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달부터 15조원이 넘는 무역 적자가 났다.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주력 업종인 반도체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탓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주력 산업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점이 무역수지 악화로 나타난 것”이라 설명했다.
문제는 반도체가 흔들리면서 우리나라의 수출 산업이 가진 취약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수없이 제기됐지만, 진전을 이루지 못한 우리 경제의 숙제는 반도체 산업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산업구조의 문제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 산업계에선 지난 10여 년간 제대로 된 신성장동력 발굴이 없었다. 산업의 역동성은 계속 떨어졌고 최근 10년간 신산업의 부상 없이 이른바 10대 주력 업종(석유정제, 화학제품, 철강, 금속제품, 반도체, 전자제품, 전기장비, 기계류, 자동차, 선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 주역 산업의 경쟁력이 중국 등 다른 국가에 추월당할 수도 있고 경쟁 심화로 부가가치가 떨어질 공산이 높다.
박재현 한국은행 조사국 동향분석팀 과장은 “2010년 이후 반도체 부문 수출의존도 상승은 국내 기업이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교역구조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결과 일정 부문에 대한 의존도 확대는 예상하지 못한 대내외 여건 변화에 따른 전체 경제 충격을 증폭시킬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더 안정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신기술과 신산업을 육성하고 제조-서비스, 자동차-2차전지, 자동차-ICT-AI 등 산업 간 융복합을 극대화해 부문 간 균형성장을 강화하고 새로운 시장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산업 재편의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고민해왔다.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미래산업은 반도체를 포함해 차세대 반도체, 2차전지, 차세대 원전, 수소,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 인공지능과 로봇 등 다양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시스템 반도체, 미래 모빌리티 등 초격차 기술 10대 분야별 기술을 선정하고 시장을 선도할 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제는 돈과 인력 등 자원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독일, 일본 등이다. 당장 R&D 투자 규모만 봐도 미국은 우리보다 10배, 중국은 6배, 일본은 2배, 독일은 50% 이상 많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
<매경LUXMEN>에서 정부가 지원하고 있거나 하기로 한 첨단 미래 기술을 중심으로 ‘코리아스타트업’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챗GPT로 상징되는 생성형 AI와 인프라, 차세대 저전력 AI 반도체, 자율주행기술,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이 선정됐다. 현재 개발 단계에 있거나, 이미 시장에서 상용화가 시작된 부문도 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SMR, 우주 산업, AI, 반도체 등의 기술력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이 산업 육성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중요한 것이 재원 확보인 만큼 적극적 협력하에 법안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설문 어떻게 했나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산업 및 기술 지원 정부사업 리스트를 바탕으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회원사 CEO(최고경영자)와 CTO(최고기술경영자) 3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반도체, 2차전지 등 큰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실제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연구개발 혹은 산업화가 진행 중인 구체적인 기술 리스트를 바탕으로 했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