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레몬이 마피아 탄생의 주범?! 19세기 시칠리아 섬에 불어온 레몬 특수
입력 : 2021.05.31 14:32:41
수정 : 2021.05.31 14:32:55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기에 딱 좋은 음료 중 하나가 레몬주스이고 레모네이드다. 그런데 갈증을 달래며 더위를 식혀주는 이 레몬주스가 역사를 만들었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역사다. 레몬주스의 재료가 되는 레몬이라는 과일, 우리한테는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설다. 수입과일인 데다 너무 시어서 단독으로는 먹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과일에 비해 관심이 덜했는데 알고 보면 레몬은 특별한 과일이다. 과일로서도 그렇지만 역사 속 레몬의 역할 또한 남달랐다. 심지어 여름철 더위를 식혀주는 청량감과 함께 흐르는 땀을 멈추게 할 서늘한 역사도 있다. 레몬, 과연 어떤 과일일까?
얼핏 우리에게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과일 같지만 따지고 보면 생각보다 레몬을 자주 먹는다. 레몬주스나 레모네이드는 물론이고 생선회 먹을 때도 레몬즙을 뿌리고 샐러드에, 각종 요리재료로 알게 모르게 많이 먹는다.
레몬은 그 뿌리가 어떻게 될까? 우리 토종 과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열대과일일까, 아니면 유럽, 지중해의 과일일까? 레몬은 사실 아시아가 고향이다. 귤과는 친척뻘이다. 유럽에는 대략 10세기쯤에 퍼졌다. 동양에서 건너 온 과일이니까 처음에는 엄청 귀하고 비쌌다. 그런 만큼 과일이 아니라 향수나 의약품으로 썼다. 레몬수(Lemon Water)는 장미수처럼 미용 또는 의료 목적으로 사용했고 나무는 부잣집 정원수로 키웠다. 그런데 이렇게 값비싸고 특이한 열매였던 레몬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를 했고 부정적인 측면에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데도 한몫을 했다.
약 200년 전인 19세기, 유럽에서 레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엉뚱하게 서늘한 범죄조직의 역사가 레몬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마피아가 레몬으로 인해 생겼으니 레몬이 마피아 탄생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마피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국의 갱단, 그리고 관련 영화 <대부(The Godfather)> 혹은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 마피아의 고향 시칠리아 정도다. 조금 더 확대하면 1920년대 미국의 금주령을 꼽을 수 있다. 술을 못 마시게 했던 시대에 밀주의 제조와 유통에는 어마어마한 이권이 달려있으니 범죄조직이 빠질 리 없다.
1920년대 미국 마피아 조직이 번성했던 배경이다. 그런데 술이라면 모를까, 검은 돈과도 관련 없고 음습한 범죄의 이미지도 전혀 없는 레몬과 레몬주스가 마피아 탄생의 주역이라니 도대체 무슨 뜬금없는 황당한 소리일까?
마피아는 지중해 최대의 섬이자 지금은 이탈리아 영토인 시칠리아가 고향이다. 처음에는 마피아(Mafia)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지만 조직 자체는 19세기 중반에 처음 생겨난 것으로 보는데 그 토대가 된 것이 레몬 농사다. 유럽에서는 18세기 말부터 레몬 특수가 생겨났다. 1747년 영국 해군의 군의관이었던 제임스 린드가 체계적인 임상실험 끝에 유럽에서 오랜 세월 선원들을 괴롭혀왔던 괴혈병 치료에 레몬이 특효약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괴혈병은 장기간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먹지 못하면 생기는 병이다.
비타민C 결핍이 주요 원인으로 초기에는 잇몸 출혈에서 시작해 서서히 피부가 썩어 들어가다 마침내 죽음에까지 이르는 병이다. 17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수많은 선원들이 당시 원인 모를 질병이었던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이런 괴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레몬이 특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레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1795년 영국 해군이 레몬주스를 공식으로 수병들의 식단에 추가하면서 해군 장병과 선원들에게 레몬주스 지급이 의무화됐다. 그래서 영국인, 특히 영국 선원을 보고 레몬주스, 라임주스 마시는 것들이라는 의미의 라이미(Limey)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배에서 내려도 어디서나 레몬과 라임주스를 빨고 다녔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동안 골칫거리였던 괴혈병을 물리치게 됐고 레몬은 영국의 해군력 강화와 19세기 영국이 해양강국으로 떠오르는 데 일조하게 된다.
