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철학가 니체, 매릴린 먼로도 매료됐다… 지중해 휴양도시 이탈리아 소렌토
입력 : 2021.10.05 17:05:16
수정 : 2021.10.05 17:05:37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고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벗이여!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돌아오라 소렌토’는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불러본 이탈리아 나폴리 민요이다. ‘오 솔레미오’ ‘산타루치아’ ‘푸니쿨리푸니쿨라’ 등과 함께 이 노래는 시공간을 달리하며 성악가든 일반인이든 상관없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명곡 중 하나이다. 나폴리 방언으로 ‘수리엔토’로도 불리는 소렌토는 지중해를 품고 있는 천혜의 휴양지이자,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예술의 도시이다.
‘소렌토’라는 도시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요정, ‘세이렌(Seiren)’에서 유래한 것이다. 몸은 새이고 머리는 여자인 세이렌은 시칠리아섬 근처에 살며,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바다로 유혹하는 요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렌토가 세이렌처럼 얼마나 멋진 절경을 가졌으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가졌을까?
로마에서 나폴리, 소렌토, 포시타노, 아말피 등 이탈리아 남부의 해안 도시로 들어서는 순간 귓가에 울려 퍼지는 나폴리 민요들. 성악가의 멋진 솜씨가 아니더라도 현지인들의 구성진 목소리로 듣는 민요는 색다른 느낌이다. 정제되고 절제된 목소리는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의 낭만과 소박함 그리고 특유의 정겨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오! 솔레미오’가 나폴리 민요의 왕이라면 ‘돌아오라 소렌토’는 여왕이라고 할 수 있다. ‘오! 나의 태양’이라는 뜻의 ‘오! 솔레미오’는 19세기 말에 작곡가 에두아르도 디 카푸아의 작품으로 가사는 조반니 카프로가 썼다. 반면 ‘돌아오라 소렌토’는 1902년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발표된 곡으로 작사는 시인이자 화가인 다비데 쿠르티스, 작곡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에르네스토 디 쿠르티스가 썼다.
1902년 나폴리 출신의 쿠르티스 형제는 트라몬타노 호텔의 사장이자 소렌토 시장 출신인 트라몬타노의 후원을 받아 ‘돌아오라 소렌토’를 만들었다. 대대로 호텔을 경영한 트라몬타노 사장은 쿠르티스 형제에게 호텔 방을 내주었고, 동생 에르네스토는 호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형과 함께 지중해의 감성을 오선지 안에 고스란히 담았다. 깎아지른 절벽과 눈이 부시게 푸른 바다를 한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트라몬타노 호텔은 1812년에 문을 열었다. 쿠르티스 형제 이외에도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 철학가 프리드리히 니체, 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소설가 찰스 디킨스, 미국을 대표하는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등 세계적인 문호와 철학가들이 영감을 받았고,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아름다운 소렌토를 세상에 알렸다.
이 중에서도 1852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는 <소렌토의 아그네스>를 썼고, 1881년 노르웨이 극작가인 헨릭 입센도 6개월 동안 머물며 그 유명한 <유령>을 썼다. 또한 1877년 리하르트 바그너는 트라몬타노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비토리아 그랜드 호텔에서 지내며 니체와 예술과 철학에 대해 밤새 토론을 즐겼고, 오페라 <파르지팔> 작곡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현재도 영업 중인 비토리아 그랜드 호텔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성악가 엔리케 카루소와 루치아노 파바로티, 나폴리 출신의 배우 소피아 로렌, 미국의 할리우드를 대표했던 매릴린 먼로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삶의 쉼표를 찍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해안 절벽을 따라 들어선 두 호텔은 마치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처럼 창작의 유토피아였다. 그러나 유명인들이 많이 찾은 것과 달리 도시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기차역에 내려 도시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타소 광장까지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리고, 도시의 인구도 1만5000여 명밖에 안 된다. 하지만 노래의 명성만큼이나 이곳을 찾는 관광객 수가 한 해 1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일단 광장이라고 부르기에 왠지 어색한 타소 광장에 들어서면 소렌토가 자랑하는 이탈리아 시인 ‘토르콰토 타소의 기념비’가 도시의 터줏대감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아오라 소렌토’를 작곡한 쿠르티스 형제보다 소렌토에서 더 유명한 예술가가 바로 16세기 르네상스 최후의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친 타소이다.
토르콰토 타소
타소 광장을 중심으로 소렌토가 숨겨놓은 보석 같은 볼거리와 고급 호텔, 카페,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고, 15세기 지어진 노란색의 성 아르델로 교회, 고대 그리스 시절에 건축된 성곽, 17~18세기에 그려진 많은 그림과 고가구로 가득 찬 테라노바 박물관 등도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소렌토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타소 광장과 대로변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뒷골목들이다. 성인 두세 명이 간신히 지나칠 정도로 좁은 골목길은 마치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고, 소박한 일상을 꿈꾸는 현지 사람들로 언제나 활기가 넘쳐난다.
낮이건 밤이건 골목길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다시 여행의 시작점이자 종점이 되는 타소 광장에 이르게 된다. ‘돌아오라 소렌토’라는 이름에 가려진 토르콰토 타소는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이곳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광장의 이름과 1700년대에 동상을 세웠을까?
우리에게 생경한 이름의 타소는 베네치아 남서쪽에 있는 페라라 공국에서 궁정 시인으로 일했다. 하지만 페라라 공작 알폰소 2세의 여동생이자 만토바 공작의 약혼녀인 엘레오노라를 사랑하면서 그의 인생은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일개 시인과 공주의 사랑은 이미 이별이 정해진 사랑이자 신분을 초월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그 결과 타소는 알폰소 2세에게 버림받았고, 감옥에서 7년간 생활하다가 51세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예루살렘의 해방>을 비롯해 주옥같은 시를 통해 르네상스 최후의 시인으로 평가받았지만, 편집증과 불안증세, 그리고 공주와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생을 마감한 타소. 훗날 소렌토를 방문해 타소의 삶을 알게 된 괴테는 1790년 <타소>라는 희곡을 썼고, 1817년 영국의 바이런은 <타소의 비탄>이라는 시를 지었다. 또한 1833년 게타노 도니체티는 타소의 생애를 담은 오페라 <토르쿠아토 타소>를 만들었고, 프란츠 리스트는 괴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괴테의 희곡을 바탕으로 <타소, 비탄과 승리>라는 교향시를 작곡했다. 이처럼 음악과 문학을 통해 소렌토는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예술가의 흔적이 많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도시라 해도 소렌토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아름다운 해변에 누워 레몬 향기가 묻어나는 시원한 칵테일로 목마름을 달래고 그늘에 누워 나폴리 민요 한 곡조를 읊조리며 즐기는 여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