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철이 코앞인데도 성수기를 맞은 면세점업계는 구조조정에 희망퇴직 등으로 비상이다.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은 6월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 창업 42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퇴직에 나섰고 국내 1호 시내면세점인 동화면세점도 5년째 자본잠식 상태로 사업 규모를 줄이고 있다. 2020년 8곳이었던 중소·중견 면세점은 현재는 4곳만 남았다.
한국 면세점은 한때 세계 면세시장 1위, 글로벌 점유율 25.6%에 달했다. 2010년대 들어 이른바 ‘유커’라 불린 중국 단체관광객이 대거 몰려와 국내 면세점에서 명품과 화장품을 쓸어 담았다. 면세점을 유치하는 것은 ‘현금 자판기’를 확보하는 것과 같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2019년 25조원에 육박했던 한국 면세점업계 매출은 지난해 13조원으로 반 토막 났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한국 면세점이 어떻게 5년여 만에 ‘미운 오리 새끼’가 됐을까.
지나치게 유커·다이궁(帶工·보따리상)에만 의존했던 시내면세점 운영 구조가 가장 큰 문제였다. 관광객 유치 경쟁이 심해지면서 면세점이 관광객을 데려다주는 대가로 여행사나 가이드에게 지급하는 ‘송객수수료’가 치솟아 면세점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업계도 정부도 과도한 송객수수료 문제를 해결하려 않고 눈감았다.
불과 수년 만에 국내 면세점 영업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돌아오지 않고 면세점 ‘싹쓸이’ 쇼핑 대신 맛집, 핫플레이스를 찾는 싼커(중국 개별 관광객)와 K-팝 관광객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유커’라는 외부요인이 영원할 것처럼 ‘상수’로 두고 안일하게 유커 유치에만 매달려 출혈경쟁을 했던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도 면세점업계의 위기를 야기하는 데 한몫했다. 정부는 면세산업 육성 명목하에 면세점 면허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공개입찰로 전환한 데 이어 서울 시내면세점 3곳을 신설했다. 산업의 내실을 다지고 고도화해 영속성을 확보하기보다 유커만 믿고 신규 면세점 특허를 남발해 국내 시장의 파이 나눠 먹기에 급급했던 셈이다.
국내 면세점업계와 정부가 근시안으로 산업의 영속성을 키우는 데 실기(失期)하는 동안, 중국 정부는 면세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하이난(海南)을 국가면세특구로 지정해 대형 면세점 12곳을 유치하고, 내국인 1인당 연간 면세 한도를 기존 3만위안에서 10만위안으로 올리는 등 규제를 풀어줬다. 중국 ‘큰손’ 고객들이 하이난 면세점으로 대거 이동한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국내 면세점들을 제치고 전 세계 1위에 올라선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은 여세를 몰아 지난해 인천공항 면세점사업자 입찰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다.
면세업계의 체질개선이 시급하다. 내국인 구매 한도 완화, 역직구 도입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도 필요하다. 면세업은 관광·문화·의료 등과 연계된 국가의 관광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이다. 적어도 10년, 20년을 내다 본 국가적 전략을 담아 정책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6호 (2024년 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