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여행 패러다임에서 ‘웰니스’가 더욱 비중 있게 떠오르고 있다. 웰니스 관광이란 웰빙(Well-being),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인 웰니스와 관광이 합쳐진 말로, 여행 본연의 목적을 지향하는 동시에 심신의 행복, 건강, 힐링을 함께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19 당시 세계 모든 이들의 최고 관심사였던 ‘안전 트렌드’가 코로나19가 잦아든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및 전문가들은 삶의 질을 중시하는 글로벌 흐름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웰니스가 향후 여행의 대세가 될 것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탄소 배출 제로 산업을 키우려는 국제 사회의 움직임도 웰니스에 힘이 실리는 또 다른 배경이기도 하다. 관광만큼 탄소 배출이 적은 고부가 가치 산업은 없다.
이에 웰니스 관광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각국은 자국의 강점을 내세우며 웰니스 관광의 적임자임을 내세운다. 가장 빨리 움직이는 이들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아세안 등 아시아 국가들이다.
먼저 태국 정부는 2022년 10월 웰니스 경제회랑 3곳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태국은 동부지역에 산업 단지 위주의 경제회랑을 육성하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웰니스만의 회랑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 구상이 실현되면 태국의 웰니스 관련 산업은 규모 면에서는 확실한 비교우위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회랑 3곳은 태국 웰니스 경제회랑(TWC), 안다만 웰니스 회랑(AWC), 우돈타니 웰니스 회랑(UWC), 지역 거점식의 대규모 웰니스 단지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곳 모두 의료 중심의 웰니스 단지인 것이 특징이다. 태국의 의료기술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고 현재도 의료관광 육성에 적극적인데, 웰니스 경제회랑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태국 웰니스 경제회랑은 남부 송클라 지역에 들어설 예정이다. 응급 의료에 강점이 있는 지역 특징이 반영된 결정이다. 우돈타니 웰니스 회랑은 국가의 북쪽에 들어선다. 암 치료에 특화된 단지를 표방할 예정이다. 안다만 회랑의 타깃은 글로벌이다. 이들 각 회랑은 의료 중심에 태국의 강점을 가지고 있는 스파 및 웰빙 서비스가 결합될 예정이다. 태국 정부는 회랑의 완성 속도를 높이기 위해 회랑 개발 및 입주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인허가 등이 빠르게 이뤄지는 ‘슈퍼 라이선스’를 주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태국 정부가 이처럼 웰니스 산업 육성에 적극적인 것은 자국의 침체된 경제 상황과 무관치 않다. 태국 경제에서 관광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이제 막 회복을 시작한 관광 산업이지만 기존 틀로써는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는 판단하에 웰니스에 무게 추를 두고 있는 것이다.
사티 피투테차 태국 보건부 차관은 “웰니스 회랑 건설은 지역 고용과 국가 경제 회복에 상당히 도움이 될 전망”이라고 했다. 태국 정부 측에 따르면 태국 웰니스 관광객의 경우 1인당 지출이 8만~12만바트 정도 되는데, 웰니스 허브가 완성돼 고품격의 의료 서비스와 웰니스 관광을 경험케 하면 이들이 지불하는 평균 웰니스 비용은 더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웰니스 관광의 원조 강자인 인도 역시 이에 뒤질세라 의료 관광 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인도의 의료 인력 또한 세계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코로나19 이전에도 인도 의료 관광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인도 관광부에 따르면 2015년 23만 명이던 의료 목적의 관광객 수는 2019년 약 70만 명 가까이 됐다. 코로나19 기간 이 숫자는 다소 줄었지만, 팬데믹의 정점이 지난 지금 다시 의료 관광객 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가 웰니스 중 의료 분야에 집중하는 것은 영어가 가능한 자국의 뛰어난 의료 인력, 국제 표준 인증 병원 시설 다수 등의 강점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의료 관광객들이 국제 수준의 치료를 의사소통에 어려움 없이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가 인증한 국제 표준 인증 병원들의 경우 인도(40곳)는 태국(59곳)을 제외하고 인근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다. 인도는 현재 의료관광 산업의 발전 촉진을 위해 ‘힐 인 인디아(Heal in India) 이니셔티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인도 전통의학인 아유쉬의 육성이다. 아유쉬(AYUSH)는 아유르베다(Ayurveda), 요가(Yoga), 우나니(Unani), 소와릭파(Sowa Rigpa), 싯다(Siddha), 호모이퍼쉬(Homoeopathy)의 맨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다.
