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가 된 인물의 극한 생존기는 영화팬들에게 늘 환호를 받아 왔습니다. ‘캐스트 어웨이’와 ‘슬픔의 삼각형’(외딴섬), ‘라이프 오브 파이’와 ‘올 이즈 로스트’(망망대해), ‘폴 600미터’(첨탑), ‘127시간’(암벽), ‘터미널’(공항), ‘아틱’(북극), ‘레버넌트’(숲), ‘터널’(터널) 등은 인간(들)의 극적인 생환과 인간의 표정을 다룬 영화들입니다.
그 가운데, 리들리 스콧의 최고 흥행작으로 기억되는 ‘마션’은 위상이 독특합니다. 우주 표류와 극한 생존을 다룬 명작으로는 ‘그래비티’도 있습니다만, ‘마션’은 인류 역사상 가장 먼 지역인 ‘화성’에서의 생존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조난 스릴러 영화와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아폴로13’도 결국 지구의 위성 달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마션’은 아예 행성을 옮겨버리는 과감함을 선택했습니다.
영화 ‘마션’은 1972년생 미국 소설가 앤디 위어의 동명소설이 원작입니다. 8세 때 이미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을 탐독한 ‘문학 천재’ 앤디 위어는 드넓은 우주관을 가진 작가입니다. 소설 ‘마션’은 2014년 출간돼 뉴욕타임스 소설 부문 12주 연속 베스트셀러의 영예를 얻은 명작이지요. ‘마션’에 담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영화 ‘마션’ 주인공은 배우 맷 데이먼이 연기한 마크 와트니입니다.
아레스3 탐사대 ‘막내’로 참여한 마크 와트니는 모래폭풍으로 생체신호 감지기가 손상돼 혼자 화성 한복판에 실종됩니다. 남은 대원이라도 구조해야 했던 아레스3 탐사대장 멜리사 루이스는 화성상승선(MAV)을 화성궤도로 올린 뒤 지구행을 결정합니다. 마크 와트니의 사망이 분명하다고 판단했으니까요. 그러나 마크 와트니는 안테나가 복부에 꽂히는 큰 사고에도 살아남았고, 아레스4 탐사대가 도착할 4년 후까지 화성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설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아무래도 X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14쪽) 동료 대원들이 식량팩을 화성 막사에 남겨두긴 했지만 언제 구조대가 도착할지 모르니 열량 확보를 위한 농작물 재배가 불가피 했습니다. 또 공기와 물, 그리고 대기순환(CO2 제거)을 해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구의 나사(NASA) 센터에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알리는 과제까지 완수해야 했지요. 마크 와트니는 특유의 긍정과 기지를 발휘해 549화성일(지구 시간 687일, 소설 기준) 만에 구조됩니다.
‘마션’은 왜 평단과 대중의 동시 호평을 받은 영화로 기억 될까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보기에 다음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션’에 등장한 인물 중에는 악한이 없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아레스3 탐사대원 마크 와트니의 화성 생존과 지구 귀환’이라는 단일한 목표 아래 선의로만 행동합니다. 이 영화에서 굳이 ‘악’한 건 화성이라는 미지의 대자연과 마크 와트니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야속한 우연뿐인데, 그걸 ‘악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이때 인물들의 선의는 공기, 기압, 호흡, 물, 열량 등 마크 와트니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조건을 달성하기 위한 이성과 합리주의에 기반합니다. 흔해 빠진 연애감정이나 서로 간의 반목과 오해가 없는, 완전무결한 생존 추구만이 영화의 동력입니다. 그 결과 이성과 합리가 승리하는 모습에 관객들이 박수를 보낸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원작소설 ‘마션’을 읽어보면, 영화에서 보여준 이성과 합리의 방향은, 정말이지 극단적입니다. 등장인물들은 전부가 철저히 이성으로만 행동합니다. 먼저 마크 와트니 구조작전 비용에 관한 부분입니다.
화성에 낙오된 한 남성의 생존에는 지구인들의 성원과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대원이 화성에 고립된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비용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막대한 자원(자본)이 소요되는 구조작전은 실익이 없다고 보는 편이 합당합니다. 한 사람의 구조를 위한 막대한 비용 소모가 현실에서 펼쳐진다면 인류애만으로 가능할까요. 아마도 ‘마션’이 현실이었다면 손익계산서부터 따지려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양분될 겁니다.
영화에선 마크 와트니 구조비용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다릅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언론인이 마크 와트니 구조비용의 상한선(최대한의 비용)을 설정했는지를 묻습니다. 공보책임자 애니 몬트로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한 인간의 목숨이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금전으로 환산하고 싶다면 마크 와트니의 임무 연장이 갖는 가치도 고려해야겠죠.”(300쪽) 작가 앤디 위어는 이러한 비판(구조작전의 비현실성)을 피해 가고자 이런 대목을 삽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크 와트니는 식량과 물을 확보하는 와중에도 지질표본 채취, 토양 실험, 주1회 의학 테스트를 성실하게 병행합니다. 나사의 지시에 따라서요. 소설에서 인류애는 부수적인 감정일 뿐입니다.
