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톺아보기] TV 드라마 속 미술동네는 돈세탁소? 미술관·화랑도 구분 못하고 구태 답습 여전
입력 : 2021.10.28 14:21:30
수정 : 2021.11.05 14:36:11
대중매체 특히 TV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정말 대본을 쓰는 작가부터 제작진 그리고 이를 연기하는 연기자들까지 극 중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아내는 그런 열정과 노력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특히 의학드라마 같은 경우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학용어부터 수술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출연하는 탤런트가 진짜 의사면허를 가진 이들이라고 믿을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물론 실제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눈에는 어느 부분이 부족하거나 과장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의사들 대부분은 매우 사실적인 내용이라 한다.
이런 의학드라마와는 달리 검찰이나 경찰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보면 약간 만화처럼 과장이 심하다는 느낌, 나쁜 놈(?)을 잡는 더 나쁜 놈으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검찰이나 경찰보다 더 일관성 있게(?) 꾸준히 등장하는 드라마 속 악역은 문화재, 미술동네다. 미술작가 또는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다루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퇴폐적’이며 ‘반항적’인 동시에 ‘타락’한 인물로 그려진다. 약간은 낭만적으로 들리는 ‘데카당(Decadent)’한 모습이다. 이런 미술가와 미술가 지망생의 모습은 1930년대 서울 장안에 풍미했던 모던 보이, 모던 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여전히 화가들은 베레모에 줄담배를 피우고 성격도 괴팍한 인물로, 예술가의 전형적인 모습은 21세기에도 여전하다. 드라마 속 재벌들이 미술관(Art Museum) 또는 갤러리(Gallery)를 운영하며 비자금을 조성하는 일은 필수요소다. 재벌이 등장할 때 빠지면 안 되는 조건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비자금 조성에 미술품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 그것도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드라마는 픽션 또는 팩션(Faction)일 뿐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자. 그런데 문제는 드라마에 나오는 미술관이 명칭은 미술관인데 실제로 하는 일이나 벌어지는 극 중 역할을 보면 화랑이란 사실이다. 도대체 미술관과 화랑도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 것은 송아지와 소를 구분하지 않는 것과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미술관은 미술품 소장을 위해 매입은 하지만 판매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드라마 속 미술관들은 미술품을 사고팔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돈세탁하며 미술품을 뇌물로 전달하기도 한다. 이렇게 미술품을 거래하는 것을 보면 드라마 속 미술관은 실은 미술관이 아닌 화랑임이 분명하다. 만약 드라마처럼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파는 것은 없는 일을 있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그리고 한국 최대 최고의 미술관 또는 화랑 내부의 작품 디스플레이를 보면 삼각지 상업화를 파는 가게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맥락 없음에 맥이 빠진다. 미술관과 화랑은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일단 미술관은 비영리를 전제로 하는 공공기관이다.
대부분 개인이 설립해 운영하는 경우에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거 최소한 100점 이상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전문 직원을 두는 등 일정 조건을 갖추어 소재지 해당 관청의 심사를 필해야 설립과 운영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화랑은 개인 또는 법인이 미술품을 사고팔아 이익을 영위하는 사업체이다. 흔히 미술관은 크고 화랑은 작은 곳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미술관보다 큰 화랑도 얼마든지 있다. 또 작지만 알찬 소장품을 가진 미술관도 한둘이 아니다.
