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04년 4월 초, 천막당사를 이끌던 박근혜 대표가 서울에서 열린 한 조찬 행사에 참석하면서 한 말이다. 미리 와 있던 실무자들이 참석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연락했지만, 박 대표는 예정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전후 사정은 이렇다. 참여정부 2년째에 접어든 2004년 봄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에다 대선자금 수사로 한나라당이 풍비박산이 났을 때다. ‘차떼기당’의 오명을 벗으려 박 대표는 여의도 ‘호화당사’를 팔고 천막당사로 옮겼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이끌던 정치인은 ‘차기 대표주자’ 정동영 의장이었다. 정 의장은 오래전에 참석을 확약했으나 하루 전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 정국 주도권을 장악한 여당 대표가 겨우 한나라당을 추스르고 있던 박 대표를 만나주면 괜스레 상대방 입지만 키워준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행사 직전에 한 쪽에서 소란이 빚어졌다. 행사장을 점검하던 실무자들이 정 의장 불참을 확인하고 주최 측과 실랑이를 벌였다. 박 대표와 함께 출발한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큰소리로 차를 되돌리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행사에 참석한 박 대표는 약속했으니 오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행사 참석자들이 이쪽저쪽에서 몰려들어 악수를 청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소기업인은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여당 대표가 오지 않은 탓에 자연스럽게 박 대표의 독무대가 돼 버렸다.
‘붕대 투혼’ 속에 바닥을 훑어나간 박 대표는 ‘박 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고, 121석이라는 예상 밖 선전을 펼쳐 ‘선거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다졌다. 정치판이라는 게 작은 계산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한판 승부였다. 천막당사에 이어 한 번 더 정치인 박근혜를 각인시킨 일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 후 승복연설이었다. 경선불복이 다반사였던 한국 정치사에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곧 100일이 된다. 조각 과정에서 여러 낙마 사례가 터졌고, 불통 인사라는 비난과 실망감이 쏟아졌다. ‘대탕평’과 화합은 구두선이었다는 비아냥마저 나온다.
모든 일이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게 오히려 정상이다. 부친의 통치를 옆에서 지켜봤고, 크고 작은 선거를 직접 진두지휘한 경험에서 사람을 보는 안목을 갖췄다고 자부했을 법하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처럼 야심차게 제시한 카드가 막히는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박 대통령의 인재 등용 스타일이 상당부분 베일을 벗었다. 인사 원칙을 관통하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약속의 정치인’이라는 말에 걸맞게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인물들을 믿고 맡기는 편이다. 장차관이나 청와대 고위직에 임명된 이들을 보면 대체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이전부터 ‘스터디 모임’이나 세미나 등으로 이런저런 인연을 맺었다. 친이 쪽이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할 때 묵묵히 지근거리에서 지켜온 이들이다. 박 대통령은 변절하지 않고 오롯이 충성심을 보여준 데 대해 논공행상으로 보답했다.
학자라든가 민간 쪽이라면 전문성을 갖춘 주류보다는 잘 나가는 비주류 쪽에 더 점수를 주었다. 관료들과 군인들에 대한 시각은 애국심과 책임감이 강한 그룹으로 보고 강한 신뢰를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을 기피하는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가는 듯하다. 호가호위하는 무리들을 가장 경계한다고 한다. 가깝다거나 잘 안다고 말하고 다닌다면 눈 밖에 나기 십상이다. 대선 직후,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아는 친박 실세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잠수를 탔다.
청와대 허태열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으로서 큰 틀에서 관여하고 있지만, 분야별로 인사를 휘두르는 인물은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다. 지난 정부 초기 이상득 이재오 정두언 등 실세들이 암투를 벌이고, 금융권은 강만수 전 부총리가 주도했던 것과 양상이 사뭇 다르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세들이 드러나겠지만, 박 대통령의 용인술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 주목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CEO 대통령’ ‘경제 대통령’의 열망 속에 출범했지만, 국정을 마치 기업 경영 하듯이 하는 바람에 친인척 비리와 민심 이반을 자초했다. 임기 초반이지만 박 대통령이 인사실패를 겪은 것은 국가 경영을 정당 운영하는 것처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국민 절대다수의 동의를 받아 정책을 펼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대한 다수의 공감대를 얻어 내는 게 ’약속의 통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