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주얼리는 ‘클래식 아이템에 현대적인 아이디어를 더한 진보와 창조’로 정의할 수 있다. 주얼리 트렌드는 해가 바뀐다고 급격하게 전환되는 것은 아니므로 2024년에도 유사한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믹스&매치와 레이어링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링크 체인과 다양한 젬스톤 컬러의 조합 그리고 각종 심볼 모티프가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24년의 색으로 선정된 ‘피치퍼즈’를 비롯해서 따뜻한 톤의 주얼리가 더욱 부각되고, 진주 역시 계속해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2024년을 관통할 6가지 주얼리 트렌드를 소개한다.
2023년은 주얼리 카테고리 전반에서 생기 넘치는 컬러스톤이 빛을 발한해였다. 특히 따뜻한 톤의 보석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미국의 색채연구회사 팬톤은 2024년의 대표 컬러로 ‘피치퍼즈(Peach Fuzz)’를 선정했다. 이 부드럽고 온화한 살구 색상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도 여성들의 마음을 로맨틱하게 달래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모거나이트, 핑크·오렌지 투르말린, 임페리얼 토파즈, 파파라차 사파이어, 만다린 가넷, 엔젤 스킨 산호와 같은 부드럽고 온화한 계열의 보석들이 더욱 주목받을 전망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동안 우리는 별자리, 하트, 네잎클로버, 십자가, 이니셜 등 다양한 심벌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목도했다. 사람들은 어려운 시기에 다양한 상징물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와 안정을 찾는 경향이 있다. 긍정의 메시지와 깊게 연관된 탄생석과 각종 심벌들이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다. 지난여름에는 헤일리 비버가 자신과 남편의 이니셜인 ‘B’ 목걸이를 착용한 이후 알파벳 목걸이의 인기가 급증했다. 알파벳 목걸이는 심플하면서도 다양한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유용한 아이템이다. 2024년에도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예상되지만, 다양한 심벌 주얼리가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과 힘을 주기를 기대한다. 작고 심플한 이니셜 펜던트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스타일에 독특한 개성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가의 하이 주얼리는 보통 소셜미디어의 유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품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23년을 강타한 ‘조용한 럭셔리’ 트렌드는 패션 브랜드 부터 럭셔리 주얼리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2024년에는 조용한 럭셔리와 결을 같이하는 ‘리치 맘 스타일’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세련된 셀러브리티 맘에서 영감을 받은 절제된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콘셉트인데, 주얼리에서는 주로 건축적인 디자인과 심플한 보석의 배치를 특징으로 한다. 물론 뒤에 숨은 고급 기술과 장인정신의 디테일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과시하지 않는 세련된 취향과 세심함에 대한 수요는 2024년에도 꾸준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용한 럭셔리와는 정반대로 눈길을 사로잡는 주얼리 또한 하이 주얼리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하이 주얼리의 세계에서는 독창성과 혁신이 예술성을 표현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간주된다. 2023년에 선보인 구찌의 ‘알레고리아’ 컬렉션과 부쉐론의 ‘모어 이즈 모어’ 컬렉션, 그리고 포멜라토의 ‘오드 투 밀란’ 컬렉션은 소재나 디자인의 변주를 통해 전통적인 하이 주얼리의 경계를 확장했다. 이처럼 보석의 다양한 커팅, 비전형적인 소재와 세팅 방식에 도전하는 독창적인 시각과 기술력은 미래지향적인 럭셔리의 가치를 이해하는 진보적인 소비자들을 위한 발 빠른 대응으로 해석된다. 이는 또한 아트와 하이 주얼리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추세를 반영한다. 아트의 창조적인 영역과 하이 주얼리의 섬세한 기술이 상호 교감하여 특별한 주얼리를 창출하는 브랜드들이 럭셔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진주의 매력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매년 쿨하고 시크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진주는 2024년에도 4대 보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더욱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낼 전망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주얼리와 패션 업계에서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진주는 이제 펑키한 체인과 결합하거나 크고 선명한 컬러스톤과 매칭하는 등 초커, 팔찌, 브로치를 오가며 21세기 스타일로 진화 중이다. 차분하고 우아한 진주에 현대적이고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는 이러한 동향은 2024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이아몬드가 눈부신 광채로 스스로 주인공이 된다면, 진주는 착용자를 은은하게 빛내면서 주인공으로만 들어주는 훌륭한 조력자다.
2023년은 영원한 패션 아이템인 체인이 하이 주얼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해로 기록되었다. 쇼메, 부쉐론, 포멜라토, 반클리프아펠, 루이비통 등의 럭셔리 주얼리들은 링크 체인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기술과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팝아트에서 영감을 얻었고, 컬러스톤으로 무장했으며, 다양한 변주를 통해 혁신적인 변화를 모색한 결과 동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으로 거듭났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체인이 180도 다른 차원으로 승화되는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2024년에도 독특한 실루엣이나 컬러스톤이 화려하게 장식된 디자인 등 체인 그 이상의 존재감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과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