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4월 15일 해 질 녘, 19세기 남성 패션을 상징하는 고급 수제 탑햇(Top Hat)을 쓴 신사들과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Un dimanche apres-midi a l’lle de la Grande Jatte)’에서 눈에 익은 허리 뒤가 볼록한 버슬(Bustles) 패션의 여인들이 완공을 앞두고 웅장한 외관을 드러낸 오페라 가르니에로 향하는 카푸신 대로(Boulevard des Capucines)를 여유롭게 거닐고 있는 특별하지 않은 파리의 여느 저녁이다. 하지만 이 대로의 한 건물, 당시 유명한 사진가였던 나다르(Nadar)의 스튜디오 안에서는 세계 미술사조를 바꿀 아주 특별하고 위대한 전시회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자신들 작품에 마지막 붓칠 중인 르누아르(Renoir)와 드가(Degas), 그 옆에서는 모네(Claude Monet)가 자신과 마네(Edouard Manet)를 혼동했다고 짜증을 내고, 모리조(Berthe Morisot)와 피사로(Camille Pissarro)는 자신들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한탄하고 있다. 이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받은 당신은 ‘시간여행자’다. 40분의 시간 여행 동안 당신은 ‘인상, 해돋이’를 그리는 모네의 옆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증기기차를 타고 파리 서쪽 부지발(Bougival)로 화가들과 여행을 떠난다.
인상주의 회화 시작 150년을 기념해, 오르세 미술관에서 기획한 ‘1874년 파리, 인상파 화가들과의 저녁(Unsoir avec les impressionnistes, Paris 1874)’이라는 제목의 가상현실 체험 전시회 이야기다. 지난 3월 26일 시작해 2024 파리 하계올림픽이 끝나는 8월 11일까지 이어진다. 1874년 실제 전시회는 당시 최고 권위의 화가 등용문인 살롱전에 초대받지 못한 31명의 말 그대로 무명작가전이었다. 한 달 동안 전시회를 찾은 관객은 고작 3500명에 불과했는데, 그해 살롱전 관객은 30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가히 그 위상의 차이를 실감케 한다. 그런데, 왜 150년이 지난 지금 시작이 미미했던 인상주의 회화는 이렇게 창대하게 성장한 걸까?
그것은 인상파가 자연을 소재로 하는 풍경화 중심의 새로운 화풍 정도가 아니라,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의 프랑스 사회 속에서 구시대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창작자의 주관이 투영된 새로운 예술을 구현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응축된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치 영화 마블 시리즈의 슈퍼히어로처럼, 시대를 바꾼 위대한 작품들을 그린 인상파 작가들의 시련, 냉대, 무관심을 이겨낸 세계관에 우리는 열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르세 미술관의 가상 체험 전시는 예술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당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위대한 화가들의 삶을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봄으로써, 작품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1890년 5월 20일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와즈에 도착하여 7월 29일 자살 시도로 그곳에서 사망하기까지 고흐의 삶을 그의 팔레트에서 바라본 시선으로 가상 체험하는 ‘오르세, 고흐 빨레트전’도 지난해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이처럼 과거 특정 시대에 대한 가상 체험 전시를 위한 노력은 다분히 분석적이고 과학적이다. 1874년도를 완벽하게 복원하기 위해 화가들이 교환한 서신은 물론 벽지 영수증까지 찾아 당시를 재현했다고 한다. 철저한 고증으로 체험의 재미와 의미를 배가시킨다.
흔히 VR로 불리는 가상현실은 주로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이용되고는 한다. 우리가 가보지 못하는 공간을 기계 장비에 의존해 경험하는 방식이다. 2019년 루브르에서도 모나리자를 주제로 최초의 VR 전시를 기획했는데, 하루 2만 명이 몰리는 관객들 사이에서 스치듯 감상하는 대신 가상현실을 통해 작품을 다각도에서 바라보는 재미를 선사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에 비해, 오르세의 기획은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VR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방법이 과학적이고 철저한 고증에 기반한 고고학적인 증명이라는 점에서 미셸 푸코의 철학적 사유를 닮았다. 이 점에서 발칙한 상상이 생겨난다.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흘러, 오르세의 ‘1874년 파리, 인상파 화가들과의 저녁’ 전시회가 가상현실 시간여행 영화의 시초로 자리매김하는 건 아닐까?
‘라 시오타역에 도착하는 기차(L’arrive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라는 영화가 있다. 최초의 근대식 필름 카메라이자 영사기로 평가받는 시네마토그래프를 만든 뤼미에르 형제가 그 기계를 이용해 촬영하고, 1896년 상업적으로 상영한 50초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사실 시네마토그래프로 촬영되고 상영된 최초의 영화는 1895년 12월에 세상에 공개된 뤼미에르 형제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었는데, ‘라 시오타역에 도착하는 기차’가 상영되었을 때, 기차가 자신들에게 달려든다며 겁을 먹고 관객들이 소리 지르며 도망쳤다는 일화 때문에 세계 최초의 영화로 잘못 알려지게 된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처럼 인상파 시대의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해준 ‘1874년 파리, 인상파 화가들과의 저녁’도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1810년 외교부 청사로 건축되었다가 국가위원회 청사로 사용되던 중, 최초의 사회주의 체제 파리코뮌 시기인 1871년 불타버린 건물. 다시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파리와 오를레앙을 연결하는 기차역으로 복원되었지만, 점차 길어지는 기차의 길이에 비해 플랫폼이 짧아 1936년 기차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방치되다 1986년 마침내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고향 같은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오르세. 그 역사적인 부침만큼 그리고 인상파만큼 시련을 극복한 영웅적인 세계관의 상징이다. 언젠가 미술관이 다시 사라진다 해도, 그 자리에 세계 최초의 시간여행 영화관이 들어서는 상상을 해본다. 150년 전 인상파가, 130년 전 최초의 영화가 시간이 흘러 지금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현상을 보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5호 (2024년 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