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 바그너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전막이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랐다. 이 오페라는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최대 역작으로 그가 추구한 무대예술의 이상이 구현된 작품이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약 30년의 세월을 소요했는데, 먼저 고대 북유럽 설화 ‘에다(Edda)’와 중세 독일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 등을 바탕으로 유장하고 심오한 대본을 직접 썼고, ‘무한선율’과 ‘라이트모티프’를 비롯하여 그때까지 축적해온 모든 기법을 망라하여 음악을 붙였다.
<니벨룽의 반지>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이 장대한 작품이다. 이 대작은 모두 네 편의 ‘악극(Musikdrama, 바그너식 오페라)’으로 구성되는데, 전체 상연시간이 15~16시간에 이르기에 통상 나흘에 걸쳐 상연된다. 첫 작품이 <라인의 황금>이고, 그 다음에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이 차례로 이어진다. 이들 4부작의 유기적 결합체를 통해서 바그너는 이 세상과 인생을 움직이는 원리를 집약해놓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보이고자 했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 플롯의 중심에 놓인 것은 인간의 욕망이 지향하는 두 궁극적 대상인 ‘권력’과 ‘사랑’이었다.
한편 <니벨룽의 반지> 전막이 국내에서 상연된 것은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프로덕션을 수입했던 2005년의 한국 초연(세종문화회관) 이후 17년 만이었다. 이번 공연은 ‘제1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DIOF)’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동안 유럽 유수의 오페라 극장들과 꾸준히 협업해온 대구오페라하우스 측은 이번에 245년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 프로덕션을 섭외했다. 만하임 팀은 지난 7월 현지에서 초연한 신작을 통째로 들고 왔는데, 극장 소속 가수들과 합창단, 오케스트라 등 출연진과 제작진 220여 명이 대구를 찾았다. 만하임 극장은 오랫동안 ‘바그너 성지’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가수들과 악단원들을 공급하는 ‘발전소’ 역할을 해왔고, 이번 프로덕션은 우리나라 출신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한 만하임 극장 상임연출가 요나 김이 무대 연출을 맡았기에 남다른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지난 10월 16일에서 23일 사이에 진행된 이번 공연은 당초 기대를 상회한 성공작이었다. 영국 출신으로 만하임 극장의 음악감독인 알렉산더 소디가 주도면밀한 지휘로 공연 전반을 조율했고, 견실한 기량을 갖춘 만하임 오케스트라가 그의 지시에 순응하며 무대의 배후를 든든히 뒷받침했다. 그 위에서 여주인공 브륀힐데 역의 다라 홉스, 신들의 우두머리 보탄 역에 레나투스 메사르, 사악한 난장이 알베리히 역에 요아힘 골츠 등 뛰어난 주역 가수들이 전율과 감동의 열연을 펼쳤다.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다채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도드라진 요나 김의 무대 연출도 돋보였다.
<니벨룽의 반지> 속 사건들은 소유하는 자가 절대적인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다고 알려진 ‘반지’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문제의 반지는 니벨룽족인 알베리히가 대자연의 영물인 ‘라인의 황금’을 탈취하여 만들었는데, 알베리히는 그 반지를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가진 주신 보탄에게 강탈당하고, 보탄은 그것을 다시 ‘발할라 성’을 축조해준 거인 형제에게 사례비로 넘긴다. 그 직후 거인 형제 사이에서 반지를 독점하기 위한 다툼이 일어나고, 동생 파프너가 형 파졸트를 죽이고 그 반지를 지키기 위해 용으로 변신해 깊은 숲속 동굴에 은신한다. 이후 반지를 되찾기 위한 보탄과 알베리히의 계획과 음모가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보탄이 인간세계에 내려와 낳은 자식들인 지크문트와 지클린데가 희생당하고, ‘발퀴레(전쟁의 여신)’이자 보탄이 가장 아끼는 딸인 브륀힐데는 그 남매를 도와준 죄로 깊은 잠에 빠지는 벌을 받는다. 세월이 흐르고 비운의 남매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 ‘지크프리트’가 용(파프너)를 처치하고 반지를 손에 넣은 다음, 잠들어 있던 브륀힐데를 깨워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알베리히의 아들 하겐의 계략에 휘말려 브륀힐데를 배신하고, 결국 하겐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는다. <신들의 황혼> 마지막 장면에서 자초지종을 모두 알게 된 브륀힐데는 반지를 라인강에 던지고 애마 그라네와 함께 남편을 화장하는 불 속으로 뛰어든다. 그 불길은 거대하게 치솟아 신들의 거처인 발할라성까지 번지고, 반지는 수호요정인 ‘라인의 처녀들’에게 돌아간다.
‘반지를 버려라!’ 이번 공연 전막을 관람한 필자의 뇌리에 ‘브륀힐데의 희생’으로 일컬어지는 마지막 장면의 메시지가 맴돌았다. 그리고 ‘이 시대의 반지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뒤따랐다. 그것은 혹시 우리 사회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증오’와 ‘편가르기’는 아닐까? 브륀힐데가 그 모든 비극과 희생을 정리하기 위해 반지를 던졌듯이, 우리도 우리 내면의 ‘반지’를 버려야 할 때다.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