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의 모판이다/파릇파릇/불가사의의 눈동자/저마다 알을 까는 열기/후끈후끈/미지의 아이들이다/시끌시끌/창 밖에는 외계의/낙엽이 지고 눈이 내려도/교실 안은 사시사철/파릇파릇/후끈후끈/시끌시끌/죽음의 색깔을 깔아 뭉개고/죽음의 온도를 녹여 버린다... ”(정대구 <교실 안에서>)
때로는 큰 형님처럼 자상하고, 때로는 엄한 삼촌처럼 호통치던 나의 고등학교 은사 정대구 시인은 우리들에게서 가슴 벅찬 희망을 봤나보다. 어둠을 물리치며 미래를 노래하는 청춘의 잠재력에 경의감을 표시한 선생님. 잠시 후 가라앉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선실에서 재잘거리면서 우정을 얘기하는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길도 이와 비슷했으리라.
꽃다운 나이의 수백 명이 낙화처럼 스러져가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세계 13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민낯이 대명천지에 드러났다. 승객들을 팽개친 채 퇴실 조치도 내리지 않고 제 한 몸 탈출에 급급한 선장과 승무원, 20년 된 중고배를 수입해 잇속 챙기기에 바쁜 여객선 선주, 실종자 수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심지어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겠다는 공무원, 비극을 조롱거리로 삼은 무개념 악플러, 이 틈을 파고드는 스미싱 사기범.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짙은 그늘이다.
여기에다 여객선사들의 영향권에 있는 이익단체가 안전 점검을 맡는 ‘이상한’ 견제 구조와 도처에 있는 사고대책본부를 엮어주는 컨트롤 타워가 없어 헛발질만 하는 엉터리 정부 시스템까지. 1년이 멀다하고 수시로 바뀌는 공무원의 비전문성을 보완하라고 해상재난 민간자문위원을 뒀지만 정작 필요할 땐 작동 불능이었다. 출항 직전 10여 분 만에 화물이 잘 동여매져 있는 지를 뚝딱 점검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증축 개조에 초과 화물을 실은 세월호는 1970년 여수 앞바다에서 323명이 사망한 여객선 남영호 침몰사고나 1993년 292명이 숨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의 원인인 정원 초과 탑승과 판박이다. 여객선의 설계 오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사고를 둘러싼 온갖 난맥상은 한국 사회가 과연 이 정도인가 절로 고개를 가로젓게 한다. 들출수록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이 절망감을 어찌할 것인가.
안전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불편해도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된다. 안전을 저해하는 행위에는 상응하는 제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악에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솜방망이 처벌은 예방효과도, 경고효과도 봄눈처럼 녹아내리고 만다.
미국 주택가 골목길에 신호등이 없는데도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스톱’라인에서 차량이 잠시라도 완전히 멈춘 뒤 출발하지 않으면 100달러 넘게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증권시장에서 주가조작이 횡행하는 이유는 뭔가. 반대로 선진국 기업에서 회계부정이 적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높은 것은 왜 그런가. 규정을 어길 때 번 돈의 수십 배를 토해내고 추상같은 형사처벌까지 내리는 장치가 있느냐 여부의 차이다.
미국 최대 피라미드 금융사기(폰지)의 주범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 말 71세에 연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투자은행 JP모건은 이 사건의 방조 책임을 지고 3조원 가까운 배상금을 물게 됐다. 한때 미국 내 기업순위 7위, 직원 2만여 명을 거느린 에너지 기업 엔론의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스킬링은 2001년 파생상품 투자손실 15억달러를 감췄다가 24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회계감사를 맡은 100년 역사의 아더앤더슨 역시 71억달러를 물어주며 간판을 내려야 했다. 미국은 그러고도 회계부정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사베인스 옥슬리법’을 도입했다.
2012년 침몰한 이탈리아 호화 유람선 콩코르디아호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전통을 깨고 먼저 도피한 혐의로 무려 2697년이 구형됐다. 세월호 선장을 포함한 승무원이 어떤 벌을 받을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고원인을 제공하거나 의무를 소홀히 한 사람은 누구든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적어도 안전과 생명에 관한 일이라면 처벌 수위도 국민감정의 눈높이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새 구두처럼 처음엔 어색해도 공정한 룰에는 모두 곧 수긍하고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양심과 상식은 더욱 견고하게 자리잡는다. 좌초된 대한민국을 구조하기 위해서 더 이상 개인 탓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