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성장 시장(Growth Market)’의 개념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나라를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한국을 선택할 것이다. 지난 30년간 한국은 경이로운 궤적을 밟아왔으며 이른바 선진국과 신흥시장 모두 한국을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의 성공담이 다름 아닌 바로 한국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세계 질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투자 전략 수립에 있어서 흥미로운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큰 그림을 살펴보면 한국의 발전은 세계 경제와 투자 환경의 근본적이고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당당히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변화의 핵심에는 전통적으로 ‘신흥’ 시장으로 분류돼 온 시장들에 대한 정의를 다시 수립하는 작업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의 중요성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선진국과 신흥국 구분은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보다 구체적으로 글로벌 GDP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들은 성장시장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BRICs 국가(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들과 한국, 멕시코, 터키, 인도네시아가 이 기준을 만족시킨다. 이들 국가는 유리한 인구구조와 더불어 생산성 향상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로 인해 전 세계 평균을 상회하는 성장률을 기록할 확률이 높다.
1980년대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은 여전히 폐쇄적이었고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으며 전자·자동차·제철을 중심으로 다양한 산업에서 주도적인 입지를 점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전 세계 GDP의 2%를 담당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한국을 성장시장이라고 불러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성장잠재력지수(GES)다. 이 지수는 생산성과 지속가능한 성장잠재력을 모니터링할 목적으로 매년 190여 국가를 대상으로 골드만삭스에서 집계한다. 골드만삭스는 거시경제 안정성, 기술력, 인적자본 등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수적인 변수들을 기초로 각국의 지수를 측정한다. 한국의 GES는 10점 만점에 7.7점으로 세계 4위에 해당한다. 이는 캐나다를 제외한 모든 G7 국가를 앞지르는 수준이다. 이러한 결과에는 지대한 중요성이 내포돼 있으며 한국이 생산성과 성장의 측면에서 발전을 위한 확고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이 거둔 이러한 성공의 중심에는 변화에 대처하는 훌륭한 자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당수 국가들이 중국을 비롯한 BRICs 국가들의 급부상을 우려하고 그로 인해 자국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한 반면, 한국은 기술혁신을 선도하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며 외국인투자자에게 국내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변화에 긍정적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한국은 BRICs 국가들을 중심으로 인상적인 수출 실적을 달성했다. 앞으로 BRICs 국가들의 중산층이 지속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유연성은 저가 제품에서 고가 제품으로 전환함으로써 브랜드 선호도를 개선시킨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영어를 국제 비즈니스 언어로 채택해온 과정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확고하게 입지를 굳히고 있는 신세계 ‘성장시장’은 단순히 경제에만 국한된 영역이 아니다. 성장시장은 모든 투자자의 인식 전환을 동시에 요구한다. 만약 이들 8개국이 세계 경제의 핵심 원동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확신에 동의한다면 투자자들이 이들 국가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당연히 수반될 것이다. 우리는 성장시장이 앞으로 수십 년간 가장 중요한 글로벌 투자 테마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단일국가 펀드, 지역별 펀드 혹은 새로운 형태의 벤치마킹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GSAM)이 최근 한국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BRICs에 대한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 투자자의 75%, 금융 전문가의 99%가 BRICs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개인 투자자의 80%는 향후 수년간 중국을 포함한 BRICs 국가들이 최상위 수준의 성장잠재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BRICs을 비롯한 기타 성장시장에 대한 한국 투자자들의 투자 비중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필자는 한국 투자자들이 조만간 세계경제에 대한 자신들의 전망을 투자 의사결정으로 구체화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투자 기회를 완벽하게 활용하기를 희망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이 일원으로 포함된 이 신세계는 아무런 리스크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장시장은 인플레 압력, 글로벌 시장 충격,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성장시장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 확대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세계는 한국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기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고립이 아닌 세계와의 연계를 통해 오늘날의 국력을 획득했다.
짐 오닐 회장
골드만삭스 글로벌 자산운용 회장으로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의 전 세계 사업 방향을 이끄는 역할을 맡고 있다. 2010년 9월 회장으로 임명되기 전 골드만삭스의 글로벌 경제, 원자재 상품 및 전략 리서치 부문의 헤드를 역임했다. 또한 그는 시니어 다양성 위원회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브릭스(BRICs)’라는 용어를 창시한 장본인이기도 한 짐 오닐 회장이 동료들과 함께 내놓은 브릭스에 대한 많은 보고서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부각을 정확히 예측해냈다.
골드만삭스와 인연을 맺기 전 그는 1991~1995년까지 해당 은행의 글로벌 리서치 헤드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그 이전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마린 미들랜드 은행의 자회사인 인터내셔널 트레저리 매니지먼트에서 근무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