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원의 클래식 포레스트] 새삼 주목받는 구소련 출신 음악가들… 우크라이나 연주가들의 과거와 현재
입력 : 2022.04.28 17:27:40
수정 : 2022.04.29 17:26:20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음악가’들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러시아 내지 구소련 음악가로 알려졌던 인물들 중 상당수가 우크라이나 태생이라는 사실이 재인식되고 있으며, 현존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음악가들의 활동상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와 소련을 대표했던 거장들
우선 가장 크게 부각된 인물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역사상 최고의 비르투오소 중 한 명으로 추앙되는 그는 1903년, 당시 러시아 제국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와 절친했던 동갑내기 친구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나탄 밀스타인은 남부의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 공히 과거에는 ‘러시아 출신의 거장’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정정해야 할 판이다. 그래도 이 두 사람은 서방으로 망명한 경우이니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제부터 거론할 연주가들은 얼마 전까지 ‘옛 소련을 대표하는 러시아의 거장’으로 일컬어져 왔으니 문제가 좀 더 복잡해진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사진 위키피디아.
먼저 과거 소련 피아노계의 양대 산맥으로 통했던 동년배의 두 거장,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와 에밀 길렐스가 있다. 폭넓은 레퍼토리와 압도적인 연주력을 자랑했던 리흐테르는 1915년 지토미르에서 태어나 오데사에서 성장했고, ‘강철 타건’이라는 별명을 가진 위대한 베토벤 해석가 길렐스는 1916년 오데사 출신이다. 다음은 소련 바이올린계의 선후배,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레오니드 코간이다. 비올라를 연상시키는 농후한 음색과 풍부하고 따뜻한 표현, 훌륭한 성품으로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킹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1908년 오데사 출신이고, 냉철한 해석과 엄정하고 강렬한 표현으로 그와 쌍벽을 이루었던 코간은 1924년 동부의 드니프로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성장했다. 이쯤 되면 우크라이나 출신들 없이는 소련 음악계의 한 축이 허물어질 지경이라고 할 만하다.
시야를 좀 넓혀 보면, 극히 개성적인 연주 스타일과 기행으로 숱한 에피소드를 남긴 전설적인 명인 블라디미르 드 파흐만,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연주 스타일로 유명했고 ‘라흐마니노프의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던 베노 모이세비치, 1924년 파리에서 역사상 최초로 쇼팽의 모든 작품을 연주하는 리사이틀 시리즈를 감행했던 알렉산더 브라일로프스키, 미국에서 성장하여 완벽한 테크닉과 노래하는 톤으로 낭만주의 음악을 빼어나게 해석했던 슈라 체르카스키 등의 피아니스트들, 고혹적인 ‘엘만 톤’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미샤 엘만, 다비드의 아들로 역시 거장이었던 이고르 오이스트라흐와 같은 바이올리니스트들, 니콜라이 말코, 알렉산드르 가우크, 야샤 호렌슈타인 등 지휘의 거장들도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이제부터는 현역 연주가들을 살펴보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최초의 여성 지휘자
이번 사태의 와중에 가장 돋보이는 우크라이나 연주가는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Oksana Liniv)이다. 1978년 우크라이나 서부의 소도시 브로디(Brody)에서 태어난 리니우가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고국의 오데사 오페라에서 보직을 맡았고,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극장에서 키릴 페트렌코(현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의 조수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으며, 오스트리아 그라츠 오페라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작년 여름 이전까지 그는 ‘차세대 유망주’ 정도였다.
하지만 2021년 7월 25일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개막공연을 지휘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무엇보다 그는 ‘바그너의 성지’로 유명한 막강 권위의 음악제가 145년 역사상 최초로 포디엄을 허락한 여성 지휘자로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일련의 공연들에서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성공적으로 지휘하면서 이 시대의 가장 주목받는 여성 지휘자, 나아가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꼽히게 되었다.
리니우는 바이로이트의 여세를 몰아 올해 초 이탈리아의 명문인 볼로냐 시립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역시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 역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이다. 그런데 그 직후 전쟁이 터졌고, 현재 그는 SNS 계정과 각종 매체 인터뷰를 통해서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알리고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특히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앞으로 공개서한을 냈는데, 그 편지는 비단 푸틴뿐 아니라 모든 침묵하는 러시아인들에 대한 호소를 담고 있었다.
또한 그는 우크라이나의 젊은 음악가들의 대피와 보호에도 발 벗고 나섰는데, 그중에는 그가 고국에서 창단한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단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그 청소년들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새겨 들어둘 만하다.
“음악은 전쟁 전의 좋은 과거를 이어주는 마지막 실이며, 평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현재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음악은 언어이기도 합니다. 우리와 우크라이나는 아직 살아 있고, 음악은 폭탄이나 기관총보다 더 크고 선명한 소리를 내는, 파괴할 수 없는 힘입니다. 그렇기에 특히 이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편 리니우보다 먼저 국제무대에 등장했던 지휘자 키릴 카라비츠는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1976년 키이우 태생인 카라비츠는 현재 영국의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와 독일 바이마르 국립극장의 음악총감독을 겸하고 있으며, 2013년에는 영국의 유서 깊은 로열 필하모닉 협회가 수여하는 지휘자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3월 중순, 전쟁 발발 후 처음 지휘대에 오르는 그를 본머스 청중들은 해바라기(우크라이나의 국화)를 흔들며 맞이했다. 당초 그는 공연 프로그램을 변경하여 우크라이나 작곡가의 곡들을 연주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나, 이미 지난 13년여 동안 본머스에서 꾸준히 우크라이나 음악을 연주해왔다는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대신 오랫동안 러시아의 압제에 대한 저항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2번>이 그의 심정을 충분히 대변해 주었으리라.
이 밖에 국제무대에서 각광받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현역 음악가로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알렉산더 가브릴류크, 바딤 콜로덴코, 안나 페도로바, 그리고 비올라 연주자 막심 리자노프 등도 기억해둘 만하다. 다만 이 가운데 유튜브 스타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리시차는 과거 트위터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간섭’을 비난하는 발언을 남긴 전력 때문에 요즘엔 몸을 사리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