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제59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사용법… 놓쳐선 안 될 전시, 어디부터 가야 하지?
입력 : 2022.06.30 16:09:35
수정 : 2022.06.30 16:16:56
베네치아, 모두가 ‘추앙’하는 여행지이다.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은데, 맛있는 것까지 즐비하다. 게다가 비엔날레가 열리는 베네치아에서 현대미술의 마니아라면 그 발길은 빛의 속도로 달려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여행자로서 그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유롭게 베네치아와 비엔날레를 동시에 즐기려면 적어도 2주는, 오롯이 비엔날레만 잡으면 그래도 4박 5일에서 5박 6일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영국 출신의 조각가 토니 크랙(1949년~ )의 유리작품 전시는 유리공예의 성지 무라노섬 유리박물관에서, 카펫과 근대가구 등을 다루는 디자인 전시는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의 개인공항(Giovanni Nicelli Airport)에서 열려, 관람객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안젤름 키퍼 두칼레 궁전 전시.
▶수상작가와 아쉽게 수상을 놓친 작가
제아무리 많은 전시가 열리고 갈 곳도 볼 곳도 많지만 역시 비엔날레를 보러 왔다면 국가관이 모여있는 카스텔로 공원과 이 외의 국가관과 특별전이 이어지는 아르세날은 건너뛸 수 없는 장소다. 19세기 초 베네치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첫 삽을 뜬 공원에 1895년 처음 비엔날레가 열린 이후 1907년 특별전이 열리는 이탈리아관, 지금의 중앙관이 건립되고 1995년 개관한 한국관까지 30개의 국가관이 있다. 이들 국가관은 외피는 문화예술로 포장하고 있지만 국력과 자국의 예술을 통해 무언가, 누군가를 압도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모두 평등하다고 하지만 국가관이 있는 국가와 아닌 국가, 그리고 국가관의 넓이·크기에 따라 전시효과가 달라지므로 국가관의 차이는 마치 유엔의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 가진 비토권처럼 막강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많은 작품을 봐야 하는지라 시간이 지나면 지쳐서 건성으로 지나치기 쉽다. 따라서 목표를 정해 보물찾기하듯 작품을 찾아보는 것은 비엔날레를 쉽고 재미있게 기억하며 보는 방법이다. 많은 언론이 눈여겨볼 만한 국가관을 지목했지만, 대개가 흔히 말하는 힘센 국가들의 국가관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작가를 중심으로 돌아보기로 하자.
상은 국가관과 본전시로 나누어 시상하는데 이번에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소니아 보이스(1962년~ )의 영국관이, 특별언급상은 지네브 세디라(1963년~ )의 프랑스관과 처음 참가한 아카예 케루넨과 콜린 세카주고의 우간다관이 차지했다. 본전시 즉 ‘꿈의 우유(Milk of Dreams)’전의 황금사자상은 시몬 리(1967년~ )가, 은사자상은 레바논 출신의 알리 슈리(1976년~ ), 특별언급상은 미국의 린 허시먼 리슨(1941년~ )과 캐나다의 이누이트족인 슈비나이 아슈나(1961년~ )에게 돌아갔다.
영국관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인 소니아 보이스는 ‘필링 허 웨이(Feeling Her Way)’라는 작품으로 영국에 첫 국가관 상을 안겨주었다. 소니아는 음악사에서 잊힌 탁월한 5인의 흑인여성재즈, 솔 음악가들을 불러내 6개의 방으로 나누고 처음에는 즉흥적으로 아카펠라를, 그리고 협력을 통해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는 협동의 잠재력을 음악과 영상을 통해 보여주었다. 국가관 특별언급상의 지네브 세디라는 알제리 출신으로 첫 프랑스관 유색인종 작가로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다. ‘기억의 관리자’를 자처하는 그는 알제리 독립 60주년을 맞아 한때 금지되었던 모국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다룬 영화를 재구성한 세트장을 통해 조국을 떠난 이방인들의 공동체와 서구를 초월한 영화의 복잡한 역사를 재조명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참가한 우간다 국가관의 지네브는 사진과 영상으로 인간과 지역의 관계를 다루는 작업을 해왔다. 폐품으로 구성된 콜라주 작품을 출품한 우간다의 콜린 세카주고와 지역의 여성 공예가들과 협업을 통해 설치작업을 하는 아카예 케루엔은 고유의 창의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강한 확신을 보여준다. 우간다관은 자르디니아나 아르세날이 아닌 시내 팔룸보 포사티궁에 있다. 이곳은 2007년 이우환의 개인전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관의 김윤철(1970년~ )의 작업은 매우 경이롭고 신비하다. 과학과 기술이 예술로 승화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작업은 많은 이의 입에 올랐지만, 전체적인 이번 비엔날레의 주조와 거리가 있는 내용이라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아카예 케루넨, 콜린 세카주고의 우간다 국가관.
본전시의 황금사자상 작가상을 수상한 시몬 리는 역시 미국관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이기도 하다. 흑인여성의 정체성과 17~18세기 아프리카 근대건축 양식인 바탐말리바(Batammaliba) 건축 이념을 빌려 이들의 전통적 우주론, 종교, 관습, 의례와 일상의 모습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은사자상의 알리 슈리는 다채널 비디오 속 나일강의 메로위 댐 건설현장을 통해 나일강의 범람에 관한 이집트 신화, 골렘의 유대인 전설, 노아의 방주 등을 연결해 신화에 등장하는 타자를 보여준다. 린 허시먼 리슨은 소비주의 시대의 정체성, 감시와 개인의 사생활, 인간과 기계의 인터페이스, 현실과 가상세계의 관계를 다루어 왔는데 이번에는 AI로 만든 진짜 같은 가상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이누이트족인 슈비나이 아슈나는 캐나다 북부의 고향 풍경과 주인이 아닌 이방이 되어버린 현대 이누이트족의 생활을 섬세하게 묘사한 펜과 연필 드로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속 인간들은 가정적이며 일상적이다. 초현실적인 그의 세계는 영적, 우주적, 환상적 힘으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꾀한다.