레몬이 괴혈병 치료에 특효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국 해군이, 그리고 다른 유럽 여러 나라의 선박회사들이 앞다투어 레몬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영국 해군에서 구입하는 레몬주스가 한 해 약 160만 갤런을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레몬 수요가 폭증하면서 19세기 이탈리아와 터키에서 때 아닌 레몬 특수를 누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혜택을 본 나라가 이탈리아였으니, 1850~1860년대 무렵 약 10년 동안 이탈리아의 레몬 수출이 2배 정도 늘었다. 그중에서도 시칠리아 섬에서 재배하는 레몬이 전체 수출물량의 약 4분의 3을 차지했다고 한다. 레몬은 아열대 기후에 가까운 따뜻하고 온화한 온대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열매이기에 이탈리아를 포함한 남부 유럽에서도 레몬 재배 지역은 시칠리아 섬 같은 곳으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19세기 무렵에는 레몬이 그렇지 않아도 값비싼 과일이었는데 공급을 초과해 영국 등지로부터의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 시칠리아의 레몬 재배농가에서는 떼돈을 벌었다. 하지만 돈 버는 것에 비례해 부작용도 속출했다. 시칠리아에서 레몬 도둑이 극성을 부렸기 때문이다. 레몬은 다른 농산물에 비해 훔쳐가기가 아주 쉬운 작물이라고 한다.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열매를 그냥 따서 가져가거나 가지 채로 꺾어 가면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도둑뿐이었을까, 강도 역시 때를 만난 듯 설쳐댔다.
이렇게 레몬 도둑과 강도가 극성을 부렸던 이유는 돈 되는 작물이 널려 있었던 데다 19세기 중반 시칠리아의 치안이 극도로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로마제국 멸망 이후 수많은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다가 19세기 후반인 187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가 된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반도 내 통일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독립왕국이었던 시칠리아는 통일에 반대해 통일정부와 맞서 싸우다 패하면서 결국 통일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됐다. 통일이 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중앙정부의 통제가 시칠리아에까지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기에 시칠리아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치안이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의 시칠리아는 경제 또한 극도로 불안정했다. 내전 과정에서 봉건체제와 비슷했던 시칠리아 섬 특유의 토지경제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식량창고라는 소리를 들었던 시칠리아는 19세기까지 주민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했다. 영주인 땅 주인은 소작농에게 땅을 빌려주어 경작하게 하고 관리는 가벨로티(Gabelloti)라고 하는 계층이 맡았다. 예전 우리나라에 빗대 말하자면 일종의 마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통일전쟁이라는 혼란기를 맞아 정치사회 체제의 붕괴는 물론 토지경작 시스템까지 망가진 상태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레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으니 범죄가 만연하고 도둑이 들끓는 것은 당연했다.
치안 부재 상태에서 농장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조직이 필요했다. 이때 떠오른 것이 예전 관리계층이었던 가벨로티였다고 한다. 이들은 나라가 통일되는 과정에서 일부 경찰로 흡수됐지만 일부는 사설 무장 범죄조직이 됐다. 그리고 이런 전직 가벨로티가 모여 만든 단체가 세력화되면서 시칠리아 섬의 치안 부재를 틈타 레몬 농장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상납받기 시작했다. 이때가 19세기 후반이다.
마피아의 원조, 그리고 마피아가 뿌리를 내리게 된 토대가 레몬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이유다. 실제로 시칠리아에서 마피아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19세기 후반으로 경찰에서는 1865년에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피아라는 말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시칠리아에서 썼던 아랍어 방언으로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는 사람이라는 뜻의 마피오소(Mafioso)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쨌거나 마피아의 원조가 19세기 유럽의 레몬 특수 때문에 생겨났다는 주장이 뜻밖이고 생소하기 그지없지만 나름 상당한 근거가 있다. 대학교수의 관련 논문(Origins of the Scilian Mafia: The Market for Lemons)도 발표됐고 공익방송인 미국 공영라디오(NPR)에서 만든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있다. 여름철 시원하게 마시는 레몬주스 한 잔에 서늘한 역사가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