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에 나도는 이야기가 있다.
“세 부류 골퍼가 있다. 필드에서만 잘하는 사람, 스크린에서만 잘하는 사람, 필드와 스크린 모두 잘하는 사람.”
겨울과 여름 혹서기엔 필드보다 스크린 골프장이 더 붐빈다. 겨울철엔 스크린 골프장에서 기량을 연마하는 마니아도 있다. 스크린 골프 고수와 골프를 하면서 묘한 기분을 느낀다. 스크린에서 언더파를 적는 동반자가 필드에선 100타 가까운 스코어를 기록할 때이다.
스크린 골프장에서 필자에게 레슨까지 했는데 필드에선 10타 이상 나에게 뒤져 놀라웠다. 알고 보니 필드는 거의 나가지 않고 스크린 골프장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이젠 1시간 이상 차 타는 대신 시내 깨끗한 스크린 골프장에 가고 싶어. 주말엔 차가 안 밀리고 저렴한 스크린 골프장이 더 좋아.”
골프 마니아인 친구는 스크린에서도 필드와 똑같은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필드는 물론 스크린에서도 싱글 핸디 캐퍼이다. 1번 필드 비용으로 10번 스크린 골프가 가능해 금상첨화란다.
그는 골프를 끝내고 종종 시내 스크린 골프장에서 18홀을 더 돈다. 비가 오거나 겨울엔 다른 스크린 애호가와 서로 스윙 자세를 봐주며 가다듬기도 한다.
반면 구력 20년의 한 친구는 스크린에서 재미를 전혀 못 느낀다. 80대 초반 실력인 그는 친구들에게 마지못해 끌려와 스크린 골프장에 간다.
이런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골프가 엄연한 골프문화로 자리잡았다. 오히려 대세다. 골프대회 인기 측면에서도 여자프로 골프, 스크린 골프, 남자프로 골프 순이라는 말이 나돈다.
“처음엔 그것도 골프인가 하는 핀잔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이젠 같은 프로선수들도 스크린 골프대회인 G투어 출전에 관심이 큽니다.”
김홍택(31)이 5월 초 남서울CC에서 열린 GS칼텍스매경오픈에서 우승해 화제를 모았다. 수년간 스크린 골프대회 황태자로 불리며 12승을 일군 김홍택은 메이저 대회에서도 최강자로 올랐다.
“스크린 골프대회는 비시즌에만 참가하죠. 성적이 좋다보니 스크린만 치는 게 아니냐는 오해가 있었는데 이번에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어요.”
김홍택은 필드에서도 열심히 연습하고 스크린 골프와도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지독한 연습 벌레로 오전에는 야외, 오후엔 스크린에서 연습하는데 스크린에서 21언더파를 기록한 적도 있다.
그에 따르면 드라이버 거리는 스크린이나 필드 모두 비슷하다. 단 쇼트게임에선 경사가 아무리 심해도 공이 멈춰서는 등 오락 요소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스크린 그린이 굉장히 빨라 오히려 필드보다 더 집중할 때도 있다. 스크린이라고 쉽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필드에서 10언더파 이하를 밥 먹듯 하는 아마추어 스크린 괴물도 많다고 전한다.
스크린 골프대회에서 10승 이상을 올린 프로선수 김민수(34)는 “스크린에서는 거리나 바람 세기 같은 변수가 숫자로 나오기에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며 “반면 필드는 변수가 너무 많아 어렵지만 스크린보다 더 재미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힌다.
스크린 골프 요령은 유튜브 동영상 등으로 많이 소개된다. 전문가 조언을 간추리면 기기를 이용한 거리와 방향 측정이 제일 중요하다. 기기 조작 미숙과 불편함이 스크린 골프 흥미 감소의 가장 큰 요소다.
드라이버샷은 필드와 비슷하고 스크린에서는 자연스럽게 방향이 설정돼 필드보다 에이밍하기 편하다. 바람을 잘 감안해야 한다.
스크린에서 아이언샷으로 거리를 내기 위해선 특히 뒤땅을 내지 않고 정확한 임팩트가 매우 중요하다. 다운스윙 때 손목을 풀지 않고 좀 더 끌고 오는 것을 명심하면 좋다. 필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언샷에서는 무엇보다 공을 띄워야 한다. 롱 아이언을 제외하곤 공을 그린에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스크린에선 퍼트가 가장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경사와 방향을 잘 계산해 스크린에 맞는 감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에 임하기 전 기기 조작법을 충분히 숙지하는 것이 스크린 고수 탄생의 첫 번째 조건이다.
투어 성적이 신통치 않을 때는 스크린 골프대회에 진출하는 프로선수도 늘어난다. 스크린 골프대회(G투어) 통산 12승으로 남자 부문 최다승을 올린 최민욱(28)은 ‘최민욱의 스마일골프’라는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한다.
스크린 골프대회 상금도 많이 늘었다. 2012년 8억원으로 시작한 G투어 상금은 이젠 연간 13억원으로 올라 누적 상금 100억원 시대를 넘은 지 오래다.
한국골프백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골프장 시장 규모는 5조1200억원이었다. 스크린 골프 시장 규모는 절반에 육박하는 2조1865억원이었다.
국내 스크린 골프업체는 크게 골프존을 선두로 카카오VX가 추격하는 양상이다. 골프존이 80%를 점유했었지만 현재 절반 정도로 내려앉았다.
이들 업체가 내놓은 스크린 장비는 타구 방향 인식 센서를 비롯해 하드웨어 정확도에선 별 차이가 없다. 임팩트 후 공 움직임이 화면에 반영되는 속도와 공이 페어웨이에 떨어져 얼마나 자연스럽게 굴러가는지 등이 기술력 차이다.
“티 높여줘” “멀리건 쓸게” 등 음성인식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스크린 장비(카카오VX)도 나왔다. 카메라 센서를 이용해 스윙 자세를 다각도로 촬영해 프로선수 동영상과 비교하는 단계까지 진화했다.
외신에서도 간혹 명사들이 스크린 골프를 하는 장면이 나와 열기를 실감케 한다. 타이거 우즈는 음주와 부상에서 회복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스크린 골프장에서의 아이언샷 장면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골프광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백악관에 5만달러(약 5600만원)를 들여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스크린 골프 장비를 낡았다며 교체했다.
스크린 골프장 안전과 매너는 좀 더 신경 쓸 부분이다. 간혹 음주와 흡연에 따른 화재로 인명사고가 생긴다. 멀리건을 남발하는 등 골프 매너에 어긋하는 행위가 필드에 그대로 이어져 문제로 지적된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