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직후 다소 갑작스런 금융위원회의 토큰 증권(STO) 허용 소식에 관련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최대 수혜자인 증권사들은 시장 선점을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고, 가상자산 시장 주체들은 STO 활성화가 미칠 파장을 따져보고 있다. 아직 가이드라인만 나온 상태라 각론에서는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STO 허용이 지금까지 없었던 투자 상품의 허용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을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 STO 허용 소식 직후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되던 증권 성격을 가진 토큰들이 상장 폐지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본 시장에서 제도권 밖에 있던 블록체인 기반 투자 상품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신시장 개척을 위한 분기점이 될 수도 있지만,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있는 STO 관련 움직임을 들여다봤다.
STO란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토큰 증권으로 부른다. 이는 증권성 토큰이라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증권성 토큰은 증권의 성격을 가진 토큰(가상자산)이란 말이고, 토큰 증권은 쉽게 이야기하면 주식의 일종이란 뜻이다. 이는 토큰 증권이 자본시장법 내에서 규제가 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상자산은 증권의 성격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증권은 현재 제도권 내에서 자본시장법으로 규제되는데, 아직 실체가 모호한 법 테두리 밖에 있는 가상자산이 증권의 형식을 띠면 이는 법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STO 허용 직후 가상자산 시장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 우려가 있던 이유다.
당시 시장 참여자 및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소식이 들리자마자 금융위원회는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거래소 연합체인 닥사(DAXA)는 “그럴 우려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STO 허용이 엉뚱한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여전히 증권성 토큰에 대한 우려가 식지 않고 있다. 실제 이 같은 분위기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자회견 당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거래되는 가상자산 중 증권은 얼마가 되느냐는 질문에 “현재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자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판명되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가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당장 상장 폐지 우려가 없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금융감독원이 코인의 증권성 판단을 지원하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가 현재 거래되고 있는 토큰의 증권성 여부를 일일이 따져보고 있는데, 물론 ‘지원’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금감원이 TF를 만들어 개입 의사를 내비친 것은 기존 가산자산 업계로서는 만만히 볼 사안은 아니다. 결국 이 같은 기류는 기존 가산자산 거래소들의 입지를 좁히는 구도로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TO 관련 일련의 움직임이 기존 제도권 금융과 가상자산 시장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번질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인 것이다.
하지만 STO 허용 자체를 놓고 보면, 제도권과 비제도권 사이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많다. 일단 STO 시장 자체가 안착할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 현재 STO 시장의 성패에 대해 시장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유동성에 달려 있다”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보다 앞서 STO를 활성화하려 했던 해외에서도 적절한 유동성이 확보되지 않아 현재 시장 자체가 많이 식은 상태다.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빗의 리서치센터는 이와 관련해 “자산의 토큰화 과정 자체가 유동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라면서 “서로 다른 네트워크상의 활동일지라도 통합된 시스템처럼 작동해야 유동성에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센터는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24시간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면서 “이는 자산 거래에 필요한 유동성을 상시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이며, 특히 타 지역 시간대에 존재하는 글로벌 유동성과 연결됐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라고 덧붙였다.
즉, 유동성 확보를 위해 플랫폼 간 이동이 핵심이란 얘기인데, 이 같은 시스템은 우리가 도입 예정인 STO와는 거리가 멀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STO는 가상자산이 아니라 증권으로 분류돼 있고, ‘현 시스템’ 안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금융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STO는 규모에 따라 한국거래소에 신설되는 디지털증권시장과 증권사들이 추진 중인 플랫폼에 상장된다. 이 중 한국거래소의 디지털증권시장은 장내 시장으로 기존 거래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한국거래소가 추진 중인 디지털증권시장은 블록체인 기반이 아니란 얘기다. 이는 24시간 돌아가지도 않고 글로벌 시장과도 연결되지 않는 폐쇄된 시장이라는 뜻이다.
거래소에 상장되는 STO의 경우 블록체인으로 발행된 STO는 전자증권으로 전환된다. 장외 시장인 증권사들이 만들 플랫폼 또한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거래소가 만들 디지털증권시장과 증권사들의 STO 플랫폼과의 관계는 거래소와 KOTC와 흡사하다. 때문에 한국거래소와 증권사들의 플랫폼과의 교차 거래도 지원되지 않는다.
