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생명보험과 완전히 다른 생명보험을 기치로 내걸며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출범한 현대라이프가 올해 1월 그 첫 번째 보험 상품을 선보였다. 출시 2개월 만에 판매실적 1만 건을 넘어섰다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현대라이프 제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제로가 다른 보험 상품과 다르다며 내놓은 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쉽다(Simple)’. 고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설계에, 직접 자신의 상품을 설계하고 가입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운영했으며, 보험료는 만기될 때까지 인상되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그것을 인상률 ‘0%’, 곧 ‘제로’로 표현했다.
다음은 ‘집중(Focus)’이다. 10년과 20년 두 가지의 보장기간에만 집중했다. 저렴한 보험료를 위해 핵심 보장기간에만 집중했고 불필요한 특약은 ‘제로’로 없앴다. 마지막으로는 ‘규격화(In-Box)’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규격화가 이루어졌는데, 대표로 내세운 것은 어떤 경로로 가입해도 보험료 차이가 ‘제로’라는 점이었다.
이들 세 가지 포인트는 각각 광고로 만들어져 그 의미를 소비자에게 전달했다. 이들 세 가지의 기반이 되는 철학적 방향성에 대한 광고가 우선했음은 물론이다.
현대라이프 ‘제로’ 커뮤니케이션의 세 가지 특징
현대라이프 제로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카드와 캐피탈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금융업에서의 ‘현대’라는 기업 브랜드를 십분 활용했다는 게 그 첫 번째다. 생명보험 업계의 기존 선두 기업들은 ‘보험은 사랑입니다’ ‘더 따뜻한 내일을 위해’와 같은 슬로건을 썼다.
현대라이프는 ‘보험을 해체했다’ ‘원점에서 시작한다’와 같은 카피로 정면대결을 감행했다. 생명보험에 새롭게 뛰어든 신생업체라면 어디나 현대라이프가 쓴 것과 같은 도전적인 카피를 들고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비슷한 시도를 했고, 그를 통해 ‘혁신’이란 자산을 가지고 있는 ‘현대’라는 기업브랜드가 현대라이프의 도발을 가능한 현실로 받아들이게 했고 축복해주며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했다.
‘제로’라는 상품명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카드 제로’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을 때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인지도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현대라이프 제로는 관계사의 상품이 먼저 자리를 잡아놓고 있어서 인지의 첫 번째 장벽을 쉽게 넘었다.
그리고 두 상품이 지향하는 바가 같았다. 금융산업에서 ‘현대’라는 기업브랜드의 효과가 제품브랜드로까지 순조롭게 이어졌다. 세세한 부분에서 제로카드와 제로보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지 다음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관심과 이해의 단계에 속한다. 이 단계에서도 막연하나마 기존의 제로카드를 알고 있다면 훨씬 쉽게 과정을 밟아 나갈 수 있다. 다른 보험사와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규격화(In-Box)’라는 상품의 직접 보이지 않는 특성을 디자인으로 표현한 책자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험은 어렵다. 보험정관은 복잡하기 그지없어, 구절구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런 불만사항들을 없애며 나온 것이 현대라이프 제로라고 하는데, ‘제로’라는 상품명으로부터 의미는 알긴 하겠는데 여전히 딱 잡히는 것은 없다. 그때 그들에게 상품 특징을 디자인 모티프로 해 구현했다고 하는 보험안내책자가 건네진다. 단순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는 안내책자를 손에 쥐며 소비자들이 제로 보험의 효용과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워진다. 바로 자신의 구매와 선택에 대해 확신을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
서비스 상품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화하기도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보험 회사가 상품의 우수함을 금액이나 기간과 같은 요소로 얘기한다. 자신만이 갖는 색다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안내책자와 같은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물리적인 실체들이 바로 그런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자동차 음료와 향수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인 마쯔다는 2000년에 ‘Zoom Zoom(줌줌)’이라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겸하는 단어를 새로운 슬로건으로 발표했다. 자동차 기업들은 슬로건을 자주 바꾸기로 유명한데, 마쯔다는 지금까지 줌줌을 쓰고 있다. 줌줌의 뜻에 대해서 마쯔다는 ‘Emotion Of Motion’, 곧 주행하는 ‘움직임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란 표현을 썼다. 정확하게 어떤 감정을 얘기하는지 마쯔다 자동차를 타기 전까지는 알 수 없겠다. 줌줌이란 신조어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마쯔다 자동차를 시승하도록 이끌까? 마쯔다 자동차를 탄다고 해도 그것이 다른 자동차와 다른 ‘줌줌’이란 감정이고, 그 상태는 어떻게 다르다거나 정의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줌줌이란 단어 자체가 발음이나 모양이 재미있고, 뭔가 역동적인 기운이 있어서 마쯔다 브랜드에 뭔가 모를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다. 필자도 몇 차례 줌줌 얘기를 하면 질문을 받고 얼버무리기만 했다. 줌줌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포착해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마쯔다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을 줌줌에 두었다. 특히 모터쇼에 가면 마쯔다의 부스는 줌줌이란 글자로 도배돼 있기 마련이었다. 2011년 뉴욕 모터쇼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쯔다 부스 안에서 눈을 돌릴 때마다 ‘줌줌’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그런데 다른 모터쇼에서 보지 못한 것이 하나 줌줌을 머리에 달고 서 있었다. 음료자판기였는데, 그 안에 ‘Zoom Zoom Concentrated’ 브랜드를 단 음료들이 들어차 있었다.
