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글로벌 명품과 어깨를 나란히 할 토종 브랜드를 모두가 꿈꾸고 있는 듯하다. 토종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본디부터 그곳에서 나는 종자, 혹은 대대로 그 땅에서 나서 오래도록 살아 내려오는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토종 브랜드는 한국에서 한국 기업에 의해 만들어져 한국 시장에서 성장한, ‘한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이 브랜드 DNA의 중심에 있는 브랜드를 의미한다.
과연 21세기, 현재의 우리에게 토종 브랜드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패션 기업들의 브랜딩 능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지금까지 한국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의 성적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최근 글로벌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들어오기 전 한국 브랜드들은 시장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만 섬유연구소(Taiwan Textile Research Institute)의 Ms. Kai-fang Cheng은 연구차 방한할 때마다 내게 “도대체 한국 패션 기업들의 성공 비밀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대만의 내수 시장은 해외 브랜드가 점령했고 점포를 채운 무상표 패션 상품은 대부분 한국산이라는 그녀의 말 뒤에 진정 부러움이 묻어났다.
세계를 뒤흔든 경제 위기를 무사히 넘겨온 우리 경제의 한 축으로 그동안 한국 패션 산업은 잘해왔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스타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한국에서 다진 실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감스럽게도 칭찬받을 만해서 쉬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장과의 경쟁을 경험하고 있다.
토종 브랜드 육성 전략을 만들어 보자고 한다. 고가의 명품을 만드는 기업은 명품 브랜드를, 대중시장을 표적으로 하는 기업은 대중 브랜드를, 틈새시장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틈새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 다만 이들 패션 기업의 특성이 어떠하든, 그들이 목표로 하는 시장이 어떠한 시장이든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글로벌화다.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좁은 의미의 글로벌화를 모두가 따르자는 뜻은 아니다. 국내 시장에 주력하는 패션 기업도 글로벌화가 필수다. 국내 시장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인해 중저가 시장까지 해외 브랜드가 주도하는 시장이 되고 있다. 세계 85개국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보편적 경쟁력을 지닌 자라(ZARA)와 경쟁하려면 글로벌 수준의 기업이 돼야 한다. 자사가 가진 자산을 글로벌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사오고, 배워오고, 인재를 끌어와야 한다. 부지런히 나가고, 만나고, 교류해야 한다. 자본, 기술, 인재, 네트워크의 글로벌 수준 업그레이딩이 필요한 것이다.
시장의 글로벌화는 큰 기업들에게 유리하고, 시장은 더욱 집중화될 것이라는 생각들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화는 작은 기업들에게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 수익성이 나지 않던 틈새시장이 세계로 나아가면 충분한 규모로 확대된다. 우리나라 패션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도 여기에 있다. 잘 정의된 표적시장이 요구하는 개성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글로벌화 해야 한다. 우리나라 토종 브랜드가 유럽풍 클래식 명품 브랜드가 되기는 어렵다. 다행히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혁신적 IT기술과 예술 문화 잠재력을 가진 젊은 국가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패션 브랜드가 추구해야 할 명품 가치는 이렇듯 새로운 가치다. 젊은, 혁신적인, 재능 있는, 새로운 글로벌 명품 패션을 만들어 내야 한다.
글로벌화에 대한 여러 지침이 있다. 전통적인 국제 경영 교과서들은 기업의 해외 진출은 위험이 따르는 전략이며 학습에 따른 점진적인 확장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싸이의 사례는 급격한 세계화의 가능성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싸이의 글로벌 성공 이면에는 부모 세대의 관점으로는 실패라 불렀을 법한 실험과 고민, 유학 경험을 통해 얻은 글로벌 감각과 영어소통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문화 변방이 아닌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부상한 한국에서 키워진 토종 패션 브랜드들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업그레이딩할 준비가 완료됐다. 이제 한국 패션의 차례가 왔다.
[추호정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