미술관과 화랑을 비교해보면, 먼저 화랑을 영어로는 갤러리(Gal lery)라 한다. 따라서 화랑과 갤러리는 같은 말이다. 간혹 드라마에서는 한 이야기 속에 화랑과 갤러리를 다른 것처럼 묘사하는 경우도 있어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에게 도서관과 독서실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도서관은 독서실과 다르다. 도서관도 미술관처럼 비영리 공공성을 기본으로 한다. 이에 반해 독서실은 영리와 사익을 추구하는 사업체다. 우선 장서를 기준으로 하면 도서관은 장서가 있어 누구나 빈손으로 가서도 책을 꺼내 읽을 수 있지만, 독서실은 내가 공부할 책을 가지고 가야 한다. 독서실에는 책상과 의자라는 장소만 제공할 뿐 책을 빌려주지는 않는다. 또 도서관에는 전문직 사서가 책을 관리하지만 독서실에서는 총무라고 부르는 재수하는 동네 형이나 누나가 책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질서유지와 청소를 할 뿐이다. 수년 전만 해도 법에 의해 등록된 미술관, 박물관이 아닌 곳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란 명칭을 사용하면 벌을 받기도 했다. 언젠가 규제개혁을 한다며 임의로 명칭을 사용하게 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지만 방송과 드리마에서도 구분 못하고 헷갈린다는 사실은 좀 슬프다. 미술관과 화랑을 혼동해서 사용하다보니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호칭도 영 엉망이다.
일단 관장(Director)은 미술관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이로 미술관을 대표한다. 그리고 미술관에는 큐레이터(Curator)와 교육담당자(Educator), 작품을 등록하는 작품등록원(Registrar)과 미술품을 수복, 보존하는 컨서베이터(Conservator), 각종 자료를 정리, 분류하는 아키비스트(Archivist) 외에 수많은 직종의 전문 직원들이 일한다. 드라마 속에 이런 전문 직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분명 그 장소는 화랑임이 더 분명해졌다. 문제는 큐레이터다. 화랑에도 전문직으로 큐레이터가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화랑에서 일하는 이가 미술관 큐레이터와 같은 학교에서 같은 교수를 사사한 동학으로 전공이 같다 해도 이들의 호칭은 큐레이터가 아닌 갤러리스트(Gallerist) 또는 화상(Dealer)이라 부른다. 이때 화랑을 경영하는 경영주도 화상 또는 갤러리스트라고 한다. 드라마 속에서 화랑주를 ‘관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독서실 주인에게 도서관장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또 큐레이터는 작품 값을 알지 못한다.
국립현대 보이는 수장고
어느 드라마건 가릴 것 없이 비자금 만드는 도깨비방망이가 있는지 재벌이 나오면 그다음 화랑이 나오고 어떤 시도도 없었는데 이미 비자금이 조성되어 있거나 돈세탁이 되어 있다. 이런 드라마 때문에 미술동네와 화랑가는 비자금 생산과 돈세탁을 하는 곳으로 기정사실화(?)되어 버렸다. 수없이 양산 반복되는 드라마가 실제와 상관없이 반복 학습을 통해 머릿속에 굳어진 지 오래다. 프레임 아니 덫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품 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이나 돈세탁은 실제로 가능할까. 한마디로 아니다. 흔히 돈세탁을 하는 방식으로 미술품을 싸게 사서 해외로 나가 고가에 판매해 그 차익을 비자금화한다고 하지만 적어도 비자금을 조성하려면 해외에서 판매했을 때 수억 이상의 차익이 나야 할 텐데 이때 국내에서 ‘싸게 산다’는 전제가 과연 실현 가능할까. 두 번째, 실제 가격보다 값을 부풀려 받은 다음 이 중 차액을 되돌려주는 예컨대 페이백(Payback) 방식인데, 과연 현금으로 수억원을 주고받는 일이 가능할까. 이것도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2019년부터 모든 미술품 문화재 거래 시 현금영수증을 세무당국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미술품을 구입해 되팔았을 때 이익이 생기면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원천징수한다. 또 미술품 문화재 유통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사업소득 신고 시 모든 거래 내역을 함께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어떤 이는 금융기관에서 그림을 담보로 대출받으면서 담보가를 산 가격의 수십 배로 부풀리는 방식을 예로 들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는 예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는 만화에서도 불가능한 허구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이런 유의 자금세탁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2001년 도입된 금융정보분석원이라는 자금세탁방지기구(FIU)를 통해 감시 감독하며 의심되면 경찰이나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 이런 속설의 희생양인 비자금 사건과 연루되어 눈물을 흘려야 했던 <행복한 눈물>도 결국 무죄로 판명되지 않았던가. 제발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드라마 속에서도 배려를 해주었으면 한다.
[정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