둘째, 화성으로 보내려던 보급선 추진 로켓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미국 나사가 겪은 불운을 보며 중국국가항천국은 자신들의 추진 로켓을 무상으로 대여하기로 결정합니다. 타이양센(太陽神) 추진 로켓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중국 측은 타이양센 추진 로켓을 사실상 무상으로 쓰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소설 ‘마션’에서, 중국이 타이양센 추진 로켓의 사용을 허락해준 내막은 다른 데 있습니다. 추진 로켓을 주는 대가로 중국은 미국이 ‘아레스5 탐사대원’을 선발할 때 중국 우주비행사를 ‘끼워 넣는’조건을 답니다. 서로 간의 거래였지요. 중국 국가항천국회의에서 국장은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공식적으로 미국인을 구조하는 셈이 되지. 우주에선 중국이 미국과 동등하다는 것을 세계에 입증하는 셈이야.”(320쪽)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아레스5 탐사대가 화성 궤도로 향하는 희망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아시아 남성 한 명이 대원 중 1인으로 탑승해 있습니다. 영화에서 설명되진 않아도 그 대원의 국적은 중국임이 분명합니다. 영화는 중국 국가항천국의 추진 로켓 대여를 인류애로 포장하면서, 원작에서의 중국의 계산(미국의 화성 탐사대원에 중국인 포함)을 교묘히 감추는 전략을 썼습니다. 그 결과 인류애만 돋보이는 영화가 되었지요.
셋째, 마크 와트니는 화성 하강선(MDV) 원격 조종을 통해 화성 궤도로 올라갑니다. 그가 화성으로 돌아온 헤르메스호와 접선해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게 되는 설정이지요. 하지만 MDV와 헤르메스호의 거리가 너무 멀었던 데다 속도도 빨라 탐사대장 멜리사 루이스가 직접 선체 밖으로 나가서 마크 와트니를 손으로 구조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이 장면이 소설에서는 전혀 다르게 표현됩니다. 소설에서 마크 와트니를 직접 구조하는 사람은 멜리사 루이스가 아니라 다른 대원 크리스 베크입니다. 크리스 베크는 우주유영(EVA) 담당입니다. 크리스 베크는 작품 초반부에서 마크 와트니가 모래폭풍에 휩쓸린 상황을 가장 빠르게 판단하고는 ‘마크 와트니를 버리고 가야한다’고 냉정하게 주장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멜리사 루이스는 자신이 대장으로서 마크 와트니를 버리고 온 것이라고 한탄하다가 구조에 나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잠시 기억해 볼까요. 이 영화가 걸작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일부 비판을 받았습니다. 미국식 가치관이 구현된 영화라는 점, 즉 ‘쇼비니즘 영화’라는 지적이 있어습니다. 쇼비니즘 영화란 ‘위대한 국가의 가치’를 구현하려 계산됐거나 그렇게 해석될 가능성을 강하게 내포하는 영화를 뜻합니다.
‘마션’은 어떤가요.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 구조하는 주체가 크리스 베크에서 멜리사 루이스로 바뀌면서 ‘막내 대원을 살리기 위해 국가적 사명을 다하는 책임자로서의 탐사대장’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미 EVA 담당 대원이 있는 상황에서 멜리사 루이스가 선체 밖으로 나가 행동하는 건, 대장으로서 위험한 행동입니다.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해 대장이 표류하거나 마크 와트니와 함께 사망하기라도 하면 나머지 대원들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마션’의 옅은 쇼비니즘이 보이는 관객은 저뿐일까요.
영화 ‘마션’에는 원작 내용이 상당수 생략돼 있습니다. 마크 와트니가 사망했다고 판단해 우정공사가 그를 추모하는 우표를 발행합니다. 생존 사실이 알려지자 우표를 회수하지만 이미 수천 장이 판매된 뒤였습니다. 또 마크 와트니가 지구에 연락하기 위해 운송차량 로버를 타고 1996년식 통신기인 패스파인더를 찾아 800㎞를 이동할 때 플라스틱 밀폐 용기에 소변을 보고 이를 막사로 가져가 물 환원기에 넣어 재사용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로버에는 화장실이 없었고, 오물조차 생수로 바꾸면 생존에 필수적이었습니다. 영화 ‘마션’에도 원작에 나오지 않는 중요한 장면이 나옵니다. 지구로 돌아온 마크 와트니가 벤치에 앉아 새싹을 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영화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작 소설을 읽는다면 영화의 이해는 더 풍부해질 거라 확신합니다.
[김유태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