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바이럴이 시대정신 바꾸고 경제적 사건 낳아
집단적 우울증서 국민적 자신감 회복이 코로나 극복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1억5000만 명을 넘었다. 전무후무한 재앙에 인도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백신 접종이 더뎌지면 집단면역은 멀고먼 일이 된다. 파괴적인 감염병은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변화로 시작해 파장이 커진다. 그리고 전염성이 강한 변종까지 등장하며 질병이 창궐한다. 아울러 사태가 티핑 포인트(임계점)를 넘으면 기하급수적 확산으로 통제 불능한 상황을 빚는다.
바이러스처럼 사람의 생각, 정보, 유행도 ‘나비효과’에 의해 확산하는 공통점이 있다.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서 토네이도로 커진다는 비유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말로 전해지는 전염성 강한 이야기는 인간적 흥미와 감정적 동조를 일으킨다. 이야기나 바이럴이 시대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야기는 집단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경제적 사건을 낳는다. 집단심리와 경제 현상은 순환적으로 상호작용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쉴러 미 예일대 교수가 저서 <내러티브 경제학(Narrative Economy)>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세상만사는 마음에 달렸다. 경기 변곡점에서 경제가 호전되리라는 낙관론이 힘을 얻는다. 사람들 사이에 희망 섞인 이야기가 만발하고 널리 퍼진다. 비관적이던 소비심리가 낙관적으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경제상황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나타내는 경제지표다. 3월과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연속 100을 넘었다. 한국 수출은 세계 경기의 나침반이다. 미주와 유럽항로 운임이 폭등하면서 화물대란까지 빚어진다. 순풍에 돛을 단 수출 호조, 산업생산 증가에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진다. 경기 침체기에 미뤄졌던 소비가 용수철처럼 튀어오른다. 억눌렸던 상태에서 명품, 내구재에 대한 보복소비가 폭발한다. 펜트업(Pent-up) 소비 현상이다.
100년 전 ‘광란의 20년대’가 재현되나? 주식과 부동산에 이어 원자재, 가상화폐, 심지어 강남호텔 헬스회원권까지 가격이 일제히 들썩였다. 초저금리 정책 지속으로 시중에 풀린 돈의 힘 때문이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플리퍼(Flipper)가 기승을 부린다. 자신만 왕따 되는 게 두려운 고립공포감(FOMO: Fear Of Missing Out)이 맹목적 투자를 부추긴다. 재건축 규제완화 기대감에 부동산 가격이 다시 들썩인다. 비이성적 과열에 의한 자산가격 거품은 단번에 꺼질 수 있다. 가상화폐 투기 광풍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미국의 테이퍼링(Tapering)에 이은 금리 인상이 다가온다. 물가 급등을 막기 위한 통화긴축 선회 움직임에 주가가 요동친다.
하지만 산업활동, 수출과 소득에서 업종·계층별 체감 온도차가 크다. 자산가격 상승이 소비를 늘리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는 제한적이다. 부의 양극화만 심해진다. 고소득층은 소비 대신 저축을 늘린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다.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는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늘리면 경기가 부양돼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론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낙수효과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부자 증세로 가겠다는 말이다.
대중 심리와 경제적 선택이 트렌드를 좌우한다. 말이 씨가 되는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경제를 움직인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주식투자를 미인선발대회에 비유했다. 지혜로운 투자자는 타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 변화를 예상해 먼저 움직인다. 기업인의 야성적 충동(Ani mal Spirit)이 투자 방아쇠를 당긴다. 내러티브는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코로나19 종식은 경제 활성화의 충분조건이다. 전염병 대유행에 따른 집단 우울증을 이겨내는 국민적 자신감 회복은 백신 수급에 달렸다. 백신 접종이 차질을 빚는다면 실망감에 소비절벽이 초래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