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는 한 번 무슨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금세 돌풍이 되고 태풍으로 변해 세상을 바꿔놓는다. 요즘 대세는 힐링이다. 기업 마케팅에서부터 사회공헌, 직원 내부 활동까지 힐링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 <힐링캠프>에는 대권 주자들이 출연하려고 줄 서 있다고 한다. 템플스테이에 불교신자가 아닌 이들이 찾아오고 올레길과 둘레길에서 홀로 걷기를 즐긴다. 휴양림이나 식물원이라든가 외딴섬 같은 호젓한 곳을 찾아 묵상을 하기도 한다.
한때 웰빙이 뜨고 웰다잉이 반짝 하더니 이제 힐링으로 넘어간 듯싶다. 힐링은 개개인마다 마음 한켠 허전한 구석을 잔잔하게 흔들어, 내면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실 젊은 세대는 물론 3040, 은퇴를 목전에 둔 베이버부머 세대까지 지치고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다. 초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펙을 쌓고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는 게 모두의 삶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이면이다.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칫 현실 도피에 빠지고 세상과 동떨어질 수 있다. 경쟁에 뒤처진 ‘낙오자’들의 자기 위안에 그칠 수 있다.
힐링 붐이 개개인의 마음 다스리기에서 끝난다면 ‘한 시절의 유행’으로 사라질 거다. 진정한 힐링이 이뤄지려면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공정함과 투명함이 폭넓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개인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힐링’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흔히 ‘마음고생이 많다’는 말을 한다. 누군가 마음이 아프다면 조직 내에서 억울함을 당해서일 때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능력과 실력을 갖췄을 때 모두가 알아주는 게 건전한 조직이다. 자연스럽게 건전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한국 사회는 곳곳에 아직 불공정이 여전하다. 대기업 그룹이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일이다. 예를 들어 호텔이나 백화점, 대형 빌딩의 목 좋은 가게라면 대체로 뭔가 끈이 있기 마련이다. 건설 회사들이 아파트를 지을 때 조경공사라든가 돈 되는 쪽은 오너나 고위층과 연관돼 있다고 한다.
중견기업이나 1~2차 벤더 중소기업들의 횡포 역시 만만치 않다. 한 프랜차이즈가 뜨면 본부에서 간판과 인테리어를 자주 바꾼다. 가맹점은 인테리어 비용에서 덤터기를 쓰는 일이 많다고 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금융권 임직원들은 실력만으로는 승부를 보기 힘들다. 일선 지점에서 직원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본점에서 ‘정치’와 ’줄대기’에 익숙한 이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다.
많은 공공기관과 산하기관에서 ‘낙하산’은 이미 상식이다. 가끔은 정치권 인사들에게 주어지는 전리품이 되는 게 현실이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경쟁하면서 50% 점유율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창작의 영역에서는 ‘관객의 눈’이라는 객관적 잣대 이외에 자의적인 게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어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반도체가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은 순발력을 꼽는다. 진짜 중요한 이유는 인사의 투명성이 앞서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임원 구성을 보면 어느 기업보다 비명문대와 지방대 임원 비율이 높다. 삼성전자의 미래는 인사에 달려있다.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에 대해 사회적 기여와 경제민주화 요구가 높다. 고졸 채용을 늘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이어지고 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황금률은 공정한 경쟁, 투명한 결정이다. 배려와 지원 이전에 기회가 주어지는 게 먼저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새로운 활력을 찾으려면 기업가 정신을 지닌 벤처기업이 많이 등장해야 한다. 경쟁자와 공정하게 대결할 여건이 된다면 젊은 세대가 모험을 하려는 용기를 내게 된다.
한국은 지금 공정성의 임계점에서 주춤거리는 양상이다. 꽉 막힌 병목을 확 풀어주는 게 기성세대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공정이 창의가 더욱 꽃 피울 토양이다. 노력한 만큼 거둘 수 있는 사회가 미래 역동성을 가진다.
주변에 억울한 이들이 많다. 법과 원칙이 공정하게 작동한다면 그것이 곧 사회적 힐링이다. 공정함 속에서 승복이 생겨나고, 이는 사회안정의 기틀이 된다. 힐링이 개인을 넘어 사회를 정화시킨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