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이어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요? 루비나 에메랄드와 비교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지난 1월 7일, 스리랑카의 최대도시 콜롬보에서 개최된 국제 보석 박람회 ‘패싯 스리랑카(FACETS Sri Lanka)’의 알타프 이크발 회장이 인터뷰 도중 필자에게 한 말이다. 스리랑카 하면 많은 이들이 ‘실론티’를 떠올리겠지만 보석업계에서는 모름지기 사파이어의 고향이다. 사파이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보석 중 하나로 자리잡은 데는 영국 왕실의 공이 컸다. 2011년,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의 스리랑카산 사파이어 약혼반지가 케이트 미들턴의 손으로 공식 이동했을 때 전 세계 고품질 사파이어의 가격이 급등했을 정도다. 그날부로 스리랑카 탐험은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랐고 마침내 갑진년 새해 시작과 함께 광산부터 유통 현장까지 오감으로 체험한 스리랑카 버킷리스트를 실현할 수 있었다. 발, 눈, 귀, 손에 담아온 2024년 스리랑카 사파이어의 이모저모를 이 지면을 빌려서 공유한다.
과거 ‘실론(Ceylon)’으로 불리던 스리랑카는 2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파이어 생산지다. ‘인도양의 보석상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면적 대비 가장 많은 보석 광맥을 보유하고 있다. 전체 토지 면적의 25%에 보석 생산 잠재력이 있으니 가히 축복받은 땅이라고 부를 만 하다. 사파이어뿐 아니라 캣츠 아이, 투르말린, 문스톤, 쿼츠 등 75~80여 종의 유색 보석들이 나오는 현실판 보물섬이다. 스리랑카는 ‘Giant of the Orient(466캐럿)’ ‘Logan Blue(423캐럿)’ ‘Blue Bella of Asia(400캐럿)’ 등 최상급 자이언트 사파이어들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실론 사파이어’ 하면 으레 ‘고품질의 사파이어’로 통한다. 한때 이름을 날리던 카슈미르와 버마의 사파이어는 이제 시장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의 고품질 사파이어는 스리랑카와 마다가스카르에서 채굴되고 있다. 성경에서도 “그 투명함이 천체와 같다”고 묘사할 정도로 스리랑카 사파이어는 다른 산지에 비해 맑고 밝은 특징을 보인다.
사파이어의 또 다른 매력은 다채로운 색상이다. 청색 외에도 핑크, 옐로, 그린, 퍼플 등 무지갯빛 스펙트럼을 자랑하는데, 업계에서는 이들을 ‘팬시 컬러 사파이어’라고 부른다. 특히 핑크와 오렌지가 오묘하게 섞인 파파라차 사파이어는 희소성과 독특한 색상으로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블루 사파이어는 단일 보석으로 가장 다양한 색의 농담을 보이는데 명도와 채도에 따라 라이트 블루, 콘 플라워 블루, 피콕 블루, 로열 블루 등 통용되는 용어만 수십 가지다. 콜롬보에서 3대째 사파이어로 가업을 잇고 있는 쉐즈민 만수르는 “전 세계적으로 인텐스 콘플라워 블루와 로열 블루의 선호도가 높다. 하지만 2023년에는 핑크, 퍼플, 옐로, 오렌지까지 전반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고 전했다. 한편 오늘날 유통되는 사파이어의 95% 이상은 색상, 투명도 및 광택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열처리를 거친다. 선택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관행이지만 시장의 질서를 위해서 처리 여부는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 사파이어의 가격은 4C(색, 투명도, 컷, 캐럿) 외에도 각종 처리 여부, 모양, 특수효과, 유통 현황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에 스리랑카를 방문하면서 가장 놀란 점은 채굴 환경과 지속 가능성 수준이었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엄격한 규제와 까다로운 면허 발급이 시행되고 있었다. 스리랑카의 채굴은 90%가 비자동화 작업, 즉 간단한 도구와 기술을 사용하는 소규모 장인 광부들의 몫이다. 기계 작업은 오로지 수작업이 어려운 지역에서만 허용된다. 원석의 대다수가 농지에 위치해 있어 수로와 농작물의 피해를 막기 위해 최근에는 강에서의 작업이 금지되었다. 외국인은 지역 파트너와 협력하여 채굴 면허를 취득할 수 있지만, 면허의 수량과 연간 수출 할당량이 제한되어 있다.
스리랑카의 채굴 프로젝트는 토지 소유주, 채굴 면허 소지자, 그리고 채굴 작업과 장비를 제공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수익을 나누는 구조다. 내가 방문한 라트나푸라의 채굴 현장도 지역 주민들에 의해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명확한 공동체 의식이 느껴졌다. 광부들은 한 움큼의 사파이어를 찾기 위해 며칠에서 몇 주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희귀하고 아름다운 천연 자원 채굴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한편 지난 몇 년간 스리랑카에 닥친 연이은 악재로 사파이어 산업 또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팬데믹 기간에는 숙련된 노동력 부족과 낡은 장비로 채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산량이 현저히 감소했다. 설상가상으로 2022년에는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아 전례 없는 물가 상승과 통화가치 하락으로 채굴 비용이 급증해 원석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에 정부는 전기 배급제를 도입하고 세금을 2배로 인상하는 등 재정 강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 국제통화기금의 금융지원으로 경제도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이다. 현재는 외국 바이어들의 방문이 재개되었고 보석 수출도 정상화되고 있다. 완전한 극복에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이날 필자가 찾은 라트나푸라의 보석 시장에서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스리랑카의 사파이어 시장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패싯 스리랑카’와 ‘스리랑카 보석&주얼리 협회(SLGJA)’ 회장인 알타프 이크발(Altaf Iqbal)을 콜롬보에서 직접 만났다.
Q. 패싯 스리랑카는 어떤 행사인가.
매년 콜롬보에서 개최되는 국제 보석&주얼리 전시회로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가장 유명한 블루 사파이어를 비롯한 다채로운 유색보석을 소개하고 산업의 혁신과 트렌드를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Q. 스리랑카 사파이어의 주요 시장과 동향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이 가장 큰 시장이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이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양상이 변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중간 품질 사파이어의 수요가 가장 높은 시장이다. 최상급의 비가열 사파이어도 유럽에서 중국 시장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수요 증가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은 마다가스카르로 수입처를 다각화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중저 품질의 규격화된 스톤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으며, 인도 역시 사파이어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열처리된 스톤과 로열 블루 컬러의 수요가 높다. 전반적으로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의 침체와 컬러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영향으로 사파이어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긴축재정이 사실상 종료됐다는 전망이 커짐에 따라 고품질 사파이어에 대한 투자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Q. 이슈가 되고 있는 사파이어 처리법에 대해 조언한다면.
지난 수십 년간 사파이어는 새로운 산지 개발과 맞물려 처리법 또한 대거 발전했다. 사실 일반적인 열처리는 채굴된 사파이어를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만들고 다양한 가격대로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단, 납유리 함침과 디퓨전 처리 등은 내구성이나 안전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패싯 스리랑카에서는 열처리를 제외한 처리석 및 합성석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인 원산지의 이미지를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다. 모든 변수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구입 시 공신력 있는 감정원의 리포트를 발급받을 것을 권장한다.
Q. 감정원의 원산지 감별은 얼마나 정확한가.
사파이어의 원산지는 마케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감정원마다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시중에서 카슈미르나 버마산으로 유통되는 사파이어의 일부가 스리랑카산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믿을 수 있는 업체와 거래하는 것이 중요하며, 원산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보다 색상과 품질 위주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