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0월 보름부터 1월 보름까지 스님들은 동안거에 들어갑니다. 올해로 치면 11월20일이 결제일이고, 내년 2월17일은 해제일이 되겠지요. 이 90일 동안 스님들은 외출을 하지 않고 사찰에 머물며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게 됩니다. 일명 구순금족(九旬禁足)이라고 합니다.
동안거 하면 면벽참선을 떠올리게 됩니다. 눈 내리는 산사의 토굴 속에서 화두를 붙들고 끊임없는 질문과 해답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용맹 정진하는 스님들의 정형화된 모습이 그것입니다. 큰 의심을 일으키고 스스로 그 의심삼매에 들어 무심의 경계에 든 후 홀연히 보는 찰나와 듣는 찰나에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간화선은 대표적인 참선 수행법이라고 합니다.
받은 제자 남악 회양 선사의 화두는 ‘이 뭣꼬’였다고 합니다. 또 효봉·만공·성철·법정 등 많은 스님들은 ‘무(無)’를 화두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른바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화두입니다. 만공 선사는 당초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즉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를 화두로 삼다 깨달음 후에 다시 ‘무(無)’를 붙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스님들에게 화두는 수행의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라는 먼 길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고, 이정표인 것이지요. 스님들은 이 화두를 안거 기간이 아닌 다른 90일 동안 탁발을 하며 세상으로부터, 혹은 스승으로부터 얻는다고 합니다. 해탈에 이르는 숙제 보따리를 챙기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만 화두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겁니다.
세인(世人)들에게도 하나씩의 화두는 필요하고 또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돈’이 될 수 있겠고, 어떤 이에게는 ‘성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혹은 취업, 결혼, 승진 등등 삶의 길에서 목표로 삼는 무언가를 화두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지요. 기업들도 매년 새로운 화두를 제시합니다. 그 화두는 언제나 높이 날고 멀리 보는 갈매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젊은 조직’과 ‘젊은 인재’로 가장 먼저 내년도 경영화두를 꺼내놓은 삼성그룹은 당장 연말인사부터 이를 적용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회장이 던진 화두는 세대교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대대적인 인사가 예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 달력도 마지막 한 장이 남았습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지나간 시간들을 훌훌 털어버리기는 커녕 무언가를 붙들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때문에 아쉬움으로 맞이하는 하루, 한 달 그리고 한해는 또 항상 새로운 계획을 움켜쥘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아쉬움과 어떤 새로운 계획이 있습니까. 또 2011년을 맞이하기 위해 어떤 화두를 준비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