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피상속인)이 돌아가신 후 자녀들(상속인)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문제는 상속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재산보다 빚이 많다면, 자녀들은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 승인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속포기를 하면, 자녀는 부모님의 재산이나 빚을 모두 상속받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정승인이 있으면, 자녀는 부모님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 범위 내에서만 부모님의 빚을 갚으면 된다.
반면 부모님에게 상당한 재산이 있다면, 자녀들 간의 재산분할과 상속세 납부가 문제된다. 상속재산을 자녀들 사이에 나누는 것을 상속재산분할이라고 한다. 먼저, 적법한 유언이 있으면 유언에 따라 분할된다. 만약 유언이 없다면 자녀들은 협의를 통해 상속재산을 분할하게 된다. 자녀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원의 상속재산분할심판을 통해 상속재산이 분할된다.
문제는 상속인들은 상속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로부터 6개월 내에 상속세를 신고·납부하여야 하는데, 상속재산 분할심판을 통한 재산분할은 적게는 1년, 길게는 수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상속분쟁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상속세의 신고·납부를 미루면, 상속인들 모두 거액의 가산세를 부담할 수 있다. 더욱이 공동상속인들은 받았거나 받은 재산을 한도로 다른 상속인들의 상속세 채무에 대해 연대납부의무를 부담한다. 그렇기에 상속재산의 규모가 상당한 때에는 자산이 충분한 특정 상속인이 분쟁 중에도 다른 상속인들의 상속세까지 함께 신고·납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속인 중 1인이 자신의 개인재산으로 다른 상속인의 상속세까지 함께 납부하면, 상속재산분할에 반영될까? 현재 법원의 주류적인 실무는 특정 상속인이 다른 상속인을 위해 납부한 상속세를 상속재산분할에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 상속세를 대신 납부한 상속인은 다른 상속인들을 상대로 개별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대신 납부한 상속세를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례와 같이 특정 상속인이 상속분쟁 중에 피상속인의 상속재산인 예금으로 상속세를 납부하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부터는 조금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원칙적으로 예금과 같은 가분채권은 원칙적으로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다. 즉, 피상속인의 예금은 피상속인의 사망과 동시에 상속인들에게 법정상속분에 따라 상속이 이루어진다. 상속인들은 상속재산분할협의나 다른 상속인의 동의 없이도 바로 그 예금을 인출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은행은 상속인 전원의 동의가 없으면 이중지급의 위험 등을 이유로 예금 인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특정 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미리 자신의 상속분 이상의 재산을 증여받은 예외적인 사정이 있는 때에도 예금이 공동상속인이 법정상속분대로 상속된다고 보면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공평이 깨지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대법원 2016. 5. 4.자 2014스122 결정 참조). 사례에서처럼 장남이 상속분 이상의 재산을 미리 증여받은 경우에는 김사장 명의의 예금도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한편 상속개시 당시 상속재산을 구성하던 재산이 상속재산분할 시점에 상속재산을 구성하지 않으면, 그 재산은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대신 상속재산을 처분한 상속인이 그 처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 장남은 예금을 인출해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상속세 납부에 사용하였기 때문에 예금의 처분으로 대신 취득한 재산이 없다. 법원 역시 상속세 납부에 사용된 피상속인 명의의 예금은 원칙적으로 상속재산분할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대법원 2022. 7. 20.자 2022스597, 598 결정 참조).
다만 상속세 납부에 사용된 피상속인의 예금을 상속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도 있다. 상속인들 사이의 상속분과 상속세 부담비율은 일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불일치할 때도 있다. 상속세 산정에서 고려되는 특정 상속인에 대한 증여는 상속개시일 전 10년 이내에 이루어진 증여로 한정되지만, 구체적 상속분 산정에서 고려되는 특정 상속인에 대한 증여에는 기간 제한이 없다. 위 사례에서 장남에 대한 증여가 있은 때로부터 20년 후에 김사장이 사망했다면, 장남의 상속세 부담비율과 상속분이 달라진다. 이때에는 위와 같은 불일치를 상속재산분할절차에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이처럼 상속분쟁 중에 상속재산으로 상속세를 납부한 때에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능한 다른 상속인들과 원만하게 협의를 하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전에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불필요한 법률분쟁을 줄이는 길이다.
허승 판사
현재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부장판사)에서 근무 중이며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