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한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VIP 만찬에서였다.
디저트가 나올 무렵, 부인과 함께 내 옆자리에 앉은 남성 고객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시계는 이제 충분한 것 같은데요. 남자가 그다음으로 할 만한 주얼리는 뭐가 있을까요?”
부인의 주얼리를 보러 온 남편이 어느새 자신의 주얼리로 화제를 돌린 순간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만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장소도 사람도 달랐지만 올 들어 이런 질문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올해 해외 시상식에서는 남성 배우들의 과감한 브로치 연출이 잇따랐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마이클 B. 조던은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라펠 대신 재킷 등판으로 옮겼고, 9월 에미상에서는 콜먼 도밍고가 부쉐론의 ‘그린 가든’ 브로치를 벨트 버클처럼 허리에 착용했다.
진주의 경우는 조금 더 빨랐다. 진주는 오랫동안 우아한 여성 주얼리의 전형으로 여겨졌고, 한때는 어머니 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도 강했다. 하지만 2016년 샤넬 공방 컬렉션 쇼에서 퍼렐 윌리엄스는 여러 줄의 진주 목걸이를 겹쳐 착용했고, 3년 뒤 멧 갈라에서 해리 스타일스의 한쪽 귀에는 진주 이어링 하나뿐이었다. 그 드롭형 싱글 이어링은 17세기 영국 찰스 1세의 초상 속 커다란 진주 귀걸이를 떠올리게 했다.
화려한 주얼리가 남자에게도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국 헨리 8세의 초상화만 봐도 굵은 체인과 펜던트, 보석 장식의 모자와 반지가 가득하다. 이런 화려함은 그 뒤로도 오래 이어졌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해 급히 퇴각하면서 남긴 소지품 중에도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모자 장식이 있었다. 반면 18세기 말부터 서구 남성복에서는 장식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영국의 심리학자 J. C. 플뤼겔은 1930년 저서 <의복의 심리학>에서 이를 ‘남성의 대포기(Great Male Renunciation)’라고 불렀다. 서구의 부유한 남성들이 화려한 색과 장식을 걷어내고 옷의 차이를 재단과 원단의 질에서 찾기 시작하면서, 19세기에는 검은색을 비롯한 짙은 색 정장이 남성 복식의 중심이 됐다. 장신구도 회중시계 줄과 커프스링크, 타이 핀, 시그닛 링 정도로 줄었다.
한편 인도 왕실에서는 화려한 남성 주얼리가 20세기까지 이어졌다. 파티알라의 마하라자 부핀더 싱은 1928년 다이아몬드 7571개와 에메랄드 1432개를 비롯한 보석을 상자 여섯 개에 담아 파리 방돔 광장의 부쉐론을 찾았다. 당시 그가 의뢰한 주얼리만 149점에 달했다. 20세기 서구에서는 록스타들이 반지와 목걸이를 즐겼고, 힙합 문화에서는 굵은 체인과 다이아몬드가 부와 성공을 과시하는 상징이 됐다. 남성 주얼리의 화려함은 왕실에서 무대로 옮겨갔다.
최근에는 경매사와 주얼리 브랜드도 남성 주얼리를 따로 다루기 시작했다. 2023년 소더비 뉴욕은 19세기 중반부터 현대까지 남성 주얼리 약 100점을 모아 판매전 ‘For the Boys’를 열었다. 이듬해 루이 비통은 첫 남성 파인 주얼리 컬렉션 ‘Les Gastons Vuitton’을 선보였다. 반지와 팔찌, 펜던트와 목걸이, 귀걸이까지 모두 18점이다. BoF와 맥킨지가 함께 펴낸 <The State of Fashion 2026>에서는 남성 응답자의 35%가 2~3년 전보다 자신을 위한 주얼리를 더 구입한다고 답했다. 남성 주얼리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 전망도 2028년까지 7~8%로, 여성 주얼리 시장의 4~5%를 웃돈다.
티셔츠나 니트 위에 체인 목걸이를 착용하는 남성은 이제 많아졌지만, 셔츠와 재킷을 갖춰 입을 때면 여전히 넥타이가 익숙하다. 그래서 그날 내가 옆자리 남성에게 권한 주얼리 가운데 하나가 볼로 타이(Bolo Tie)였다. 가죽끈에 장식용 슬라이드를 끼운 미국 서부의 장신구다. 셔츠 깃 가까이 올려 단정하게 착용하거나, 아래로 내려 긴 펜던트 목걸이처럼 연출할 수 있다. 미국 남서부 원주민 장인들이 은과 터키석, 산호로 제작해온 볼로 타이는 이후 카우보이 스타일을 대표하는 장신구로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 SAG 어워즈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2005년 까르띠에 리브르 컬렉션의 ‘펠린 드 까르띠에’ 펜던트 워치를 볼로 타이처럼 착용했다. 밥 딜런의 스타일을 참고한 연출이었다. 시계를 셔츠 깃 아래로 옮겼을 뿐인데 전혀 다른 주얼리로 탈바꿈했다. 최근에는 땋은 가죽 끈에 18K 골드와 다이아몬드를 결합하거나 검은색 자개와 터키석, 핑크 사파이어를 세팅한 볼로 타이도 등장했다. 중심 장식을 브로치로 활용하거나 다이아몬드나 컬러스톤을 슬라이드에 세팅한 디자인도 있다. 볼로 타이는 아니지만 부쉐론의 콰트로 클래식 타이 네크리스 역시 중앙 모티프를 움직여 길이를 조절한다. 목 가까이 올리면 타이 형태가 되고, 아래로 내리면 긴 목걸이가 된다.
목걸이가 아직 부담스럽다면 반지가 가장 무난한 출발이다. 그중에서도 시그닛 링은 새끼손가락에 착용하면 결혼반지와 겹칠 일이 없고, 스톤 없이 골드만으로도 존재감이 충분하다. 이니셜이나 원하는 문양을 새겨 넣어도 좋다. 시계와 금속 컬러를 맞추느라 고민할 필요도 없다. 스틸 시계에 옐로 골드 시그닛 링, 그 조합이 요즘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최근에는 컬러 스톤 반지를 찾는 남성도 늘어났다.
몇 달 전 만난 한 40대 남성은 차보라이트와 옐로 사파이어 반지를 보여주며 아내와 함께 착용할 반지를 찾는다고 했다. 다만 컬러 스톤 반지는 디자인만큼 원석의 내구성이 관건이다. 루비와 사파이어는 매일 착용해도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그가 보여준 차보라이트는 충격에 조금 더 민감하고 에메랄드는 내부 균열이 흔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고가의 루비와 사파이어라면 산지와 가열 여부가 가격을 크게 좌우하니 공신력 있는 감정원의 리포트까지 확인해야 한다. 다음 만찬에서는 옆자리 남성의 손목보다 새끼손가락과 셔츠 깃 아래에 먼저 눈이 갈 것 같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등 7권이 있다.