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압승으로 막을 내린 걸 보곤 문득 잊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십 수년도 더 지난 일이다. 무리한 지역구 민원성 건설예산 남발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을 때다. 한동안 논란이 뜨거웠다. 이슈가 채 가라앉기도 전인데 기사에 언급된 A의원이 의정활동 보고회를 열었다. 비판 기사에 대한 반응은 대개 항의로 되돌아 오지만 이 건에선 정반대였다. 불만은커녕 실명을 거론한 기사를 정성껏 비닐로 코팅해서 지역민들에게 돌려 의아했다. 매체에서 욕 먹어가며 지역을 위해 애썼다는 주장이었다. 주민들은 칭찬하기 바빴다. 무리한 민원예산 할당의 부작용을 지적한 취지는 간데 없고 열정적 의정활동 본보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는 이후 정가에서 자리를 굳건히 다졌다. 이런 게 정치의 생리라는 걸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트럼프에게선 A의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복잡한 전략적 행보가 읽힌다. 비난을 자산으로 바꾸는 정치력을 국가적 규모로 확장한 셈이다.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내내 미국 내 주류 언론과 각계 유력 인사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트럼프 정부 고위직 출신과 공화당에서조차 비난 목소리가 일었다. 그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고 ‘카더라’식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짜깁기해 전략적으로 썼다. 때로는 예측하기 힘든 방식으로 엉뚱하고 자극적인 공세를 펴며 상대를 혼란에 빠뜨렸다. 일각에선 ‘극단주의’라고 폄하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스로 논란을 증폭시키며 지지층을 결집해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벌써부터 세계 각국은 이해득실 분석과 외교전략 변경에 분주하다. 정식 취임 전이지만 벌써 많은 게 바뀌고 있다. 협상의 룰을 바꾸고 불확실성을 높혀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트럼프 스타일 때문이다. 그는 모든 걸 단순 명쾌하게 나눈다. 기준은 정치적 이익극대화다. 이런 전략이 어디까지 통할지 알 순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로서도 일관성을 고집하며 원칙에 매달려선 출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실 트럼프의 정책목표 중엔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틀에서는 같은 듯하면서도 충돌하는 게 적잖다. 관세폭탄으로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미국 중심 공급망을 공고히 한다는 계획만 해도 그렇다. 미국으로 제조시설 이전을 유도하며 줬던 당근을 빼앗을 태세다. 투자를 결정한 기업들로선 다른 길을 고민할 수밖에. 관세폭탄을 퍼붓는다면 어찌 될까. 수입품 가격이 뛰어 그나마 잡힌 물가를 앙등시킬 게다. 바이든 정부를 향해 경제실정이라며 쏟아부은 비난의 화살은 부메랑이 된다. 주한미군 철수를 볼모로 한 방위비 분담금 10배 확대 요구는 또 어떤가. 주둔에서 뺀 군인력을 어디에 배치하고 비용을 얼마나 더 쓰려 할까. 한국이 미군 철수를 감내하며 독립적 군사력 강화 카드를 꺼내 든다면. 종전과 같은 협상의 틀은 유효하지 않을 터. 극단적 상황을 조성해 주도권을 잡으려다 국제적 갈등만 키울 공산도 없지 않다. 굳이 손자병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책이다. 독안에 든 쥐라도 궁지에 몰리면 물 수 있다. 트럼프가 2기 통치에선 궁한 상대에게 탈출구를 열어줘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하진 않게하는 현명함을 발휘했으면 싶다.
[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1호 (2024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