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지지율 50% 이상을 얻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당선자는 더 큰 축하를 받아야 할 자격이 있으며, 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떤 후보를 지지했는지 상관없이 새 대통령이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정당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 줄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박근혜 당선자는 앞으로 자신을 지지하지 않고 야당의 후보를 찍은 48%의 유권자도 끌어안아야 하는 과제 또한 안게 됐다.
국민 분열 정치의 청산은 한국 정치의 당면 과제이자 최대 과제다. 사실 과거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 국민이 둘로 쪼개져 극단적인 분열로 치달았던 사례는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과거 과열된 선거 후유증으로 비롯된 분열과 반목의 기억 때문이다. 이 기억은 정치가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이 아닌, 오히려 나라와 국민을 분열시키는 역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에게 아프게 각인시켰다. 노무현 정부 시기의 탄핵 소동, 이명박 정부 시기의 ‘촛불 시위’ 등의 원인 중에 패배한 진영의 마음 깊은 곳에 승리한 진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깔려있었다고 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승리한 진영 또한 겸허하지는 않았다. 인사권을 마치 전리품 다루듯이 행사하면서, 능력과 자질보다는 당파성과 연줄, 선거 기여도로 소위 노른자 자리를 배분했다는 비판은 새로 들어선 정부마다 거듭돼 왔다. 그뿐인가. 역대 정권은 한 번의 선거 결과가 마치 모든 가치의 독점을 보장한 것인 양 자기도취에 빠져 자기 진영의 이념과 생각은 선(善)이고, 반대 진영의 그것은 악(惡)으로 규정하는 오만과 오류를 저질러온 것은 아닌가.
이러한 점에서 박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국민 대통합을 강조하고 ‘탕평(蕩平)인사’를 약속한 일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박 당선인이 향후 이러한 대통합의 원칙을 약속대로 지켜나간다면 반대 세력을 최소화하는 등 새 정부 국정 운영의 장애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재도약시킬 수 있는 커다란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박 당선인의 눈앞에 버티고 있는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이번 대선 이후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나타나는 반대 진영의 심리 상태는 ‘멘붕’이라는 신조어 한마디로 표현되고 있다. ‘불신’과 ‘냉소’의 산성(山城)은 그리 쉽게 함락되지 않는다. 몇 마디 립 서비스와 몇 자리 인사(人事) 조치만으로 오랜 반목의 구멍을 쉽게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천천히 차근차근 진심의 소통과 진지한 행동을 함께 보여줄 때 거대한 벽은 눈 녹듯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대통합의 열쇠는 도서관이나 석학의 연구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박 당선인 곁의 공약집에 들어 있다. 공약은 조용하지만 꾸준한 실천이 중요하다. 우선 양극화로 인해 막다른 길로 몰린 서민생활을 개선하고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민생·복지 정책, 경제민주화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대통합 의지는 향후 인사에서 가감 없이 드러날 것이다. 대통합이 구호만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소외감이 큰 지역 출신을 비롯한 당선인의 비관련 지역 인사들을 대거 발탁하는 탕평 인사를 통해 국민대통합의 의지를 남김없이 드러내야 한다. 또한 장애인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적극 기용하는 일도 한 국민대통합의 의지를 보여주는 절호의 장치다. 그런데 통치자의 인사행위는 소통과 약속의 의미뿐 아니라 현실 정치의 구체적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무기로 기능해야 한다. 탈과거·탈이념·신뢰와 통합의 새로운 정치야말로 박 당선인의 대통합의 약속을 실현하는 구체적 도구다. 이를 위해서는 중도·진보 인사들을 중용하고, 중도·진보적 정책을 적극 수용해 ‘자기 진영’의 사고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수혈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박 당선인이 내건 ‘대통합’이라는 시대의 명제가 단지 선거용 구호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새 시대 새 정치를 위한 정치적 스펙트럼의 확장으로 연결됐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과 한국 정치의 도약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부디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대통합의 초석이 다져져서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시금 상승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 언론정보대학원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9호(2013년 0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