최초 인도 주식을 직접 담는 실물형 ETF이기도 하다. 실물형 ETF는 지수 선물이 아닌 실제 주식을 ETF 포트폴리오에 편입해 수수료가 절감된다. 해당 ETF의 총 보수는 0.19%로, 국내 상장 인도 투자 ETF 중 최저 수준이다.
이도선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부문 매니저는 “지난해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기조 등 글로벌 매크로 환경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증시는 준수한 수익률을 기록했다”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