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가치세는 재화나 용역이 생산·제공되거나 유통되는 모든 단계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에 부과되는 조세이다. 부가가치세의 특징 중 하나는 조세전가의 과정을 통하여 최종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는 것이다. 철수가 대형마트에서 장난감을 1,100원에 샀다고 생각해보자. 철수가 대형마트에 지급한 1,100원 중 100원이 바로 부가가치세이다. 대형마트는 철수로부터 1,100원을 받아 그 중 100원을 세무서에 부가가치세로 납부하게 된다. 부가가치세의 납세의무자는 사업자인 대형마트이지만, 그 실질적 부담자는 소비자인 철수이다.
그렇다면 철수가 대형마트에 부가가치세 100원을 지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가가치세법 제31조는 사업자가 재화 또는 용역을 공급하는 경우에는 공급가액에 10%의 세율을 적용하여 계산한 부가가치세를 거래 상대방으로부터 징수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부가가치세법에 의하면 대형마트(사업자)는 장난감을 구입한 철수(거래 상대방)로부터 부가가치세를 징수하여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부가가치세법 제31조가 부가가치세를 궁극적으로 최종소비자에게 부담시키겠다는 취지를 선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형마트(사업자)는 위 규정만을 근거로 철수(거래 상대방)로부터 부가가치세를 징수할 수는 없다고 본다. 대신 철수가 대형마트에 부가가치세를 지급한다는 약정이 있어야 대형마트는 그 약정에 근거하여 철수에게 부가가치세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대형마트가 장난감의 판매가격을 1,100원으로 기재하여 진열해 두었고, 철수가 그 판매가격을 보고 장난감을 사기로 함으로써 대형마트와 철수 사이에 철수가 부가가치세 100원이 포함된 가격에 장난감을 구매한다는 매매계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철수는 대형마트에 100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법원은 사업자의 부가가치세 징수의 근거를 당사자 사이의 약정으로 보고 있다. 설사 대형마트(사업자)가 철수(거래 상대방)로부터 약정에 따라 받은 부가가치세를 국가에 납부하지 않더라도 철수는 대형마트에 자신이 지급한 부가가치세 100원의 반환을 구할 수 없다. 이는 대형마트의 납세의무 불이행일 뿐 철수와의 부가가치세 지급 약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위 사례에서 부동산 중개계약서에 기재된 “부가가치세 별도”라는 문구가 바로 부가가치세 지급 약정(이하 ‘부가세 약정’)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부가세 약정에 따라 거래 상대방이 사업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부가가치세는 과연 얼마일까? 주식회사와 같은 일반과세자의 경우에는 부가가치세율이 10%이므로 거래 상대방은 사업자에게 10%를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사업자가 간이과세자인 경우에는 논의가 복잡해진다.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이 일정액 미만인 사업자는 간이과세제도를 적용받을 수 있다. 간이과세제도는 부가가치세 신고․납부 등이 어려운 소규모 개인사업자의 조세부담을 경감하고 납세편의를 제고하기 위한 제도이다. 간이과세자의 납부세액은 부가가치세법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과세자와 다른 방식으로 계산된다. 공급가액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납부해야 하는 일반과세자와 달리 간이과세자는 공급대가(부가가치세 포함)에 업종별 부가가치율을 곱하고 다시 10%를 곱한 금액만 부가가치세로 납부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간이과세자는 1.5 ~ 4.0%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공인중개사인 영숙이 간이과세자인데, 영숙에게 적용되는 업종별 부가가치율이 40%라고 가정하여 보자. 영숙이 상철을 상대로 부가세 약정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부가가치세 상당액은 100만원(= 1,000만 원 × 10%)일까, 아니면 40만원(= 1,000만 원 × 10% × 부가가치율 40%)일까? 최근까지 법원 판단이 엇갈리고 있었다. 거래 상대방이 사업자에 대해 부담하는 부가가치세 지급의무는 계약에 따라 발생하는 것으로 사업자가 국가에 부담하는 납세의무와는 무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가가치세율을 10%로 알고 있으므로 부가세 약정을 계약서에 기대된 금액에 10%를 더하여 지급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당사자의 의사에 부합한다고 본 판결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판결에 따르면 영숙은 부가세 약정에 따라 상철로부터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즉 상철은 100만원을 반환받을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은 부가세 약정에 따라 사업자가 청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부가가치세 상당액은 당사자 사이에 명시적 또는 묵시적 형태의 약정이나 거래관행이 존재하는 때에는 그에 따른 금액을 의미하고, 그러한 약정이나 거래관행이 존재하지 않는 때에는 해당 거래에 적용되는 부가가치세법령에 따라 계산한 금액을 의미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24. 3. 12. 선고 2023다290485 판결). 위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영숙은 부가세 약정을 근거로 상철로부터 100만원을 받을 수 없다. 간이과세자인 영숙에게 적용되는 세율이 실질적으로 약 4%이기 때문이다. 영숙은 상철에게 부가가치세법령에 따라 계산한 금액을 초과하여 받은 부가가치세 상당액을 반환해야 한다.
한편 해당 사업연도 매출액이 4,800만원 미만인 간이과세자는 부가가치세가 면제된다. 사례와 같이 영숙이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간이과세자라면 영숙은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숙은 상철에게 부가가치세 명목으로 받은 100만원을 모두 반환해야 할까? 부가세 약정을 원칙적으로 공급받는 자(상철)가 공급하는 자(영숙)에게 공급하는 자가 실제 부담하는 부가가치세만을 지급한다는 약정으로 해석한 위 대법원 판결 취지를 고려하면, 영숙은 상철에게 100만원을 모두 반환해야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위 대법원 판결은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간이사업자에 관한 판례가 아니기 때문에 결론을 단정하기 어렵다. 부가가치세 면제 여부는 직전 사업연도 매출액이 아니라 해당 사업연도 매출액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숙이 상철로부터 받았던 부가가치세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다소 어색한 점이 있다. 향후 법원 판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본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음
허승 판사
현재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부장판사)에서 근무 중이며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