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속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알타시아(Altasia)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만든 신조어인 Altasia는 Alternative Asian Suppply Chain을 줄여 만든 말로 대안 아시안 공급망이란 뜻이다. 글로벌 공장인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신(新)공급망으로서의 아시아의 가치를 부각한 것이다.
현재 글로벌 생산 분업 체계에서 중국은 풍부한 인구와 값싼 노동력, 숙련된 기술 등을 바탕으로 각종 제품 생산 공장으로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중국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년간 지속된 코로나19 상황 동안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이런 이유도 있지만 그동안 잘 유지돼 왔던 중국 위주의 글로벌 공급망에 미국이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4차 산업 흐름과 무관치 않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서 생산 기술의 중요성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단일 국가에 국제사회가 기대기에는 그 리스크가 너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안보 위협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애플 등 글로벌 첨단 제조업체들은 중국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중국과 같은 단일 생산기지는 국제사회에서 찾기 힘들다. 알타시아란 개념이 등장한 이유다.
글로벌 기업들의 뚜렷한 탈중국 흐름
공급망 재편과 관련한 흐름 중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이 온통 중국과 인접해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가장 활발하게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애플의 행보를 보면 이를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지난 4월 애플이 맥북 생산시설을 태국과 베트남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련 업계가 들썩였다. 아이폰에 이어 맥북까지 생산시설을 중국 이외의 곳에 두려는 애플의 행보는 예상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맥북의 생산시설은 중국에만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최대 협력사인 폭스콘이 맥북 생산 라인을 만들고 있다는 구체적 내용까지 전해졌다.
아이폰 생산라인의 탈중국화는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폭스콘과 또 다른 협력사 페가트론은 각각 2020년과 2021년 생산시설을 베트남으로 이미 이전했다.
여기에 더해 애플은 최근 인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이폰 생산의 새 거점으로 삼기 위해 전략적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인데, 폭스콘이 지난해부터 인도에서 최신 기종인 아이폰14를 생산하고 있다. 폭스콘은 7억달러(약 9400억원) 이상을 투자해 2024년까지 아이폰 생산량을 연간 2000만 대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애플은 인도의 아이폰 생산 비율을 25%까지 늘리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아이폰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돼왔다. 여기에 더해 인도는 아이팟의 새 생산기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역시 애플의 협력사인 폭스콘이 나서는데, 회사는 6700억원을 투자해 아이팟 제조 공장을 짓는다. 애플의 이 같은 자사 제품 인도 생산 확대에 현지 기업들의 움직임도 바쁘다. 현재 인도의 타타그룹이 자국 내 있는 대만의 아이폰 조립업체인 위스트론과 공장라인 인수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 애플뿐만 아니라 4차 산업이 발전할수록 그 가치가 커지고 있는 반도체 관련 회사들의 공급망 재편과 관련한 움직임도 아시아에 집중되고 있는 분위기다.
로이터에 따르면 반도체 노광장비업체인 네덜란드 ASML의 부품 공급 업체들이 중국 대신 아세안에 공장 건설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중국에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최종 결정을 하게 되면, 중국을 떠나 아세안에 새로 공장을 짓는 셈이 된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관련 기업들은 하나같이 손사래 치며 답하기를 꺼리고 있다. ASML은 미중 갈등의 핵심 회사로, 반도체 생산 밸류체인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기업이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램리서치 등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직원 재배치 등을 통해 동남아 내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베트남 공장에 향후 수년간 1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아날로그 디바이스는 5월 필리핀에 있는 R&D연구센터에 2억달러를 투자해 확장한다고 밝혔다. 퀄컴은 2020년 베트남에 처음으로 R&D 기지를 설립하기도 했다. 현재 아세안은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후공정을 거의 전담하고 있는데, 이 같은 기류는 기존 역내 반도체 시장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이로 인한 파장은 숫자로도 빠르게 확인되고 있다.
사실상 공급망 개편의 최대 수혜자인 미국의 1분기 반도체 수입선을 살펴보면 그동안 존재감이 약했던 인도, 베트남, 태국 등이 약진한 반면 의존도가 높았던 중국의 비중은 줄었다. 미통계국 조사에 다르면 인도의 대미 반도체 수출은 무려 전년 동기 대비 3791.9% 증가한 각각 4억9710만달러(약 6600억 원)를 기록했고, 베트남과 태국도 각각 62.6%(17억달러, 약 2조3000억원)와 90.1%(15억달러, 약 2조원) 늘어났다.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도 20.5%(11억달러) 증가했다. 캄보디아의 경우 반도체 수출이 500% 가까이 늘어나긴 했지만 이는 태양광 관련 수출 증가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中 일대일로 전략에 대항
알타시아에 속하는 국가들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 그리고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이다. 이들 국가들을 연결하면 초승달 모양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형태가 된다. 용어 자체가 지정학적으로도 중국에 대항하는 성격이 뚜렷한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남중국해로 진출해 서진하려는 전략인 것을 감안하면, 알타시아는 새로운 지정학적 전선으로도 고려될 수 있는 셈이다. 글로벌 생산기지로 알타시아가 부각되는 것은 중국 못지않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생산기지가 되기 위해서는 풍부한 노동력이 중요한데, 알타시아는 인구 면에서 중국을 능가한다. 지난해 기준 이들 국가 전체의 인구는 24억 명으로 중국(14억2570여만 명)을 훌쩍 넘긴다. 이 중 OECD 기준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15억2000여만 명으로 중국의 9억5000만 명보다 훨씬 여유롭다. 특히 인도는 단일국가로 올해 중국을 인구 면에서 제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인구기금은 올 중반께 인도 인구가 14억28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게다가 알타시아 내 인구의 연령대도 젊다. 인도는 평균 30대고, 아세안 내 국가들인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평균 연령은 20대로까지 내려간다. 그만큼 활력 있는 노동층이 두텁다는 의미다.
