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언어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 시간, 아멜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무대 알자스 지방의 도시 스트라스부르엔 유럽의회가 있다. 지난 3월 13일 유럽의회에서 523 대 46, 압도적인 표 차이로 역사적인 법안이 통과된다. 바로 생성형 AI(인공지능)에 대한 규제를 포함한 세계 최초 인공지능법(EU AI ACT). 2021년 4월, 당시 EU 의장국이었던 프랑스가 발의한 이 법안은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AI가 가져올 새로운 세상에 대해, 규제의 기본 원칙을 정하고 관련 종사자의 의무를 규정하며 투명성을 제고하여, 인간 중심의 신뢰할 수 있는 AI 활용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AI 시스템을 위험 수준에 따라 금지(기본권 침해가 심한 경우), 고위험(기본권에 중대한 위험을 줄 수 있어 엄격하게 관리 필요), 범용(투명성을 가지고 적극 활용)으로 나누고, 단계별로 공급자, 수입자, 유통자, 배포자의 의무 사항을 차등 부과하여 규제와 촉진의 균형을 맞추었으며, 이러한 의무 이행을 관련 기업의 자발적 행동을 원칙으로 하는 미국의 행정 명령에서 나아가 국가가 관리 감독하도록 강제성을 부과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가 이를 주도한 배경에는 오픈AI, 구글, 메타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들의 압도적 영향으로부터 자국 문화와 소비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언어를 매개로 자율적 학습과 훈련을 통해 성장하는 생성형AI의 출현을 지켜보며, 영미권에 뒤처지고 있다는 프랑스의 절박한 불안이 읽힌다. 최근 프랑스의 천재 청년 3명이 창업한 AI 스타트업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역시나 알퐁스 도데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 미스트랄을 회사 이름에 사용한 미스트랄AI. 2023년 6월 창업해 설립 6개월 만에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오픈AI나 구글 Bard와는 달리 오픈소스로 프로그래밍되어 학습하는 정보의 수집 및 활용에 투명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AI 시스템 성장에 있어 프랑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프랑스인들이 가진 철학적 사고가 그것이다.
AI는 특정 분야를 다루는 Narrow AI와 일반적 활동을 다루는 General AI로 나뉜다. 두 분야는 각각 인간과의 수준을 비교하여 5단계로 나뉘는데, 숙련되지 않은 성인(1단계), 성인 상위 50%(2단계), 10%(3단계), 1%(4단계), 성인능력초월(5단계)이다. 이세돌 9단과 겨룬 알파고가 Narrow AI 4단계에 해당하고, Narrow AI에서는 이미 5단계에 이른 시스템이 다수 배출되었다. 한편 General AI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범용인공지능)라고 부르는데, Chat GPT는 숙련되지 않은 성인, 즉 1단계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가 막연히 두려워하는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단계는 아마도 5단계에 해당할 텐데, 아직은 공상과학소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5년 후 본격적인 AGI의 시대로 들어설 것이라 전망하는 것처럼 기술의 진보는 한치 앞을 예측하지 못하게 한다. 알파고를 상대한 이세돌처럼 AGI가 고도 단계에 이르렀을 때 누가 인간을 대표하여 인공지능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떠오른다. 20세기 구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학자로 꼽히는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 권력의 미시물리학으로 대표되는 그의 사상과 방법론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독보적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권력과 힘이 작용하는 구조로 파악하고, 역사 속에서 그러한 구조가 자리잡게 된 배경과 과정을 파헤치며, 광기·폭력·섹스와 같은 다루지 않은 주제를 철학적 사유의 영역으로 개척함으로써 사회 담론의 지평을 확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리고등사범학교 시절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비정상으로 분류되었던 그의 경험은 ‘정신병과 심리학’ ‘광기의 역사’로 저술되었으며, 스웨덴, 폴란드, 브라질에서의 경험은 명저 ‘말과 사물’의 동기를 부여하였고, 튀니지에서 학생운동을 하는 제자들을 도와주며 국가권력의 횡포에 관심을 가진 이후에는 ‘감시와 처벌’을 집필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스스로 속죄처럼 안고 살았던 동성애에 대한 고찰을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e)’ 4편으로 펴내며, 그동안의 성에 대한 사회 담론 자체를 다시 정의 내린다.
2차 대전 이후 전후 복구 과정에서 프랑스는 가계소비가 한 세대에 2.7배 증가할 만큼 성장하는 이른바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을 경험한다. 하지만 2차 대전의 영웅 샤를 드골이 이끈 이 소비자본주의 시대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인해 자유에 대한 갈망을 원하는 젊은 세대의 불만을 축적시킨다. 그리고, 1968년 5월 파리 근교 한 대학에서의 시위가 발단이 되어 두달간 프랑스 전역을 흔든 68혁명으로 발전하게 된다. 68혁명의 여파로 이듬해 드골 정권은 물러나고 프랑스식 사회주의가 본격 발전하게 된다. 푸코의 동시대를 반영한 사유와 고찰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68혁명 이후 가치관의 혼란을 겪던 프랑스인들의 숨통을 트여주며 개인의 가치관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의 초석이 된 것이다. 미셀 푸코 이외에도 사르트르,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와 같은 현대사회의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 많은 프랑스 철학자들이 있다. 미스트랄AI로 대표되는 프랑스 AI 기업들이 이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고와 그에 공감한 프랑스인들의 의식을 AGI에 프랑스식으로 학습, 훈련시키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 수업’ 아멜 선생님의 말처럼, 하나의 언어를 지키는 것이 문화적 다양성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AGI가 성장해가는 기술의 시대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푸코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부조리를 발견하고 질문을 던졌다. AGI는 5단계까지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AGI는 인간처럼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학습할 뿐이다. 인류는 AGI가 아닌 새롭게 태어날 또 다른 푸코에 의해 성장하리라 확신한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