개인적으로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전통놀이를 채집한 벨기에관의 프랑시스 알리스(1959년~ )의 작품이 내내 머릿속에 남았다. 본전시의 이미래(1988년~ )와 정금향(1980년~ )은 아르세날에 전시되어있다. 카스텔로 공원과 아르세날 중간에 이건용(Palazzo Caboto)이 트레이드마크인 ‘신체풍경’을 갖고 기다린다.
▶놓쳐선 안 될 전시회
시내 곳곳을 돌아보려면 먼저 베네치아 지도를 구해 지역별로 동선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좁은 베네치아에 미로에서 길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6개의 구로 구분되는데 이를 기준으로 필자의 관점에서 볼 만한 전시를 표로 정리해보면 위와 같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어슬렁거리다 보면 뜻밖의 장소에서 취향에 맞는 전시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베네치아 비엔날레다.
국제근대미술관인 카 페사로(Ca’Pesaro)의 상설전시와 동양미술관도 볼 만하다. 조금 더 발품을 팔아 ‘산 로코 대신도 회당’에 가면 베네치아의 화가 틴토레토(1519~1594년)가 약 25년간 그린 56점의 천장화와 벽화가 가득한 장관을 만날 수 있다. 페기 구겐하임의 ‘초현실주의와 마술: 마법에 걸린 모더니티(Surrealism and Magic: Enchanted Modernity)’전은 필수다. 이곳의 상설전시도, 앞뒤 마당의 조각 작품도 빼놓으면 베네치아에 한 번 더 갈 준비를 해야 한다. 두칼레 궁전의 안젤름 키퍼(1945년~ )의 전시는 초대형 작품이 궁전의 33점의 천장화와 결합해 장관을 연출한다. 1577년 화재로 전소된 뒤 더 화려하게 재건된 것을 주제로 파괴와 창조, 삶과 죽음을 순환을 보여준다. 산 조르조 마조레섬은 성당과 종탑이 유명하다. 성당에는 나폴레옹이 약탈해간 파올로 베로네세(1528~1588년)의 ‘가나의 결혼식’(1563년)이 있던 곳이다.
케힌데 와일리 전시.
▶베네치아의 모더니즘 건축?
사실 베네치아 하면 다들 전통과 역사를 떠올리지만 자르디니아의 국가관 중 오스트리아관은 요제프 호프만(1870~1956년)이 설계했고, 네덜란드관은 리트벨트(1888~1964년)의 작품이다. 또 핀란드관도 알바 알토(1898~1976년)의 작품으로 단순명료한 사다리꼴 평면이 그의 건축 철학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1958년 완성한 베네수엘라관은 이탈리아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베네치아 출신의 카를로 스카르파(1906~1978년)의 작품이다. 폰타나와 곰리의 전시가 열리는 올리베티 전시장과 박서보와 노구치, 단보의 3인전이 열리는 스탐팔리아미술관, 이곳의 물의 정원과 입방체로 재구조화된 건축은 모더니즘이란 이런 것이란 결론을 보여준다. 이후 1994년 마리오 보타(1943년~ )가 다시 재구조화해 전통적인 외관을 유지하면서 내부는 새로운 공간으로 겉과 속이 다른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코레르미술관과 꿈의 우유전이 열리는 중앙관 내부 조각정원도 그의 작품이다.
푼타 델라 도가나, 팔라조 글라시, 225석을 갖춘 테아트리노 글라시는 안도 타다오(1941년~ )의 작품이다. 로마광장에서 베네치아로 들어가려면 필히 건너야 하는 산티아고 칼라트라바(1951년~ )의 ‘구조적 다리’도 유려한 선을 뽐낸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사후에 묻히는 산 미켈레 묘지는 치퍼필드의 손길이 닿아 있다. 루이즈 네벨슨의 전시가 열리는 장소도 그가 5년간 재구조화해서 이번에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문을 연 곳이다.
‘초현실주의와 마술’ 전시 전경.
생뚱맞지만 베네치아에서 현대건축의 백미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렘 쿨하스(1944년~ )의 폰다코 데이 테데스키는 현재 DFS백화점이 입점해있다. 넓은 중정을 중심으로 내부의 건축미가 매우 아름답다. 덤으로 옥상을 전망대로 개방하고 있는데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아르세날에 있는 포르타 누오바 타워도 밖에서 보면 쇠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패션쇼 등이 개최되는 빼어난 문화공간이다.
대개의 전시는 비엔날레가 끝나는 11월 27일까지 열리지만 페기 구겐하임 등 몇몇 전시는 여름이나 초가을에 종료된다. 표를 통해 전시일정과 휴관일을 확인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비엔날레는 오후 7시에 폐관하지만, 9월 27일 이후에는 오후 6시에 문을 닫고, 월요일은 휴관한다. 7월 25일, 8월 15일, 9월 5일과 19일, 10월 31일과 11월 21일에는 월요일에도 문을 연다.
베네치아로 떠날 계획이라면 다음 준비할 것은 튼튼하고 편안한 운동화다. 베네치아의 맛집은 필자의 입맛에 맞는다는 의미일 터, 그래서 생략한다. 다만 돌아다니다 보면 공복은 아니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진다.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작가들의 복권은 이루어진 것 같지만 대개의 유색인종 작가들이 자국보다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나거나 자란 이들이란 점이 아쉽다. 더 아쉬운 것은 이번 비엔날레에서 동양과 아시아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