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시장이 주춤해졌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위스키 수입액이 2억5957만달러로 전년 대비 2.7%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스키 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수입량을 살펴보면 코로나 첫해인 2020년 1만5923톤으로 2021년 약간의 감소세를 보이다 2022년 2만7038톤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다. 그리고 지난해 역시 3만586톤의 수치를 기록하며 13%가량 성장을 보여줬다.
프리미엄 위스키 시장에 집중됐던 관심이 위스키 전체 시장으로 번지면서 중저가 위스키의 수입량이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식지 않은 인기를 방증하듯 지난해 CU는 총 1200여 병, 1억7000만원 상당의 위스키를, 이마트는 4만여 병의 위스키를 특가 판매하는 오픈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도 했다.
시장의 큰손은 여전히 2030세대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하이볼은 위스키 시장이 여전히 뜨거울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이다. 하이볼은 본래 위스키와 소다를 혼합한 칵테일을 뜻한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서는 토닉워터, 진저에일 등 자신이 원하는 탄산 믹서에 시럽 등을 더해 취향껏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술로 통용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하이볼 관련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만 90만여 개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탄산으로 위스키의 도수를 낮추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한 잔이 2030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한 대형마트가 지난해 1~10월 매출을 분석한 결과 위스키가 전체 주류 매출의 13%를 차지하는 동시에 탄산 믹서 매출이 2019년 2.2%에서 2023년 8.8%로 성장하기도 했다. 주로 1인 가구를 형성하고 있는 소비세대에 알맞게 발렌타인, 제임슨, 잭다니엘 등은 소용량 위스키를 선보이기도 했고, 하이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RTD 하이볼이 대거 등장했다.
CU나 이마트24등 편의점에서 출시한 소다나 토닉에 시럽과 위스키 향을 첨가한 ‘하이볼형’ 음료로 스타트를 끊었고, 이후 짐빔 하이볼, 카발란 하이볼 등 실제 위스키를 넣은 하이볼들이 속속 출시되며 마트와 편의점 냉장고 하나를 하이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GS25는 하이볼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지정해 ‘유니크&멀티’를 하나의 상품 전개 전략으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각 상품만의 독특하고 깊이 있는 맛의 차별성을 가지되, 그 독특함과 구색을 다양하게 전개해 고객의 선택 폭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2030의 자발적 관심으로 위스키 시장이 달궈졌다면, 이 관심이 지속되고 증폭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위스키 브랜드의 임무가 아닐까. 하이볼이 ‘위스키=고가의 술’이라는 심리적 장벽을 낮춘 현재, 장르를 넘나드는 협업과 팝업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브랜드의 스토리와 무드를 녹여낸 공간 체험형 팝업이 전 세계적인 추세다. 지난해 10월 도어투성수에서 선보인 잭다니엘과 맥라렌의 팝업스토어가 대표적이다. 시그너처 칵테일 바, 칵테일 클래스, 보틀 각인 선비스, 맥라렌 한정판 굿즈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됐는데, F1 경기장 콘셉트로 위스키와 스포츠카 마니아를 동시에 공략했다. 각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팬층을 교류한 셈. 또 더 현대 서울 안에 미국 본토의 칵테일 바를 방문한 듯한 무드를 연출한 와일드터키 팝업, 영국 함선 안을 재현한 위스키 브랜드 커티삭 팝업 등 2023년 한 해 셀 수 없이 많은 팝업이 열렸다.
음식과 위스키의 만남도 필수적이다. 독립병입사 SMWS 코리아는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의 그린하우스에서 선보이는 팜투테이블 콘셉트의 5코스 런치와 SMWS 제품을 선별해 페어링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시가와의 페어링 등 다양한 페어링 이벤트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페어링을 넘어 위스키를 조리 과정에 접목하는 협업 사례도 있다. 메이커스 마크는 쉐이크쉑 청담과 협업해 버번 위스키와 베이컨, 양파를 오랫동안 졸여 버번 베이컨 쉑을 선보였다. 글렌피딕은 투썸플레이스와 협업해 위스키로 견과류와 건과일의 풍미를 끌어올린 슈톨렌과 여러 단으로 쌓아 올린 초콜릿 케이크의 가나슈 부분에 위스키를 넣어 고급스러운 맛으로 완성한 초콜릿 가나슈 케이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멈춰 있는 시장은 사양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현재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영역도 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거쳐 클래식이 될 수 있었던 것. 위스키 시장은 ‘주춤하다’ 혹은 ‘아니다, 여전히 뜨겁다’ 등 여러 시선이 존재하는 불안한 시장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칼자루는 위스키 브랜드들이 쥐고 있는 게 아닐까. 딱 하나의 자극이면 충분하다. 오늘 한잔하고 싶은 자극. 그건 가격이 될 수도, 맛이나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장새별 F&B 콘텐츠 디렉터
먹고, 주로 마시는 선천적 애주가. 미식 매거진에서 활동 후 현재는 스타앤비트를 설립해 F&B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든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