이 아유쉬는 인도가 웰니스 관광 시장과 관련해 의료에 중점을 두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나라마다 전통의학이 있지만 요가로 대표되는 인도의 전통의학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천연재료를 사용해 질병을 예방하는 아유르베다는 세계보건기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대체의학이다. 여기에 요가·명상 등 인도가 자랑하는 정신적 치유법이 더해지면 인도만의 의료 웰니스 관광의 특장점이 분명해진다. 웰니스 의료 관광에서 현대의학보다는 대체의학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짙은 것을 감안하면 인도의 의료관광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고 볼 수 있다.
코트라 뉴델리 무역관은 “인도 정부도 이러한 점을 십분 활용하여 아유르베다, 요가 및 기타 인도 전통의학 시스템을 통한 의료관광 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예산을 크게 증액하는 등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힐 인 인디아 이니셔티브’에는 의료 원스톱 포털, 아유쉬 특별 카테고리 비자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발리란 세계적 여행지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발걸음도 바쁘다. 자국의 웰니스 관광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2022~2026 국가 액션 플랜’을 준비 중에 있다. 웰니스 관광과 관련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산디아가 살라후딘 우노 인도네시아 창조경제부 장관은 2022년 8월 자국에서 열린 국제 웰니스 관광 콘퍼런스 앤드 페스티벌(WTCF)에 참석해 “자국의 웰니스 관광의 경쟁력을 더하기 위해 세계적인 관광지 발리를 포함해, 욕자카르타, 솔로 등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도네시아는 웰니스 관광에 중요한 자연 문화적 전통이 풍부하다”면서 “이는 인도네시아의 웰니스 관광 발전에 중요한 자산이자 기회”라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관광부는 이 행사에서 자국 기업들이 만든 웰니스 관련 다양한 상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동남아 부국인 싱가포르도 웰니스 관광을 차세대 먹거리로 보고 최근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싱가포르 관광에서 웰니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역내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도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관광청은 향후 10년 동안 자국 관광 산업의 중심을 웰니스로 이동시키기 위해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키이스 탄 싱가포르 관광청장은 “싱가포르가 웰니스 목적지로 알려져 있지 않고, 국민들조차 싱가포르와 웰니스 관광을 연결시키는 이들은 극히 적다”며 “하지만 이는 싱가포르의 잠재력을 극히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면 과소평가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싱가포르만의 웰니스 장점이 꽤 많다”며 “음식 천국 싱가포르를 찾는 이들은 가격에 상관없이 맛집에 간다. 이 또한 웰니스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싱가포르 관광청이 자국 웰니스 육성을 위해 내디딘 첫걸음은 ‘국내 붐업’이다. 국내 수요를 활성화시켜야 국제적인 웰니스 목적지로 거듭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탄 청장은 “웰니스에 대한 국내 수요를 만들지 못한다면 웰빙 여행지로서의 싱가포르 이미지를 구축해 나갈 수 없다”면서 “국민들부터 싱가포르의 웰니스를 즐기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싱가포르 관광청은 2022년 6월, 10일간의 웰니스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쥬얼 창이 공항에서 즐기는 삼림욕부터 싱가포르 터프 클럽 승마장에서 말과 함께 즐기는 승마치료, 마리나베이 샌즈 스카이파크에서의 요가 등 이색적이면서도 다양한 웰니스와 관련한 행사들을 진행했다. 싱가포르 관광청은 축제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 관련 기업들과 함께 산업적 토대 구축에도 나선 상태다.