넓은 모터쇼 무대를 다니느라 힘든 참관객들에게 제공되는 시원한 음료에서 줌줌이 지향하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역시 그 모터쇼에 왔던 사람이 자신의 블로그에 줌줌 음료의 사진을 올려놓고 이렇게 써놓은 것을 보았다. 줌줌이 무엇인지 그는 확실히 파악했고, 그 맛을 확인하러 마쯔다 딜러숍으로 달려갔을 만한 기세였다.
“마쯔다의 줌줌 음료. 사실 내용물은 레드불(Red Bull)이었어. 그래도 별 상관없어. 마쯔다의 줌줌이 이런 맛이라면 난 정말 사랑할거야! 고마워, 줌줌!”
‘오감(五感)브랜딩’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브랜딩 활동에 모두 응용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마케팅계에서 거의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고 있다. 자동차에도 적용을 하려 노력들을 한다. 그런데 자동차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미각을 이용한 브랜딩이다. 시각은 눈에 보이는 모든 디자인적인 요소로 바로 작동이 된다. 청각을 활용해 자동차 브랜드를 차별화할 방법도 많다.
문을 여닫을 때의 소리부터, 경음기, 방향 신호등을 켰을 때의 소리 등 실제로 특색 있는 자기 브랜드만의 소리를 내려 모든 자동차 기업들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후각도 자동차가 공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브랜드 성격을 담은 향기를 넣을 수 있다. 자동키부터 손잡이, 핸들, 가죽시트 등 자동차의 많은 부분과 신체의 일부분이 닿고 밀착되기 마련이니 당연히 자신만의 독특한 촉감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고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미각은 자동차와는 거리가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마쯔다 줌줌 음료의 예에서 보듯이 꼭 자동차 안에서 그것을 구현할 필요는 없다. 필자는 처음 뉴욕 모터쇼에서 줌줌 음료를 보고, 마쯔다가 브랜드 확장의 일종으로 출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유감(?)스럽게도 실제 출시되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가능한 아이디어다.
요즘 급속히 많이 쓰이는 용어 중의 하나인 브랜드 협업, 곧 Brand Collaboration의 일종으로 레드불과 함께 한다면 마쯔다 줌줌에 더욱 독특한 향취를 가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닛산자동차는 향기에 집중해 ‘The Vert Oriental’이란 향수의 향기로 올해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자신들 매장을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모터쇼에 이어 닛산자동차의 모든 매장을 같은 향기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이 향수를 닛산의 제품군 중 하나로 판매까지 할 계획이라고 했다.
매장을 비롯한 고객들과의 접점을 이루는 공간에 브랜드를 반영한 향기를 불어넣는 경우는 꽤 많다. 싱가포르항공 기내에서 느낄 수 있는 은은하지만 강한 허브향, 라스베이거스의 고급 리조트호텔인 만달레이베이에서는 고무나무 혹은 코코넛향 비슷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닛산의 향수는 녹차향이 난다고 한다. 서구의 향들이란 너무 세서 사람들에게 처음에만 일시적으로 강렬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반면에 동양적인 은은한 향이 지속적인 효과 때문에 차라리 더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후각이 만드는 강렬한 효과
공간을 채우려 한 것은 아니지만, 제품 프로모션의 일종으로 출발해 본격적으로 향수 제품을 냈던 식품 업체들이 있다.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한지라 약간 장난스럽기도 했지만, 가격표를 붙이고 정식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피자헛에서 낸 ‘피자헛’ 이름을 그대로 붙이고 나온 향수는 ‘손으로 돌려 만든 밀가루 반죽(Hand-Tossed Dough)’ 냄새가 난다고 했다.