금융위 관계자는 “STO는 기본적으로 증권이기 때문에 장내 시장인 거래소 시장과 장외 시장인 증권사들 간 플랫폼 간의 교차 거래는 불가능한 구조”라면서 “가상자산 시장 문법으로 STO를 이해하면 안 된다”라고 했다.
현재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STO 플랫폼에 사용될 프로토콜에 대해 궁금증이 큰데, 이런 구조라면 사실상 무의미한 관심인 셈이다. STO와 가상자산 시장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STO 발행 당시 적용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다인 셈이다.
게다가 계속 논란이 예상되는 상장 폐지 코인이 ‘현실화’되면 시장에 충격은 주겠지만, 이로 인해 가상자산 시장 지배자들의 기존 입지가 크게 흔들릴 확률은 적어 보인다. 이는 국내 4대(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가상자산 거래소의 막대한 유동성 때문이다. 올 2월 이들 시장의 평균 거래대금은 수조원대이며,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의 경우 소위 ‘불장’ 때 하루 대금이 15조원을 넘긴 적도 있다. 또한 STO 관련 코인들의 거래 비중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메이저 코인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이런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상장 폐지된 토큰들은 거래가 지원되는 해외거래소나, 새 장내 거래 시장인 한국거래소의 디지털증권시장의 문을 두드려 새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는 것이다. 장외 시장인 증권사들이 현재 추진 중인 플랫폼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쉽지 않은 방법이다. 국내 제도권 상장 시장을 두드리더라도 엄격한 상장 요건으로 인해 관문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만들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앞서도 언급한 유동성 문제는 계속 STO의 발목을 잡을 확률이 높다. 현재 증권사들이 새 먹거리로 STO에 눈독을 들이지만 얼마나 많은 시장 참여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STO 발행 단계에서는 시장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유동성이 없으면 시장 자체에 대한 관심을 식게 만들 것이고, 결국 STO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을 막으려면 양질의 STO가 많아야 하고 다수의 참여자들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코스피, 코스닥과 KOTC와의 현재 모습을 보면 그리 쉽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예단할 수 있다. 또한 가장자산 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누구나 거래를 하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을 상장할 수도 없어 몇 개의 STO로 유동성이 큰 한국거래소나 업비트 등을 구조적으로 능가하기는 힘들다. 증권사들끼리 교차 매매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유동성이 없으면 이조차도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증권사들이 초기부터 단일 플랫폼을 만드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와 구성원인 증권사들은 업계 공동 유통플랫폼 구축에 공감하고 있다.
여기서도 문제는 있다. 금융위 STO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발행과 유통을 함께 할 수 없다. 공동 플랫폼상의 한 증권사가 한 STO의 발행을 주관했다면 이 STO는 거래 지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STO 출발선상에서 현재 각 증권사들은 각계 전투식 행보를 보이고 있다.
KB증권과 키움증권은 올 상반기 자체 거래 플랫폼을 선보일 예정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 자회사 ‘람다256’과 손을 잡았다. 미래에셋증권도 한국토지신탁과 업무협약을 맺고 STO 플랫폼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대신증권은 아예 국내 최초로 설립된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인 카사코리아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시중에 가상자산처럼 인식되고 있는 STO 도입과 관련해 기존 가상자산 업계가 얻을 실익은 별로 없어 보인다. STO 도입으로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적으로 더 완비되고, 활성화될 여지는 지금으로서는 ‘글쎄’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 인증을 받지 못한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STO를 취급하지도 못한다. 한 가상자산 관계자는 “솔직히 STO에 분산원장 기술이 적용된 것 말고 혁신적인 것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결국 증권사들의 먹거리만 더 늘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증권업계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새로운 먹거리에 증권업계는 기회라고 보지만, 어떤 것을 해야 할지 막연하기 때문이다. STO를 하지 않아도 문제없던 것들이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굳이 STO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한 시장 참가자는 “STO로 다양한 자산에 대한 접근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매매의 영역도 시장 참가자들에게는 중요하다”면서 “시장이 바라는 것은 풍부한 유동성 속에서 쉽게 거래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조각투자 등 현재 선보이고 있는 STO 관련 플랫폼상의 매매는 적은 유동성으로 거래 자체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원하는 가격에서 사고팔기 힘들다는 뜻이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0호 (2023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