‘헬스 투어리즘’을 내세우며 일찌감치 웰니스 관광 육성에 나섰던 일본도 코로나19 이후 자국으로 웰니스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일본의 웰니스 관련 정책은 다른 국가들보다 빨랐다. 일본은 헬스 투어리즘 개념을 내세우며 오래전부터 힐링 여행을 이끌어왔는데, 2006년에는 관련 기구를 설립했고 2018년에는 헬스 투어리즘과 웰니스 관광 관련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40여 곳이 헬스 투어리즘 관련 인증을 받았다.
우리도 이 같은 흐름에 뒤지지 않는다. 웰니스 관광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웰니스·의료관광 융·복합 협력지구를 지정해 지원에 나서고 있고, 관련 법제화도 추진 중이다. 웰니스 관광 클러스터는 경남, 충북, 강원, 경북 등이 선정돼 있다.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문화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22년 연말 국내 상주 외신기자단을 초청해 국내 웰니스 관광지 중 한 곳인 원주에서 팸투어를 열었다. 원주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웰니스 관광지 8곳이 있다. 치악산 둘레길, 섬강 자작나무 숲 등은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한편 한국관광공사는 2017년부터 웰니스 관광지를 선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총 58곳이다. 서울·수도권이 13곳, 강원·충청권이 16곳, 경상권이 14곳, 전라권이 9곳, 제주권이 6곳 등이다.
이처럼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웰니스 관광 선점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향후 성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웰니스 연구소(GWI)가 펴낸 보고서 ‘글로벌 웰니스 경제: 코비드를 넘어서 보다’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웰니스 관광 흐름이 주춤한 2020년을 제외하고는 추세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9년 웰니스 투어리즘 규모는 7200억달러로, 2017년 6170억달러에 비해 16.8% 증가했다. 일반 여행의 연평균 성장률은 5.2%였지만, 웰니스 관광은 8% 이상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인 2020년 웰니스 관광 규모는 4357억달러로 2019년 대비 크게 줄었지만, 연구소는 2025년까지 연평균 20.9%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억눌렸던 여행수요에웰니스 관광 자체의 확산세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보고서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웰니스 여행 소비자들이 ‘건강, 힐링’을 위해 다소 높은 여행비용 부담도 기꺼이 감내한다는 점이다.
GWI에 따르면 ‘웰니스만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경비가 더 많이 소요되는데 국제 웰니스 관광의 경우는 일반 국제 관광에 비해 34%, 자국 내 웰니스 관광의 경우는 일반 국내 관광에 비해 177%나 비용이 더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지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 휴식보다 정신적 힐링을 목적으로 떠나는 웰니스 여행이 본격화된다면 상당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서 웰니스 여행과 관련해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아시아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GWI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을 기준으로 웰니스 여행의 지역적 분포를 살펴보면 유럽과 북미가 각각 3억3300만 건과 2억2100만 건으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에도 유럽과 북미는 2억2100건과 1억2400건으로 웰니스 여행을 선도했다.
그런데 아시아의 웰니스 여행도 만만치 않았다. 2019년 약 3억1000만 건, 2020년 약 2억1000만 건으로 유럽과 엇비슷하다. 이를 달리 말하면 아시아도 유럽 못지않게 웰니스 여행을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아시아의 경제 역동성이 유럽에 비해 더 큰 것을 감안하면 역내 웰니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동 거리가 멀지 않은 지역 내에서 고품질의 웰니스 여행을 즐길 수 있다면 이들의 특성상 기꺼이 다소 높은 비용도 감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아시아 각국이 코로나19 이후 웰니스 관광 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문수인 기자 사진 싱가포르 웰니스 페스티벌 홈페이지·일본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