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의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 1936년에 나왔으니 벌써 75년이 넘었다. 케인즈는 1929년 말 미국을 강타했던 대공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지출 확대를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 책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내세웠던 뉴딜정책의 기초가 됐다.
케인즈 이론의 등장은 ‘보이는 손(Visible Hand)’인 정부가 경제를 움직일 수 있다는 과장된 믿음을 각국의 정책담당자들에 심어준 측면도 있다. 재정정책은 현실적으로 여러 제약이 있기 때문에 단기에 경기변동을 완화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리카르도 등가이론’에 의하면 정부가 국채발행으로 조달한 재정지출은 결국 미래세대가 이자와 함께 언젠가는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재정정책은 중장기적으로는 실물경제 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참여정부는 방만한 정부지출과 국가부채 증가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작은 정부’를 공약했던 MB 정부도 결국 ‘큰 정부’로 마감하게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해 정부지출 증가뿐 아니라 공공기관 부채증발을 통해 사실상 팽창적인 재정정책을 펼쳐 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경제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압력이 거센 것 같다. 재계, 국민, 언론들의 일반적인 분위기는 경제학개론에 나오는 케인즈 이론에 기초해 재정정책을 요구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사실상 국가부채가 이미 위험수준에 다다른 상황이다. 고령화시대 복지수요를 감안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재정상황은 더 악화되면 됐지 개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다가오는 위기가 단기간에 종결될 성격의 위기도 아니다. 일시적인 정책효과를 기대하는 케인즈 이론을 마치 만병통치의 도깨비 방망이인양 외치면서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결국 중장기적으로 재정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마 죽은 케인즈가 다시 살아나서 현재 재정위기 국가들을 보게 되면 자기 이론을 아래와 같이 양심적으로 수정하게 되지 하지 않을까 궁금하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도 과다하게 복용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복용하지는 말라고.’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기본적으로 부실을 초래한 당사자가 기본적인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단지 문제 해결에 있어 공공성을 주장하면서 정부에만 부담을 넘기게 되면 결국 재정위기가 오게 된다. 지금 IMF가 남유럽 위기국가들에 부과하는 아주 좋은 융자조건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 너무 큰 고통을 당했다는 억울함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고통스런 구조조정 등이 결국 지금의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 선택한 재정 요법은 경제위기 돌파를 정면으로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진통제를 맞으면서 문제를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는 편법을 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재정정책은 경기변동을 완화하는 정도의 절제된 역할을 하는 데 그쳐야 한다. 정치인들의 선동에 의해 감당이 되지 않는 지경에까지 가게 되면 재정위기를 맞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케인지안 포퓰리즘’ 혹은 ‘재정 포퓰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정책, 통화정책, 금융정책, 금융감독 정책과 금융가들의 탐욕으로 인해 부동산 등 자산거품이 발생한 후 꺼지는 과정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공적자금을 조성해 기업이나 은행의 손실을 구제해준다. 이로 인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어느 순간 갑자기 커지게 된다. 미국, 유로존의 비대해진 국가부채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늘어 난 것이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들어 일본 정부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난관을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재정지출을 계속했다. 단기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조정을 피하면서 문제해결을 지연시키면 결과적으로 경제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국가부채만 늘어나 미래세대에 부담만 증가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