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正)·반(反)·합(合).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이다. 변증법은 기존의 것들과 반대되는 것들 사이의 충돌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된다는 철학적 개념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것들의 충돌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우연의 일치일까? 대결을 의미하는‘ Match’라는 단어는 공교롭게도 서로 잘 어울리는 짝이라는 뜻도 된다.
후발주자로 카드업계에 진출해 하나의 역사를 썼고, 또 계속 써나가고 있는 현대카드만큼 다양한 자랑거리를 가진 카드 회사도 드물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VVIP카드인 더 블랙, 세계적인 기업 GE와의 조인트벤처,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PRIVIA 등등. 하지만 현대카드의 성공은 그들이 주최하는 팽팽한 스포츠 라이벌 스타 간의 대결로 유명한 슈퍼매치(Super Match)를 넘어서는 서로 상반되는 속성간의 대결이며 조화, 즉 완벽한 매치(The Perfect Match) 그 자체다.
The First Match: 이성 vs 감성
현대카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는 단연 ‘디자인’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Karim Rashid)가 디자인한 세련된 디자인의 카드, 뉴욕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MoMA(Museum of Modern Art)와의 연계로 탄생한 MoMA 온라인 디자인 스토어, 서울역의 랜드마크가 된 아트 쉘터 버스정류장까지 현대카드의 모든 행보에는 감각적인 디자인이 언제나 함께 했다. 그렇기에 기발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은 현대카드의 상징과도 같다. 현대카드의 성공에 디자인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대변되는 따듯한 감성(Emotion)과 함께 현대카드의 성공을 이끈 또 다른 주역은 차가운 이성(Logic)이다.
현대카드가 오늘날과 같은 프리미엄 카드의 대명사가 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VVIP카드인 ‘더 블랙(The Black)’의 성공이다. 지금이야 현대카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지만 당시 이러한 도전은 현대카드의 무리수로 평가될 만큼 무모한 도전이었다.
카드 비즈니스는 금융업이다. 그런 만큼 철저한 계산에 입각한 수익이 생명이다. 당시 카드 회사들이 이러한 VVIP카드에 회의적이었던 것은 수익성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카드 비즈니스의 수익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지불을 대행해주고 발생하는 수수료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할부서비스와 현금서비스를 통해 더 높은 수익을 발생시킨다. 때문에 할부서비스와 현금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 고객일수록 카드 회사에 더욱 중요한 고객이 된다.
대부분 카드 회사들이 VVIP고객용 카드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고소득의 부유한 고객들이 과연 얼마나 현금서비스와 할부서비스를 이용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은 잠재력이 큰 매력적인 고객임에 틀림없다. 카드 회사나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을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고객의 연체다. 금융기관도 자신의 자본만으로 영업하는 것은 아니다 보니 예상치 못한 고객의 연체는 금융기관에 큰 부담이다. 따라서 연체에 대해서는 높은 패널티를 부여한다.
부유한 고객들은 수익성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씀씀이가 크고 연체율도 낮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고객을 충성고객으로 만들 것인가? 신대륙의 가능성을 발견한 현대카드는 과학적인 조사와 분석에 들어갔다.
더 블랙의 탄생 바탕이 된 것은 논리적인 분석과 계산이었다. 아무리 멋진 카드라고 해도 매출로 나타나는 성과가 없다면 그것은 명백한 실패다. 더 블랙은 ‘현대카드는 최고급 카드를 만드는 회사’라는 멋진 타이틀과 성공적인 매출이라는 두 마리 토기를 모두 잡았다. 하지만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고급스러운 카드라는 감성적인 속성만으로 이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차가운 이성에 근거한 철저한 리서치가 없었다면 분명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블랙의 성공은 차가운 이성과 따듯한 감성의 완벽한 매치다.
The Second Match: 세심함 vs 과감함
현대카드는 항상 용감했다. 아니 과감했다. 업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카드업계의 트렌드를 이끌어온 모습에서 이러한 과감함(Boldness)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과감함과 또 다른 멋진 매치를 보인 것은 세심함(Delicacy)이다. 현대카드의 카드 디자인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바로 세심한 관찰의 결과다.
기존의 카드 디자인에는 대부분 로고가 카드 중앙에 배치된 경우가 많았다. 로고는 브랜드의 얼굴이기에 중앙에 잘 보이도록 배치한 레이아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이 얼굴과도 같은 로고가 상단에, 모서리에 밀려나 있다. 왜 얼굴과도 같은 로고를 이처럼 구석진 곳에 배치한 것일까?
한국의 1인당 신용카드 보유 수는 평균 4.4매다. 따라서 다른 3.4장의 카드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은 어디일까? 소비자의 지갑이다. 지갑에 꽂혀 있는 카드는 상단의 일부만 소비자에게 노출된다. 현대카드의 세심함은 바로 이 부분에서 발휘된다. 브랜드인 얼굴인 로고는 카드가 지갑에 꽂혀 있는 경쟁의 상황에서 더 잘 보여야 하지 않을까?
