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참 아이러니한 나라다. 걸핏하면 드잡이를 하는 정치 쪽을 보면 온통 난장판처럼 보인다. 촛불시위로 한껏 폭발 직전까지 타오르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한편에서는 어느새 무역 1조 달러라는 기록을 세운다.
한국은 21세기 들어 진보와 보수를 번갈아가며 참여정부와 현 이명박 정부를 경험하고 있다. 나라 경영을 놓고 대결과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 대하소설 같다. 2008년 국회의원 선거는 ‘MB돌이’들의 독무대였다. 이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당선시킨 2007년 말 대선의 여세를 몰아 수도권에서 옛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참여정부 초기 2004년 17대 총선은 그 반대였다. 이른바 ‘탄돌이’들이 대거 금배지를 달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의 역풍이 몰아쳐 옛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은 신인들이 손쉽게 여의도에 입성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 당 대표가 천막당사를 이끌어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참여정부의 청와대와 권력기관을 장악했던 범386세력, 옛 운동권과 진보 측 시민단체 등이 합세해 기득권층을 상대로 ‘혈전’을 벌였다. 정권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참여정부 실세들은 서서히 권력에 취해 편중 인사를 서슴지 않았고, 점차 민심에서 멀어져 자멸의 길을 걸었다.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공공부분의 혁신’이라는 슬로건은 빛을 잃어갔다. 친노그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 이어 올해 총선, 대선 국면에서 급속하게 주축세력으로 떠올랐다. 파워를 행사한 MB 주변 인물들의 부패와 정실 인사 탓이다. 참여정부의 실정으로 ‘손쉽게’ 집권한 MB정부가 친노세력에게 부활의 날개를 달아주었다는 점은 새로운 반전이다.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범 보수 쪽은 당황하고 범 진보 쪽은 환호하며 복수를 벼르는 듯하다.
두 정부의 핵심정책이 어떻게 될지 예측불허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정책이다. 참여정부는 임기 내내 부동산과 전쟁을 벌이다시피 했다. 버블7지역까지 설정했지만 집값을 잡는데 실패를 거듭했다. 오히려 현 정부에서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부동산 값은 잡혔다. 보금자리주택, 장기임대주택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지지부진한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이 가격 안정에 도움을 주었다. 2008년 글로벌 위기에다 가계부채 급증이 배경에 깔려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쟁은 정치인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참여정부 총리를 지낸 한명숙 현 민주통합당 대표가 한·미 FTA 조약 폐기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의 진의를 잘못 해석한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이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FTA 협상에 착수했던 것은 이례적이었다. 미군기지 이전과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성사시켰던 것을 미뤄보면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세밀히 살펴보면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정경분리 원칙을 분명하게 적용했다. 그는 정치와 사회분야는 사회주의 색채까지 띨 정도로 진보적이지만, 경제쪽에는 사유재산과 경쟁원리를 받아들인 시장경제론자였다. 재벌의 부도덕한 행태에 강한 반감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국유화하거나 국영기업을 팽창시킨 일이 없다. 대북관계라든가 사학법, 정치자금법 등이 전자의 사례들이다. 현 정부가 복지 드라이브를 ‘과속’하는 것도 의아스러운 대목이다. 보수의 정책과는 거리감이 있다. 필요한 예산과 정책 입안자를 밝히는 ‘정책 실명제’라든가 연도별 복지 수준을 알려주는 ‘정책 예고제’를 시행해볼 만하다.
요즘 정권이 뒤바뀔 때를 기대하거나, 걱정하면서 좌고우면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주야를 막론하고 탐색전을 벌이느라 본업은 뒷전이다. 올해 정치공방은 1년 넘게 이어진다. 새 집권세력이 개방 기조와 지속적인 개혁을 통한 경제 성장을 멀리한다면 나라의 기틀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법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기업가 정신이 넘쳐나게 하려면 유권자들의 한 표 한 표가 중요하다.
이제 누구나 정치권의 좌우 이동에 상당히 익숙해졌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한국 현대사에서 과거에 그랬듯, 정치권의 태풍은 경제 쪽에는 별다른 상흔을 남기지 않은 채,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