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서는 드물게, 나는 아침형의 인간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해 뜨기 직전의 새벽, 미명의 고요가 땅을 적시는 때이다. 글을 쓰는 직업의 특성상 시간 운용이 자유롭지만, 오후까지 일을 마무리 짓고 밤에는 일찍 잠이 든다. 나의 하루 바이오리듬을 측정해보면 아마 새벽녘 제일 높은 점을 찍고 해가 떨어질수록 점점 아래로 떨어지는 곡선을 그릴 것이다. 나는 시계 없이도 새벽 일찍 눈을 뜬다.
새벽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차가운 물을 한 컵 마시는 것, 그리고 뜨거운 국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다. 나와 같이 여행을 가 본 사람들은 내가 해 뜨기 전에 잠에서 깨는 것과 유난히 공을 들여 아침밥을 차려 먹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한다. 그 모든 것은 할머니께 받은 유산이다.
나는 대가족 속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길을 받으며 자랐다. 지금은 백발이 된 그 노인들에게도 한때 눈물겨운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신화처럼 들어왔다. 수십년 전, 막 결혼식을 마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리어카에 궁색한 살림을 싣고 서울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여러 업종을 전전하다가 실패를 거듭하던 두 분은 시장에서 양장점을 시작했다. 기성복과 맞춤복이 혼용되던 시절이었다. 초기에는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할머니의 눈썰미가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이 늘었다. 양장점 규모를 키워나가면서 새벽마다 원단 시장에 나가고, 밤늦게까지 손님을 받아야 했다. 눈 붙일 시간도 없이 바빴지만, 그 와중에 자식 셋을 낳아 키웠다.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할머니는 땀을 닦듯 마른 이마를 훔쳤다.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면 캄캄한 집안에 자식들은 이미 쿨쿨 잠들어 있었다. 온 가족이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이른 아침밖에 없었다.
“에미가 차려주는 밥이라곤 아침밖에 없으니, 그것만은 꾹꾹 담아 먹였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할머니는 매일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새벽부터 고기를 굽고, 부침개를 부치고, 전골을 끓였다. 커다란 상 위에 음식을 가득 차려놓으면 지난 밤 사이 한 뼘이나 커버린 자식들이 모여 앉아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웠다. 할머니는 밥을 먹는 자식들의 모습을 찬찬히 눈에 담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고모와 작은아버지와 함께 그 시절을 행복하게 기억하곤 한다. 사방이 잠에서 깨지 않은 미명의 때, 온 가족이 일어나 부엌의 노란 불빛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한가득 차려진 밥을 나누어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고. 매일 아침을 왕처럼 먹고 집을 나섰노라고. 그렇게 시작한 아침은 뱃속이 늘 든든하여 발을 헛디딜 염려가 없었다고. 실제로 지금까지도 우리 집 식구들은 함께 아침을 먹는 시간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가족들 모두에게 아침밥에 대한 신념 같은 것이 있다고 할까. 그것은 어려운 시절을 견뎌온 할아버지, 할머니의 신념이기도 하다.
가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양장점은 언젠가부터 퇴로의 길을 걸었다. 옷을 맞춰 입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고, 시장으로 향하는 손님들의 발걸음도 점점 끊어졌다. 맞춰 놓고 찾아가지 않는 옷에 점점 먼지가 쌓여갔다. 양장점은 갈수록 처치 곤란한 고물처럼 보였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양장점은 결국 문을 닫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낡은 가게를 둘러보며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했다. 이제는 새벽부터 원단 시장에 나갈 일도 없으니 발 뻗고 늦잠을 잘 수도 있다고 좋아하셨다. 하지만 양장점을 그만 둔 후에도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한 상 가득 아침을 차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 일을 어머니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아침 식탁에서 가족들의 하루 운세가 시작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이상주의자였다. 삶에 대한 의지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었고, 그것은 아침밥에 대한 믿음, 이른 아침 배가 든든하게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가 일하면 절대로 실패할 리 없다는 원칙과 통했다. 할머니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밥을 지었다. 고모나 삼촌에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가족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할머니의 규칙적인 도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곤 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면 어쩐지 힘이 났다. 나는 그것이 우리 가족을 지금껏 지탱시켜온 소리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나는 개인적인 문제로 인하여 새벽기도를 다닌 일이 있다. 내가 무슨 이유로 그 캄캄한 새벽에 기도를 하러 나서는지 가족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한 번도 내게 그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늘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 내가 먹을 밥을 차렸다. 할머니는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앞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 침묵은 마치 새벽의 고요 같았다. 막 지은 고소한 밥과 함께 따뜻한 국물을 넘기면 견디지 못할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할머니는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의 아침을 먹으면서 성장했다. 꿈이 빛나는 별처럼 보였던 시절을 지나 악몽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사랑이 자기 암시와 환상으로 덧입혀진 최면 같은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를 위로한 것은 어른들의 어쭙잖은 충고나 교훈이 아니라 할머니의 아침밥이었다. 고민으로 밤새 뒤척이다 잠에서 깬 새벽녘, 지난밤의 끝도 없는 어둠을 비집고 들어서는 햇살을 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할머니의 도마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긴 세월을 지나 이곳까지 이른 할머니의 삶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강인한 생명력이 나로 하여금 매번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게 만들었다.
지난해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나만의 부엌을 갖게 되었다.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이란 끝도 없고 집안일이라면 좀처럼 흥미를 가질 수 없지만, 아침에는 이상한 사명감 같은 것이 나를 부엌으로 이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제일 원초적인 에너지이자 삶의 기초 같은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을 뜨며, 어제까지 있었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하루에 기대를 걸어본다. 오늘은 어제와 다를 것이다. 이 밥을 먹고 나면, 우리에게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삶은 그렇게 계속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