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1932-1996)이란 가톨릭 사제의 삶은 나를 고양시키는 지성인 중 한 명이다.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 남미 페루 빈민가에서 봉사를 하고, 다시 하버드대학에서 종교학 교수로 재직 중 다시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정신박약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를 떠났다. 그는 자기를 넘어선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용서’를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용서는 사랑을 잘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용서인 ‘인간 가족’이라는 연약한 공동체에서 행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나우웬이 지적한 것처럼 자기희생적이며 이타적인 삶을 살진 못하지만, 우리가 용기를 내어 일상생활에서 연습해야 하는 가장 큰 덕목이 ‘용서’가 아닐까? 용서는 상대방이 용서 받을 만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방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인 것 같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기원전 6세기에 잃고 1948년 독립할 때까지 거의 2500년 동안 소위 ‘디아스포라’ 생활을 했다. 이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와 심지어는 중국에서 유대인들만의 집단촌인 게토를 이루면서 지속적으로 차별받으며 살아왔다. 자신들의 민족성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처럼 종교의식과 절기를 지켰다. 안식일 준수와 유대절기 준수, 그리고 그들만의 음식법인 코셔(Kosher)는 이들이 생존을 담보하는 마지노선이었다. 여기 19세기말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던 가난한 유대인 부부 이야기가 있다. 이 부부는 자기 집 마당에 가건물로 집을 지어 7일 동안 머무는 ‘장막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가건물을 ‘수카’(Sukkah)라고 부른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던 시절을 기억하며 새로운 땅에 들어갈 것을 기원한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그들은 10월 말 ‘장막절’이 되면 수카 안에서 음식을 먹고 일부 신실한 유대인들은 그 안에서 자기도 한다. 과거 이스라엘인들이 사막에서 40년 동안 지낸 후 가나안으로 들어가 나라를 세운 것처럼, 이들도 언젠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나라를 독립할 것을 기원하는 중요한 의례이다.
유대인들을 다음 네 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한다. ‘룰라브’(대추야자나무) ‘하닷사’(도금양나무) ‘아라바’(버드나무) 그리고 ‘에트록’(시트론)을 들고 기도한다. 이 네 가지 식물은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대인들의 4가지 유형이기도 하다. 우선 ‘룰라브’(대추야자나무)는 맛은 있으나 향기가 없는 식물이다. ‘룰라브’는 경전연구와 오랜 묵상을 통해 박식한 사람이나 선행으로 옮기지 못한 사람을 상징한다. 아무리 공부하면 뭐하나? 공자(孔子)도 <논어>에서 “시경 300편을 외우고도 정치를 맡아서 민심을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전문적으로 잘 대처하지 못하면, 비록 많이 외우고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룰라브’는 선행이 없는 믿음은 소용없다는 것을 상징한다. 두 번째, ‘하닷사’(도금양나무)는 향기는 있으나 맛이 없는 식물이다. 이 식물은 천성적으로 착하긴 하나 토라를 공부하지 못해 그 선행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경전연구와 마음의 훈련을 통해 항상 영감을 받고 선행이 습관이 되지 못한 사람의 유형이다. 세 번째, ‘아라바’(버드나무)는 맛도 없고 향기가 없는 식물로 토라를 연구하지도 않고, 천성적으로 선행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에트록’은 시트론(유자)이다. 에트록의 특징은 향기도 좋고 맛도 있어 토라를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가장 모범적인 유대인의 상징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토라연구과 그 실천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성을 발견하고 언젠가 나라를 재건할 원대한 꿈을 키웠다. ‘에트록’의 본질에 관한 동유럽 유대인들을 통해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18세기 말 동유럽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는 유대인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가난한 살림이지만 다가오는 장막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때는 10월 말. 이 부부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르샤바 집 마당에 수카를 짓고 있었다. 나무판자로 대강 기둥을 만들고 지붕은 큰 나뭇잎으로 덮어 지내는 자기정화 의식이다. 남편은 골칫거리가 생겼다. 장막절을 위한 4가지 식물이 필요한데, 에트록은 도저히 구할 수 없는 희귀 과실이기 때문이다. 이 식물들을 준비하고 의례에 사용하는 행위는 신의 명령이었다. 이 명령을 지킴으로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에서 꿈에 그리는 조국으로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부인에게 에트록을 준비하지 않으면 수카를 짓나 마나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부인은 “신이 준비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장막절 식사 준비를 위해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남편은 부인의 말에 힘을 얻고 열심히 수카를 짓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카를 짓는 동안 아주 오래된 친구가 찾아와 안부를 묻고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에트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이 친구는 자신도 사용해야 하는 소중한 물건이지만 이 유대인에게 에트록을 팔기로 결정한다. 친구 역시 장막절기를 위해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것이기에 10루불을 주면 팔겠다고 말한다. 10루불은 당시 거의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거금이었지만, 이 신실한 유대인은 신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에트록을 구입한다. 너무 신이 난 이 유대인은 에트록을 부엌에 놓고 부인이 시장에서 돌아오면 다른 식물들과 함께 수카를 장식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남편이 밖에서 수카를 마무리하고 있는 동안 시장에서 돌아온 부인은 부엌에 놓인 에트록을 비슷하게 생긴 레몬이라고 착각하고, 저녁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만다. 수카를 완성하고 돌아온 남편은 저녁 식사를 준비한 부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예루살렘에서 찾아온 친구가 에트록을 가져와 자신이 거금을 주고 그것을 구입했다고 말한다. 이 유대인 부부는 “신께서 모든 일을 준비하셨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이 글썽해 신에게 기도했다. 부인은 그 귀한 에트록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남편은 부엌 식탁에 두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다. 부인은 그 유자를 시장에서 사온 레몬으로 착각해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울면서 말했다. 남편은 잠시 얼굴색이 변하더니 깊은 한숨을 쉰다. 그는 잠시 후 말없이 아내를 와락 껴안는다. 부인은 당황하며 “왜 당신은 나를 책망하고 혼내지 않고 껴안습니까? 제가 신의 명령을 어기게 만들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더욱더 사랑스럽고 다정한 눈길로 아내를 보며 말한다. “에트록은 내일까지 준비하면 되지 않소. 지금 이 순간 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명령은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요.” 에트록의 진정한 의미는 ‘용서’다. 종교의 위대한 교리나 가르침보다 내 이웃과 원수까지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가장 위대한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