현대카드는 카드가 뽑혀 있는 상황이 아닌, 다른 카드와 지갑에 함께 꽂혀 있는 상황을 기준으로 디자인했다. 디자인적으로는 로고가 구석에 몰려 있는 의아한 레이아웃이지만 카드가 꽂혀 있는 상황에서는 경쟁사의 어떤 카드보다 명확하게 브랜드의 로고를 100% 노출시키며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세심함의 결과다. 이러한 세심함과는 반대로 현대카드의 시도는 항상 과감했다. 카드 상품의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 마케팅적 차별점)는 혜택이다. 카드 상품을 알리는 커뮤니케이션의 포인트는 혜택을 소비자가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대부분 카드업체들은 자신들의 혜택을 강조한 갖가지 구구절절한(?) 브랜드 네임을 갖게 마련이다. M, V, S, W 현대카드의 상품별 브랜드 네임은 심플하게 Multiple. Shopping 등 상품의 혜택을 이니셜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라도 더 상품의 혜택을 알리고 싶은 브랜드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과감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혜택만 강조한 개별 브랜드로는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알파벳을 이용한 과감한 시도 덕분에 현대카드는 효과적인 브랜드 계층구조(Brand Architecture)를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계층구조 덕분에 소비자는 개별 브랜드의 연관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카드가 놓일 상황을 고려한 세심한 디자인과 과욕을 버린 과감한 시도라는 상반되는 속성은 현대카드의 성공을 이끈 또 하나의 완벽한 매치가 아닐 수 없다.
The Third Match: 보이는 것 vs 보이지 않는 것
명품 브랜드와 일반 브랜드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좋은 품질? 최고의 디자인?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브랜드에 녹아 있는 철학이 명품 브랜드를 가장 잘 대변하는 속성이다.
아무리 디자인이 뛰어난 브랜드라 하더라도 브랜드의 본질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철학이 없다면 절대 명품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눈에 보이는(Visual) 감각적인 디자인에 앞서 브랜드의 가치를 대변하는 보이지 않는(Nonvisual) 철학을 대변하는 브랜드의 원칙이 필요하다.
이러한 원칙을 플랫폼(Platform)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브랜드 플랫폼은 같은 가문의 자손이라면 같은 성(Family Name)을 공유하는 것처럼 브랜드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요소다.
컬러•재질과 같은 직관적인 요소와 같은 1차원적인 플랫폼(1D), 로고•패턴과 같은 평면의 그래픽적인 요소인 2차원의 플랫폼(2D), 입체적인 형상과 같은 3차원의 플랫폼(3D)을 통해 브랜드는 눈에 보이는 일관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눈에 보이는 플랫폼을 좌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브랜드의 본질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철학인 ‘베이스 플랫폼(Base Platform; 0D)’이다. 그렇기에 브랜드의 시각적인 요소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철학을 대변하는 베이스 플랫폼에 따라 표현되며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철학과 원칙이 살아 있는 브랜드의 특징이다. BMW의 모든 제품에는 좌우대칭을 이루는 ‘더블 키드니 그릴(Double Kidney Grill)’이 달려 있다.
화장품 브랜드인 엘리자베스 아덴(Elizabeth Arden)의 모든 제품에는 빨간색의 직사각형이 자리 잡고 있다. BMW 브랜드의 본질은 잘 달리는 자동차다. 그렇기에 튼튼한 호흡기를 상징하는 더블 키드니 그릴이 적용돼 있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아덴은 뉴욕 맨해튼의 피부미용실로 출발한 화장품 브랜드다. 당시 엘리자베스 아덴이라는 이름보다 ‘문이 빨간 피부미용실’로 더 많이 알려졌기에 모든 제품에 ‘피부미용’이라는 브랜드의 본질을 나타내는 시각 요소가 적용된 것이다. 이러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원칙이 있기에 BMW와 엘리자베스 아덴은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는 것이다.
현대카드의 브랜드 철학은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러한 철학은 현대카드만의 차별화된 서비스인 PRIVIA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디자인에 앞서 자신들의 브랜드 철학을 하나의 언어로 정의한 것이다. 이러한 철학을 대변해주는 카드답게 카드의 기본 형상을 활용한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을 모든 디자인에 적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로고에서 광고, 심지어 공간까지 현대카드의 모든 디자인에는 이러한 플랫폼이 일관되게 적용돼 있다.
아무리 현대카드의 디자인이 감각적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원칙이 없다면 BMW와 엘리자베스 아덴과 같은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현대카드는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철학이 원칙에 따라 잘 조화되고 있다. 보이는 디자인과 보이지 않는 철학 간의 완벽한 매치 그 자체다.
and ‘Next Match’?
지금까지 살펴본 완벽한 매치를 통해 현대카드는 이제 아무도 상대할 수 없는(Unmatchable) 대표적인 카드 브랜드가 되었다. 시작할 때마다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던 현대카드의 모든 시도는 이제 카드 브랜딩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금융업은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분야다. 그런 만큼 비금융 분야 출신이 금융 분야로 이직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현대카드의 과감한 브랜딩은 비금융 분야 출신을 파격 기용한 결과라는 소문 덕에 이제는 금융회사들이 앞 다퉈 비금융 쪽 출신 브랜드 매니저와 마케터를 스카우트하는 붐이 일었다고 한다. 이 또한 금융 분야 출신과 비금융 분야 출신의 멋진 빅매치일까? ‘변화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현대카드의 다음 승부수는 무엇일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