특유의 냄새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이 향기롭게 느껴지며 피자를 먹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 피자헛으로 달려가든지 전화를 하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버거킹에서는 ‘불꽃(Flame)’이란 브랜드 네임으로 남자들을 위한 향수를 $3.99, 한국 원화로 5000원 정도 가격에 내놓고 정식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버거킹의 광고에 의하면 버거킹의 대표 품목인 와퍼버거의 냄새를 담았다고 한다. 몸에서 와퍼버거 냄새가 나는 남자를 여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냄새로 와퍼를 연상시키면서 와퍼를 광고하는 역할은 충분히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근 10년 전에 당시 다니던 회사의 제작 부문의 친구들 모두와 전북 채석강, 격포로 워크숍을 갔었다. 오후 내내 심각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고, 밤에는 한바탕 음주 광란의 시간을 보냈다. 모두 숙취에서 덜 깬 채 내소사를 갔다.
내소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늘어선 음식점들 모두가 화덕을 길 쪽으로 꺼내놓고 전어를 구어대고 있었다. 초가을 기운이 채 사라지지 않은 딱 전어철이기는 했다. 절 앞에서 그리 생선 구워대는 냄새를 풍기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몰라도, 대부분의 워크숍 참가자들이 숙취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절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참새 방앗간 들르듯이 전어구이를 막걸리와 함께 먹었다. 바로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구이 냄새 때문이었다. 후각을 활용한 마케팅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강남스타일에 가장 어울리는 제품은
해외의 어느 웹사이트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이미지를 가장 잘 활용한 사례를 뽑았다. 스타벅스 로고를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모습으로 변용한 것, 카푸치노 거품 토핑을 싸이의 모양으로 한 것 등이 뽑혔다. 그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패스트푸드점에서 감자튀김을 맛있게 먹는 법을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 함께 꼽혔다. 감자튀김이 든 작은 봉지에 소금을 뿌리고, 윗부분을 꽉 잡은 채로 강남스타일 춤을 추면서 소금이 골고루 배이도록 한 후에 먹으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그림으로만 표현됐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감자튀김에 재미와 흥겨움을 더하는 역할을 했다.
2월 초 미국 프로축구 결승전이자 세계 최대의 광고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볼에서 싸이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슈퍼볼에 방영되는 광고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광고 품목은 맥주 안주나 심심풀이 간식으로 먹는 피스타치오였다. 광고는 강남스타일을 새롭게 해석한다든지, 비틀지 않고 충실하게 노래와 춤을 그대로 가져와서 가사만 바꿔 튼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광고 자체는 평이하다는 평을 받았다. 슈퍼볼 직후에 벌어진 여러 기관들의 평가에서도 대체로 중간 정도 성적을 거두었다. 그래도 피스타치오의 전 세계 출하량과 미국 내 매출이 획기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꼭 싸이의 광고 효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피스타치오 관계자는 싸이의 역할도 컸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소주, 맥주, 한식 프랜차이즈 식당, 라면 등 식품 계통에 싸이의 광고가 집중되고 있다.
노래와 춤이 화제가 되다보니 유튜브 조회 수가 몇 천만에 불과하던 초반부터 ‘강남스타일’을 새긴 머그컵이나 티셔츠, 모자와 같은 제품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지나친 히트의 영향인지 ‘강남스타일’을 그대로 브랜드 네임으로 쓰는 제품은 출시되지 않았다.
특히 음료, 주류 부분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아직 보지를 못했다. ‘강남스타일’을 브랜드 네임으로 내겠다는 몇몇 식음료 제품들이 있기는 했다. 그중에서 필자가 가장 기대하는 제품은 러시아에서 내겠다고 하는 ‘강남스타일’ 보드카이다. 순수하면서도 강하고 걸쭉한 보드카가 젠체하면서도 저속한 기를 떨치지 못하는 노래뿐만 아니라, 강남이 의미하는 바와 잘 맞아 떨어지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외국 친구들이 ‘강남스타일’을 대체 어떻게 규정하냐 물을 때마다 딱 부러진 대답을 못주고 여러 단어들을 나열하곤 했다. 그런데 “보드카와 같아. ‘강남스타일’ 보드카를 마시면 확실히 알 수 있지”하면 얼마나 간단하고, 질문을 한 친구들에게 명료하겠는가?
가상(Virtual)의 세계가 발달할수록 실제 몸으로 경험하는 것의 가치가 올라간다.
추상적인 개념일수록 실체로 구현해 어떤 감각으로든지 느끼게 해줘야 한다. 계속 나의 서비스는 브랜드는 어떤 맛, 냄새, 촉감, 외형, 소리여야 하는지 궁리하고 시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