새 생산기지의 두 번째 관건인 노동력의 임금 수준도 중국에 비해 매력적이다. 이코노미스트지가 하버 애널리틱스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제조업 시간당 평균 임금은 8달러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국과 일본을 뺀 아세안과 인도는 3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어 임금 경쟁력은 중국에 비해 충분하다. 중국의 경우 임승 상승 속도도 가파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0년 중국 제조업 시간당 평균 임금은 6.5달러였다. 반면 베트남, 태국 등 아세안의 2020년 시간당 평균 임금 수준은 2달러 초·중반대로 상승 폭이 그리 가파르지 않다. 또 이들 국가들이 국제 분업체계에서 그동안 글로벌 수출의 중간 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장점도 있다. 이로 인해 알타시아 내에서 생산돼 수출되는 교역량도 상당하다. 미국의 경우 알타시아에서 수입되는 상품이 중국을 앞질렀다.
2021년 10월부터 2022년 9월까지 1년동안 알타시아 전체 미국 수출량은 6340억달러였고, 같은 기간 중국은 6140억달러를 수출하는 데 그쳤다. 우리의 경우 아세안은 제2교역국이다. 신공급망 전진기지로 알타시아가 자리를 잡으면이 지역발 수출 물량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경제협의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다. 무역규범을 포함해 공급망, 탈탄소, 반부패 등 IPEF는 기존 자유무역협정에서 다루지 않던 것들까지 논의하고 있는데, 알타시아 국가 간 무역 장벽을 지금보다 더 없앨지 관심이다. 중국에 대항하는 성격의 논의체인 IPEF가 기존 알타시아 역내에서 진행되던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등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의 규제 완화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별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IPEF 논의 분과 중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곳이 무역과 공급망 분야로 전해진다.
IPEF에 관계된 한 전문가는 “알타시아가 중국의 대안 공급망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역의 블록화가 중요할 수 있다”라면서 “확언할 순 없지만 IPEF에 알타시아에 속하는 국가들이 대거 참가해 있어 논의 결과에 따라 IPEF가 자연스럽게 이들을 묶는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글로벌 기업들은 알타시아에 접근할 때 개별 국가가 아닌 블록으로 다가갈 수 있는 여지가 더 생길 수도 있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알타시아를 중국의 대항마로 쓰기 위해서는 미국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전략실장은 “알타시아가 힘을 받기 위해서는 결국 미국도 일정 부분 알타시아 각국들에게 수혜를 줘야 하는데,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이 자국산 제품들을 더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면서 “미국은 이런 부분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PEF의 구체적 논의 결과물은 오는 11월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직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알타시아 내 분업화도 중요
블록으로서의 알타시아 공급망 구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알타시아 국가 간 분업화 여부도 중요한 대목이다. 알타시아를 하나의 블록으로 묶기에 가장 껄끄러운 부분이 국가 간 격차다. 공급망 이슈와 관련해 한국, 대만, 일본은 반도체, 2차전지 등에서 기술 선진국이고, 나머지 국가들은 생산 기지와 원재료 공급처로서의 장점이 있다.
현실적으로 이 같은 구조를 무시하고 아시아 중심의 신공급망을 짜기는 애초부터 어렵다. 때문에 기술 선진국인 한국·일본·대만과 생산 거점으로 장점이 있는 인도·아세안의 가치를 분업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고, 글로벌 기업들도 이런 시선으로 알타시아를 바라보고 있다.
중국에서 사업 축소 기류가 있었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ASML, 도쿄일렉트론, 램리서치, KLA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한국 투자를 대폭 늘린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한국에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있다.
문제는 알타시아 국가들이 4차 산업의 변혁기에 과거처럼 기술 선진국들의 생산기지 노릇만 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타시아를 중국의 대안 공급망으로 삼는 데 큰 방해 요소인데, 이런 기류가 표면화한다면 ‘신아시안 공급망’은 구체화되기도 전에 삐거덕거릴 가능성이 높다. 이코노미스트지도 “알타시아의 가난한 국가들은 전자제품 공급망에서 사소한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논리적 분업에 별 열광하지는 않는다”라면서 “하지만 이들 국가들의 야망은 대체 공급망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저널은 탈중국 공급망 구축 성공 사례로 삼성전자가 베트남 등으로 일찌감치 생산 공장을 다변화한 것을 거론하며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부분적으로 이를 뒤따르려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마지막으로 알타시아가 중국의 대안 공급망으로서 가지는 장점은 풍부한 수요다. 중국이 글로벌 생산기지로 각광받은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10억 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해 내수 시장이 컸던 것도 한몫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생산과 동시에 이를 판매할 수 있는 거대 시장이 함께 있는 나라만큼 매력적인 곳은 없다. 24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알타시아를 바라보는 관점도 이런 연장선상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이를 고려한 움직임은 나타나고 있다. 애플이 인도 공략을 강화하면서 인도를 별도 본부로 독립시키는 해외사업부 개편을 단행한 것이 일례다. 14억 인구의 인도를 별도 영업지역으로 지정해 더 전략적으로 접근하겠다는 포석인 것이다.
IPEF의 결과물을 통해 더 자유로운 상품의 이동이 가능해진다면 알타시아의 내수 시장은 더 커질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장점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알타시아가 단기간에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신공급망으로 자리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여전히 대체할 만한 곳은 없다’면서 중국을 여전히 가치 있게 여기는 글로벌 기업들도 꽤 있다. 독일 자동차 회사인 벤츠가 대표적으로, 올레 칼레니우스 CEO는 “중국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거의 모든 독일 산업에 있어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문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