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못 한다. 얼마 전 운전하면서 아내와 함께 수다 떨다가 고속도로 출구를 놓쳐서 당황한 적이 있다. 회의 도중에 자료를 읽다가 맥락을 잃어버리고 헤맨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나, 대화하면서 문자도 보내는 이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
한번은 지인이 전화해 나한테 화를 낸 적도 있다. 카톡을 보냈는데 왜 빨리 답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문자나 카톡을 틈날 때 모아서 읽고 처리한다. 알림 버튼도 일부러 꺼두었다. 일하는 리듬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일을 차례로 할 수는 있어도 동시에 일을 잘하는 사람은 못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함께 인류는 저절로 멀티태스킹 수행자로 변했다. 우리는 업무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동시에 소셜미디어에 댓글도 달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쇼핑도 즐긴다. 때때로 어떤 이들은 동시에 화면을 여러 개 띄워 놓고 모든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기도 한다.
여러 작업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때그때 집중력을 잃지 않는 사람을 보면 경탄스럽다. 한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전환할 때마다 상당한 몰입 시간이 필요한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꿈꾸기 어려운 일이다. 데이비드 바드르 미국 브라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해나무)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은 일반적으로 효과와 능률을 끌어내리는 나쁜 방식이다. 사람들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효율이 높아진다고 흔히 착각한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의 실제 효율은 무척 낮다.
바드르는 간단한 예를 들어 이 사실을 설명한다. 알파벳을 큰 소리로 빠르게 읊는 일은 어렵지 않다. 숫자를 1부터 26까지 세는 것도 쉬운 일이다. 둘을 번갈아 하면 어떨까? A-1, B-2, C-3…… 이런 식으로 말이다. 끝까지 해내는 사람도 드물지만,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정신적으로 힘도 더 든다. 멀티태스킹 작업 대부분은 이보다 훨씬 수행이 어렵다.
제이슨 왓슨과 데이비드 스트레이어 유타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멀티태스킹 능력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운전하면서 과제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살펴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멀티태스킹을 한 학생의 97.5퍼센트가 성적이 하락했다. 멀티태스킹은 막대한 인지적 비용을 요구하는 행위였다. 수업이나 숙제 중 멀티태스킹을 하는 학생들은 공부 시간이 더 길고 성적은 더 낮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본래 같은 환경에서 여러 과제를 동시에 잘 수행하지 못한다. 우리 뇌는 두 가지를 병행해서 처리하는 능력이 없다. 둘 이상의 과제를 동시에 한다고 착각할 때, 사실 한 과제씩 번갈아 행하는 경우가 더 많다. 네덜란드 심리학자 닐스 타겐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을 할 때 반드시 일어나는 병목 현상 탓이다. 요리사는 멀티태스킹의 예술가처럼 보인다. 오븐을 예열하는 동안 양파를 썰거나, 물을 끓이는 동안 토마토소스를 만든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계나 보조 요리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의 신체는 당근을 썰거나 양파를 볶아야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다.
우리 눈은 한 번에 하나만 볼 수 있고, 손발은 두 가지 일을 함께 못 한다. 게다가 우리 뇌는 특정한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정보는 무시한다. 다른 신호가 끼어들 때, 곧바로 인지적 노력을 기울여 기존 정보 흐름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정보 흐름으로 갈아탄다. 일이 중복될 때마다 우리 뇌는 이 일과 저 일을 선택하는 혼란에 빠진다. 산만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산업혁명 이후, 우리의 작업 환경은 멀티태스킹을 요구해 왔다. 특히, 사무실 작업자는 한 공간에서 업무도 하고, 손님도 만나고, 회의도 여는 등 다양한 역할과 과제를 행한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기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은 더욱더 흔해지고 있다. 2013년 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운전 중에는 55%, 연인과 저녁 식사 중엔 35%, 아이 학교 행사 중엔 32%, 예배 중엔 20%에 달했다. 심지어 샤워 중 사용자도 12%였다. 스마트폰 중독이 심해진 현재는 수치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게다가 스마트폰에는 푸시, 배지, 경보 같은 알림 기능이 들어 있다. 하나의 일을 하는 도중에 예고 없이 다른 과제들이 치고 들어와서 우리를 유혹하고 방해하면서 관심을 가로챈다. 가만히 있으면 한시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환경이다. 산만한 환경에서도 일은 제대로 해야 하므로, 하루가 지나면 우리 정신은 녹초가 된다.
바드르는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둘러싸여 자란 Z세대라고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멀티태스킹에 무능력한 것은 나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 오히려 멀티태스킹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은 다량의 업무를 처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관계도 관리해야 하는 40대 이상이다. 이들 대부분은 넘치는 과제에 무척 괴로워했다. 업무 환경상 불가피하면, 멀티태스킹을 약간이라도 잘하는 방법이 있을까.
먼저, 타고나길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사람들도 있다. 왓슨의 실험에서 학생의 2.5%는 ‘슈퍼태스커’였다. 이들은 운전 중 과제를 각각 수행할 때도, 같이 수행할 때도 성적이 좋았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다른 형태의 멀티태스킹에는 약했다. 특정 멀티태스킹이라면 몰라도 모든 형태의 멀티태스킹에 능숙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수의 슈퍼태스커가 그 일을 잘하는 영역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확률은 급격히 높아진다.
슈퍼태스커가 아닌 대다수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을 전환할 때마다 생기는 인지적 병목 현상을 줄여주면 된다. 바드르에 따르면, 작업을 하나하나를 충분히 숙달한 후 교대로 하는 훈련을 반복 진행하면 뇌 속의 인지 조절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멀티태스킹을 더 익숙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여전히 너무나 어렵다. 다른 방법도 있다.
미국 작가 유진 오닐은 탁월한 ‘다중 작업자’였다. <밤으로의 긴 여로>로 유명한 그는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받고,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평생 그는 두 편 이상의 희곡을 동시에 써나갔다. 작품을 쓰는 일은 짧아도 몇 달 동안 몰입과 집중을 요구한다. 때로 기간이 몇 년으로 늘어날 때도 있다. 인물도, 배경도, 사건도 다른 작품을 두 편 이상 같이 쓰면서 높은 질을 유지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작업실에 비밀이 있었다. 오닐은 멀리 떨어진 책상 두 개를 사용했다. 서로 마주 보는 두 책상에는 각기 다른 사진, 자잘한 장신구 등이 놓여 있었다. 책상에 앉으면 작업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오닐은 책상마다 한 작품씩 배정한 후, 작업을 뒤섞지 않았다. 이처럼 다른 작업을 할 때마다 다른 환경 속으로 뛰어들면 멀티태스킹에 드는 인지적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인간은 본래 한 번에 여러 작업을 잘하기 힘든 존재다. 업무 성과를 높이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멀티태스킹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면, 작업할 때마다 다른 환경을 부여하는 게 좋다. 구글 같은 회사들이 직원에게 붙박이 책상 말고도 사내에 다양한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청년들은 어쩌면 멀티태스킹 시대에 지혜롭게 적응 중인 듯하다. 그들이 카페를 옮겨 다니면서 일하는 것은 멀티태스킹 시대에 일 잘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했기 때문일 수 있다. 직원들을 사무실에 억지로 매어두지 않고 원할 때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도 업무 성과를 올리는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