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신화의 주인공 ‘드비어스’가 중대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올 5월 드비어스의 모회사인 ‘앵글로 아메리칸(Anglo American)’이 드비어스의 매각 또는 분리 계획을 발표하며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달 뒤, 드비어스는 자사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주얼리 브랜드인 ‘라이트박스(Lightbox)’의 보석용 다이아몬드 생산 중단을 선언했다. 이러한 일련의 충격적인 소식은 드비어스뿐만 아니라 다이아몬드 산업 전반에 걸쳐 중요한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앵글로 아메리칸의 핵심 자회사로서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선도해온 드비어스는 이제 중요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 이것이 드비어스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이끌지 아니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191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설립된 앵글로 아메리칸은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구리, 니켈, 철광석, 석탄 등 다양한 자원을 생산하는 글로벌 광산 회사다. 런던에 본사를 두고 남아프리카, 북미, 남미, 호주 및 아시아 등지에서 광범위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2012년 드비어스의 지배 지분을 소유하고 있던 오펜하이머 가문이 앵글로 아메리칸에 40%의 지분을 매각하며 드비어스의 지분을 85%까지 늘렸다. 현재 나머지 15%의 지분은 보츠와나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이번 앵글로 아메리칸의 결정은 수익성이 높은 구리와 철광석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구리는 최근 전기차 산업의 성장과 재생에너지의 확산 등 친환경 핵심 소재로 부상하며 수요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앵글로 아메리칸은 드비어스 사업뿐만 아니라 플래티넘과 석탄 부문도 2025년 말까지 매각을 완료할 예정이다. 핵심 운영을 강화하기 위해 부진한 사업 부문을 정리하는 방편이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다이아몬드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드비어스로서는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한 시대의 종말’로 표현하고 있다. 잠재적 인수자로 럭셔리 기업과 중동의 국부펀드가 거론되고 있지만 천연 다이아몬드 산업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드비어스의 매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 드비어스의 역사적인 역할을 감안할 때 새로운 소유권하에서 다이아몬드 시장의 역학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과 럭셔리 제품 소비 감소로 수요가 약화된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은 이미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가격과 환경 문제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추가로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다. 다이아몬드 분석가 폴 짐니스키는 천연 다이아몬드 산업이 위기에 처한 현 상황에서 드비어스의 변화가 다이아몬드 공급망에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과거 드비어스는 시장 침체기 동안 가격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공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새로운 소유주 하에서는 보다 공격적인 판매 전략이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천연 다이아몬드 업계에서는 새로운 인수자가 단기적인 가치 추구보다는 적절한 투자를 통해 산업을 성장시키고 드비어스의 오랜 유산을 지속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보고있다.
지난 6월 초 드비어스는 ‘라이트박스’의 보석용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생산을 중단하고 미국 오리건에 위치한 생산 공장을 산업용 다이아몬드 허브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이아몬드는 뛰어난 경도와 열전도성으로 다양한 첨단 기술 및 산업 응용 분야에서 필수적인 성장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드비어스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자, 자동차, 항공우주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응용을 확장 중이다. 2018년에 출시된 드비어스의 라이트박스는 저렴하고 패션 지향적인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주얼리로 천연 다이아몬드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생산 중단 결정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가격 하락 압박에 따른 전략적 후퇴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천연 다이아몬드와 랩 다이아몬드 사이의 균형을 재조정하고 자원과 투자를 보다 수익성 높은 영역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방침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드비어스는 천연 다이아몬드의 고유 가치를 재확립하고 새로운 소유주하에서 핵심 운영에 자원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두 가지 발표는 앵글로 아메리칸과 드비어스 모두 변화하는 시장 환경과 새로운 기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두 기업 모두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재평가하고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앵글로 아메리칸이 방향을 설정하는 동안 드비어스는 산업용 합성 다이아몬드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장하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와의 차별화를 명확히 하고 천연 다이아몬드의 고유한 가치와 전통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박스의 오리건 공장 전환은 향후 몇 년 내에 완료될 예정이며, 드비어스는 산업용 다이아몬드 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과 공정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시장 요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 수요 또한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현재 드비어스에는 ‘매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표가 붙어 있다. 자산으로서나 공개 기업으로서 최대 가치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성장’을 입증해야 한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경쟁 심화 속에서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는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