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부동, 겉바속촉, 겉과 속이 다를 때 쓰는 말이다. 뉘앙스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파리는 확실히 겉과 속이 다른 도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한 이야기를 정오의 햇살이 강렬했던 지난 6월 22일, 파리 15구의 시트로엥 공원(Parc Andre‘ -Citroe“ n)에서 시작해 본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 시트로엥의 공장 부지를 활용해 만든 21세기 바로크풍 시민정원은 파리에 거주하는 한인들도 자주 찾는 지역 명소다. 이곳에서는 매년 가을 프랑스 한인 2세대 청년들이 주도하는 Korea Street Festival이 열리는데, 말 그대로 힙한 프랑스 청년들의 성지순례 장소다. 올해는 파리 올림픽 때문에 초여름으로 시기를 옮겼는데, 이 날 정오 에스파의 ‘Super Nova’가 울리자, 프랑스의 전문 댄서들이 K-POP 최신 노래에 맞춰 커버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춤꾼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을 보기 위해 모여 있던 수백 명이 동시에 슈퍼노바를 따라 추기 시작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장관이었다.
우리 노래를 프랑스인들이 사랑한다는 뭉클한 애국심은 차치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춤추면서도 순간 하나가 된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 본 바닷속 수만 마리의 물고기 군무를 연상시킨다. 작은 개체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형태를 만들어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물고기 떼의 군무는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생동하는 바다의 대서사시다. 사실, 개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집단으로 하나가 되는 철학, 파리의 도시 미관을 관통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파리 도시 외관의 특징이라면 3차원의 공간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루브르 맞은편 히볼리(Rivoli)가에 곧게 이어진 건물들이 그렇고, 루브르 박물관을 나와 오페라 가르니에를 바라볼 때 이런 느낌을 강하게 갖는다. 같은 모양의 건물들이 연이어 붙어서 마치 기다란 하나의 건물처럼 멀리 소실점을 향해 달려간다. 각 건물의 4층과 5층(프랑스에서는 3층과 4층에 해당. 우리에게는 없는 0층이 존재해서 우리와는 층수 구별이 상이)에 설치된 흑색 철제 난간들도 각각 소실점을 향하며 하나의 선이 되어, 평면 위의 원근법을 더욱 생동감 있게 구현한다.
나폴레옹 3세에 의해 파리시장으로 임명된 조르주-외젠 오스만(Georges-Eugene Haussmann) 남작은 1853년부터 파리를 새롭게 건설해 나가며, 개별 건물들이 도시 속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각 건물들은 규격화라는 조건을 엄수해야만 했다. 건물 전체의 높이는 물론이거니와 층별 높이도 같아야 했고, 철제 난간이 위치하는 층의 위치와 난간의 모양, 그리고 창문의 색과 크기 등 세부적인 내용까지 규정되었다. 이렇게 지어진 각각의 건물에는 작은 프랑스가 하나씩 존재한다. 도로를 접한 1층은 우체국, 카페, 상점 등 상업시설로, 2층은 그 시설들의 사무공간 또는 창고로, 3층과 4층은 층고를 높게 해 귀족이나 부유층이 거주하고, 5층과 6층에는 중산층이 산다.
그리고 구부러진 남색 지붕이 특징인 꼭대기층에는 도시 하층민들이 주거하는 방식이다. 도시의 구역을 정해 계층별로 주거지를 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건물에 모든 계층이 공존하는 프랑스 혁명의 평등 의식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동일한 장소에 서로 다른 계층이 모여 살기 때문에 층수와 층고에 따른 작은 차이는 있다고 해도 상하수도 시설, 1층의 상업시설 이용 등 도시 인프라 접근성 측면에서도 평등이 생활 속에 구현된 것이다. 이런 개별 건물들은 옆 건물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붙어, 마치 거대한 궁전처럼 웅장한 외관을 자랑한다. 각 건물들이 규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마치 자연 속의 군무와 맥을 같이한다.
대로(Boulevard)변에 이어진 건물들은 일정 거리가 되면 사이사이 작은 도로(Rue)를 경계로 하나의 섬과 같은 블록, 일로(i“lot)를 구성하는데, 이 거대한 집합 건물의 내부에는 이른바 중정(Cour)으로 불리는 비밀의 공간이 존재한다. 쉽게 말하면, 해당 구역의 외곽에만 동일한 모양의 건물을 지어 연결하고, 비어있는 내부는 정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는 이런 비밀 공간을 통해 각 건물마다의 작은 프랑스는 끈끈한 연대의 토대가 된다. 획일화된 외관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해도, 실제로 각 건물은 상당한 독창성과 정체성을 가진 주체가 된다.
이처럼 도시 파리는 각 건물들이 사회의 작은 표본이 되면서도, 전체로 모여서 웅장하고 위대한 멋을 뽐내는 매우 독특한 도시다. 한마디로 겉은 화려하고 속은 따스하다는 얘기다. 오스만 남작이 구현한 건축 양식을 신고전(Neo-Classic)이라 부르는데, 로마 시대의 건축 및 미술 양식을 재현해 낸 것을 말한다. 17세기 중반, 화산재에 덮혀 있던 폼페이의 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하자, 이를 통해 유럽인들은 로마인의 실생활을 복원하게 되고, 이에 영향을 받아 로마를 재현한 건축 및 미술사조가 바로 신고전주의다. 파리는 이런 신고전주의 양식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를 화려하게 복원한 외양과 프랑스 혁명을 구현한 정신이 조화를 이룬 인간 건축의 군무, 대서사시 같은 공간이라고 본다.
지금 2024년 하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파리는 기존 체육 시설이 아닌 도시의 공간을 올림픽 시합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양궁이 앵발리드 광장에서, 브레이킹 댄스와 3:3 농구가 콩코르드 광장에서, 비치 발리볼이 샹드막스(Champ de Mars) 광장에서 열리는 방식이다. 개회식은 센강을 따라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이 모든 축제의 현장을 방송 매체들은 파리의 하늘에서 아름답게 중계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겉이 화려한 파리에 매료되었다면, 이제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파리의 속살, 그 내면에 흐르는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마치 폼페이의 유적을 발굴하듯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세계인에게 각인되는 새로운 파리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